공지 [개정판]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 개정 내용

관리자
2023-01-12
조회수 62

[개정판]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 전자책 출간

개정판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가 전자책으로 출간이 되었습니다.

이전판 종이책을 구매하신 분들을 위해서 아래 개정판의 개정된 내용들을 홈페이지에 같이 등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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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판 서문 ]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특권이라면, 하나님의 복음(“좋은 소식”)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이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자기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긍휼에 대한 계시와 무관하게 하나님은 우리가 감히 견딜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우리는 강력한 지도자를 대하듯 하나님을 존경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랜드캐니언이나 마터호른을 대하듯 하나님에게 경외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복음은 대단히 구체적인 선언이다. 복음은 하나님이 불안정하고 위태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 곧 여러분이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전하신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영광과 능력과 의와 공의의 삼위일체 하나님이 세계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를 아낌없이 사랑하셔서 아들의 피를 대가로 치르고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시고 우리가 마침내 영광 가운데 육체로 부활해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를 완전하고 영원히 누릴 때까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끝까지 지키신다는 것이다.

이 복음에 관한 지식이 없는 열정은 바울이 로마서 10장에서 경계하는 맹목이다. 복음은 우리의 전인을 붙잡아서 우리의 지성을 사로잡고 우리의 의지를 해방하고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우리의 손을 움직인다. 복음은 우리가 표면적으로 더 중요한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기독교 생활의 초기에만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를 믿음 안에서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긍휼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20여 년 동안 나는 동료 그리스도인이(그리고 비그리스도인도) 하나님과 구원을 이해할 때 인식 체계의 변화를 경험하는 방식에 대해 매우 놀라운 이야기를 접할 기회를 여러 번 누렸다. 이 이야기에서 눈에 띄게 일관된 공통점 중 하나는 은혜의 교리가 우리가 가진 지적 자산의 구조를 바꿀 뿐 아니라 우리의 경험과 삶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내가 쓴 모든 책 중에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이처럼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나는 바울이 쓴 로마서를 깊이 상고하는 과정에서 인식 체계의 변화를 직접 경험했으며, 성경 전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나는 성경을 믿는 가정과 교회에서 성장했는데도 성경을 배울 때 강조점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혼합물을 인식한 것에 대해 갈수록 불만이 늘었다. 한편으로 우리는 구원이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배웠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내 것으로 만들고”,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시종일관 내 결정과 노력의 여하에 달린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열세 살 때 북아프리카, 터키, 중동, 유럽에서 수 세기 전에 살았던 많은 형제자매와 함께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이들 동료 순례자는 많은 면에서 많은 동시대인보다 내 연구에 더 유익하고 공감하는 면이 많다는 인상을 주었다. 나는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교부, 종교개혁가, 청교도, 현대 개혁주의 저자의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서 마치 새로운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꼈다. 그렇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넓은 각 방은 기묘하고 놀라운 기쁨으로 가득 찬 다른 방으로 통했다. 나는 어디에나 보화가 가득한 넓은 저택으로 드러난 곳을 지금도 여전히 돌아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은혜의 교리에 대한 나의 이상한 집착을 주로 우리 가족에게 설명하려고 그때까지 내가 갖고 있었던 불충분한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 15살 때 나의 첫 번째 책을 마무리했는데, 나의 자애로운 친구이자 조언자인 제임스 보이스가 서문을 기고해 주었다. 이 책은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임무 완수』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제임스 패커의 새로운 서문과 함께 여러 장을 추가한 뒤에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가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 책이 끼친 영향에 대해 자주 듣는 경험담에서 큰 보상을 받았고, 이 책은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

여러분은 이 책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신학 용어와 교회 역사에 통달하지 않아도 된다. 내 목적은 성경 구절을 통해 독자에게 성경의 핵심 가르침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 책은 여러 심오한 진리를 소개하는 간단한 안내서다. 기성 신학자는 기독교 교리에 관한 자신의 개요를 “변변찮은 신학”과 “길을 가는 순례자의 신학”으로 부르곤 했다. 우리 가운데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순례자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이렇게 개정된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의 최신판으로 이 순례를 함께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이 책을 시험하기를 바란다.


14쪽 위 3~5줄 교체


만일 여러분이 지성적인……초대받을 준비가 된 사람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오늘날……


☞ 여러분이 끝없는 “삶을 위한 원칙”의 영적 쳇바퀴에 염증을 느끼는 이지적인 신자거나 자기의 머리로 천박함과 종교적 과장이라고 여기는 것을 더 이상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여러분은 종교개혁 신학을 배울 준비가 된 상태일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오늘날……


15쪽 위 15~17줄 교체


……같은 유사한 곡들을 남겼다. ‘토요일 밤 라이브……이런 형태의 풍자가 낯설지 않다.


☞ ……같은 유사한 곡들을 남겼다. ‘토요일 밤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같은 프로그램이 TV 복음전도사를 풍자한 것이나 휴이 루이스(Huey Lewis) 같은 뮤지션이 복음을 팔러 다니는 뚱뚱한 남자에 대해 노래한 것, 또 레이 스티븐스(Ray Stevens)가 같은 뮤지션의 노래 가사에서 해 노래하는 “그분들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노래하면서 당신에게 구원을 팔고 있습니다.”라고 빈정거리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런 유머가 낯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렇게 이른 시기에는 루터도 겨우 빙산의 일각만 보았을 뿐이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 강연에 몰두하면서 성경의 중심 메시지에 대한 이해를 심화했다. 독일 수도사 요한 테첼(Johann Tetzel)의 노골적인 복음 판매 운동은 중세 교회가 믿음과 실천에서 더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타락했음을 보여주는 징후에 지나지 않았다.


16쪽 위 7~8줄 교체


……근본 메시지를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은 거룩한 삶과 교회의 규정에 대한 일종의 위협으로……


☞ 

……근본 메시지를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은 구원을 이루는 일에 있어 중세 교회의 권위에 대한 일종의 위협으로……


17쪽 위 6~7줄 추가


……종교개혁자들은 ‘아니다. 오직 성경으로만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반론했다……


☞ ……종교개혁자들은 “아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으로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음을 안다”라고 반론했다……


17쪽 10~17줄 다음 부분 삭제


종교개혁자들은 교회가 단지 교황이나……모두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러한 일들을 함께 수행해야 했다. 오늘날 학계에서 일부 학자들이……


☞ 물론 오늘날 학계에서 일부 학자들이……


17쪽 위 21~18쪽 위 9줄 교체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확실히 그것을 배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하고 순종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에……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고 믿었다. 따라서 교회는 항상 스스로 오류에 빠지기 쉬우므로……


☞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하고 순종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성경을 원어에서 모국어로 번역해 대중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근본적인 가정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하신 구원 목적에 대한 중심 이야기가 심지어 소젖을 짜는 아낙네나 시골 청년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매우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한 모든 것이 똑같이 분명하거나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지만, 복음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다. 성경이 복잡하고 어려운 책이어서 확실한 교사가 필요하다고 보통 사람에게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가르치던 시대에 이것은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루터는 “오늘날 보통 사람은 ‘나는 비전문가일 뿐 사제가 아닙니다. 나는 미사에 참석해 성직자가 말하는 것을 들으며 성직자를 믿습니다’라고 말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종교개혁이 영향을 끼친 곳이면 어디서든 사람들은 점심시간에 성경을 읽으며 가족과 여행하는 중에도 시편을 노래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지도하기 위해 목사, 교사, 장로를 우리에게 주셨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교사는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절실히 필요했는데, 곧 그리스도인이 자기가 무엇을 믿으며 왜 믿는지를 아는 일을 돕는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에 관한 합의(그리고 진리와 오류를 분별할 수 있는 잘 훈련된 목사와 교사)가 없다면, 교회는 자신이 받은 보물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각 세대에 재발견하고 지켜야 하며 결코 당연시해서는 안 되는 보물이다. 따라서 교회는 항상 스스로 오류에 빠지기 쉬우므로……


19쪽 위 2~20줄(첫 단락) 전체 교체


종교개혁자들의 두 번째 슬로건은 종교개혁 운동의……정죄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 자체가 큰 두려움이었다.


☞ 여러분은 성경이 일차적으로 일상생활을 위한 안내서(다시 말해, 도덕적 명령, 제안, 범례를 담은 모음집)라고 생각하는가? 종교개혁자들은 성경만이 우리의 최종 권위라고 매우 강경하게 주장했는데,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말씀하시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무엇을 하실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닌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구원에서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펼쳐지는 이야기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따르는 다른 “솔라들”(곧 “오직 ~으로”)이 생겨난다. 곧 구원은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solo Christo)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 우리에게 온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본질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일차적으로 교사, 도덕적 모범, 인생 상담사로서 본질적일까, 아니면 우리가 용서, 하나님과의 화해, 영생을 발견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본질적일까?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아야 한다고 실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성경이 선포하는 종류의 극단적인 구출 작전은 거의 불필요하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선한 사람이어서 지도가 거의 필요하지 않다면, 상황은 하나님이 우리의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 대신 모든 의를 이루시고 잔혹한 십자가 형벌을 통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새 창조의 시작으로서 육체적으로 부활하실 것을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종류의 구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의의 부분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모든 것을 보충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복음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우리의 영적 훈련, 그리스도와 더불어 자유의지,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우리의 행위, 그리스도와 더불어 우리의 경건한 체험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다. 우리 구원의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

   중세 신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많이 자신에게 달려 있는지를 끊임없이 상기 받았다. 최고의 성도는 세상에서 죄 없이 사는 일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루터도 이와 같은 수도사 중 한 명이었으나 그리스도가 우리 각 사람 안에 내재하는 죄와 관련해 바리새인에게 말씀하신 취지를 곧 이해했다.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면, 예수님은 바리새인에게,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은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죄는 저 바깥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내 안에 있다. 죄는 나의 위치나 환경에 상관없이 나를 부패시킨다. 성경의 분명한 구절을 바탕으로 루터는 하나님이 결코 감정적인 분이 아니심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거룩하시므로 우리의 죄를 눈감아 주실 수 없다. 그래서 독일 수도사 루터는 하나님이 자신의 많은 눈물로 인해 자신을 주목하시기를 소망하면서 몇 시간씩 죄를 고백했다. 물론 루터가 두려워한 것은 자신이 죄를 고백하지 않거나 죄를 고백하기 위해 어느 한 가지 죄를 기억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정죄하시기에 충분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31쪽 위 1~6줄(첫 단락) 전체 교체


나는 내가 왜 그리스도인인지……그것이 필요한 상태였다.


☞ 오랜 시간 동안 서구 사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정상적이었고 믿음의 교리를 배척하는 것이 이단으로 여겨졌다. 오늘날 유명무실한 “기독교” 문화에서는 상황이 정반대다. 정통 기독교에 대해 냉담하거나 비판적인 것이 정상이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시대정신에서 벗어난“이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믿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더 나은 위치에 있다. 우리는 시류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우리의 생각과 신앙과 삶을 결정하게 맡겨둘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믿는지 그리고 왜 믿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형성되기 위해 의식적으로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자기 소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 아프리카 학생이 자기 교회가 새 신자에게 요구하는 강도 높은 교리 교수(교육)에 대해 나에게 들려준 것을 기억한다. 많은 아프리카인이 애니미즘이나 이슬람을 배경으로 두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아프리카 사람의 회심은 예수님께 자기 마음에 오시기를 구하는 사소한 기도를 하는 일보다 훨씬 많은 것을 수반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미국 같은 곳에 살면서 제자라는 신분이 상대적으로 별로 심각하지 않고 부담도 적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 문화의 우상에게 어느 정도로 유혹받고 있는지 그리고 신실한 교사에게 어느 정도로 심도 있고 지속적이며 헌신적으로 재교육받을 필요가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특별히 오늘날 사람이 의도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면, 교회는 이 성장을 촉진할 의무가 있다. 교회 사역은 단단한 음식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에게 우유를 먹이지 말고 성인 세계의 현실을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시킬 필요가 있다.

   많은 신자처럼 나도 떠먹여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신앙생활을 했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왜 믿는지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의미다. 우리는 그냥 성경을 믿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가르쳤다. 우리는 슬로건에 따라 살았다. 누군가 곤란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자주 하는 대답은 그냥 더 열심히 기도하라, 성경을 더 많이 읽어라, 간증을 더 많이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헌신과 체험 강도가 의문, 염려, 의심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슬로건은 우리 삶을 정의하는 권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문화의 유력한 이야기, 교의, 관례에 비해 가치 있는 경쟁 상대가 아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노래를 반복해 부른다고 해서 우리가 광야에서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그리스도에까지 깊이 자라는 뿌리가 생겨나지는 않는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체험하고 더 많이 주라는 끊임없는 권면은 소진으로 이어질 뿐이다. 복음만이 이 불꽃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


44쪽 아래 3~2줄 사이에 단락 새로 삽입


……사실을 알고 있다.

천국 법정 앞에서……


☞  ……사실을 알고 있다.

무엇이 인간을 그처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까? 우리가 다른 피조물의 수준을 뛰어넘어 진화한 것이 사실일까? 우리가 다른 피조물과 유사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야생 동물은 집단으로 이동하고 새는 떼를 지어 날아가는데, 사람도 무리로 움직이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인간을 구별하는 것, 초월적인 것이 있음을 알고 있다.

천국 법정 앞에서……


49쪽 아래 10줄 문장 추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조물들 위에……


☞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또한 우리 모두에게 책임도 부여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조물 위에……


57쪽 아래 3줄 괄호 문장 삽입


……받이들이는 것 같다. 때로는 그 문제가……


☞ ……받아들이는 것 같다. (누군가가 적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가장하면 우리는 활기를 띤다.) 때로는 그 문제가……


61쪽 위 8~12줄 교체


할 수 없게 한다. 19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충분할 정도로 느끼게 된다.


☞ 할 수 없게 한다. 교리의 측면에서 영원한 관점이 결코 없다는 전제를 기초로 삼는 과학적 종교 이념에서는 우리가 도스도예프스키와 함께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 하는 행동이 궁극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누리는 짧은 인생은 영원한 중요성을 지닌다.


65쪽 아래 4줄 단락 나눔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이……


☞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이……


66쪽 맨 아래 단락 삭제


70쪽 위 10~14줄 교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실상을……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다가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의 외부에 있는 사람, 가령 부모, 친구, 배우자, 자녀에게서 자기가 정말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우리를 진정으로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기꺼이 들려준다. 우리는 자기가 스스로 만든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다.


80쪽 위 2줄 문장 추가


……놀랄 만한 사건이 못된다.


☞ ……놀랄 만한 사건이 못 된다. 그리고 악은 단순히 그것을 “타자”로 객관화하는 것만으로 우리 자신의 마음으로 피할 수 없다.


84쪽 위 12줄 문장 추가


……전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었다.


☞ ……전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었다. 아담은 인류의 언약 대표로서 우리를 대표한다. 그래서 아담의 죄는 전가(법적 선포)를 통해 그리고 분여(도덕적 부패)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85쪽 위 3~8줄 단락 전체 교체


마찬가지로, 아담은……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 아담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지만 동시에 배반자인 것을 의미한다. 돈을 횡령한 사실이 발각된 시장처럼, 우리도 자신이 이미 훼손한 높은 지위를 소유한 상태로 세상에 태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놀라운 예술적, 지적, 문화적 업적을 성취할 수 있으나 또한 믿을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 해를 끼칠 수도 있다.


87쪽 위 4줄 내용 추가


……순간에 가장 큰 안도감을 느낀다. 로마서 6장 16절에서……


☞ ……순간에 가장 큰 안도감을 느낀다. 죄가 꼭 명시적이고 의식적이며 외부로 드러나는 폭력이나 부도덕의 행동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죄는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것의 부패다. 죄는 기생충과 같다. 질투와 정욕은 사랑의 부패다. 하나님이 베푸신 좋은 선물의 향유도 우리가 이 선물을 주신 하나님에게서 돌아서서 그 선물로 향할 때 잔인한 중독이 될 수 있다. 이성과 판단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탁월함의 표지지만 우리가 불의로 진리를 교묘하게 막는 수단이 된다. 심지어 도덕과 종교도 하나님의 불가피한 심판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피하기 위한 기회가 된다. 죄를 방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류는 언제나 진리에 편승한다. 죄는 창조할 수 없고 다만 왜곡하고 부패시키고 변형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종으로 태어난다. 로마서 6장 16절에서……


90쪽 위 13~20줄 교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죄책이 실재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역사 시대가 시작된 이후로 인류는 죄책감을 근절하기 위해 정교한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의 문화에서 우리는 아이를 화산에 던지거나 제단에 제물로 바치는 일에 눈살을 찌푸릴지 모르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대상을 실족하게 만든 책임이 있다는 이 끔찍한 감정을 완화하기 위해 여전히 심리 치료사에게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자기개발서를 구매하고 다양한 도덕적, 영적, 지적 탐구에 기꺼이 투자한다. 우리가 이 죄책감의 원천으로 인식하는 것이 운명, 업보, 수치심, 자존감 상실일지 몰라도 이것은 존재한다. 그래서 이 죄책감의 진정한 원천을 아는 사람이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 밝히지 않으며 그것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지 않는 것은 잔인하다.


92쪽 위 7줄 아래 새 단락 삽입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이 말의 핵심은 만일……


☞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미국인은 하나님이 외모로 판단하신다고 생각한다. 다른 많은 사람과 비교할 때 우리는 괜찮은 편일지 몰라. 좋은 것이 나쁜 것을 능가한다. 분명히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도 있었지만 나도 천성은 상당히 착한 사람이야. 하지만 하나님은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성품은 바뀌지 않지만 우리의 성품은 변한다. 나치 지도자가 뉘른베르크에서 재판받고 처형되었을 때, 독재자가 오늘날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비인도적 범죄”로 재판받을 때, 우리 대다수는 정의가 실현된다고 느낀다. 어떤 경우든 간에 우리는 “남자가 그런 법이지”라고 으쓱거리며 말하는 판사의 선함을 기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과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관계와 관련해서, 우리는 자기의 범죄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만하지 않거나 하나님이 감상적이신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가 너무 좋거나 하나님이 너무 좋으시다. 우리가 그처럼 치명적인 추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우리가 누구인지 또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자신이 정말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말의 핵심은 만일……


93쪽 아래 2줄 삽입


……사실(롬 3:10, 12)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여기서 말하는 ‘선’이라는 것은……


☞ ……사실(롬 3:10, 12)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우리 주님의 비유에 나오는 바리새인처럼 보는 경향이 있는데, 바리새인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 곧 세리 같은 죄인들과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렇지만 세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으며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상태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선’이라는 것은……


111쪽 아래 8줄 내용 추가


……기초한 구원을 소유하고 있다. 


☞ ……기초한 구원을 소유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선택하시는 하나님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다. “곧 창세 전에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아들]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느니라”(엡 1:4-5). 아버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복음을 통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자기 나라에 “집어넣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아들에게 효과적으로 이끄신다.


112쪽 끝에 단락 추가


……절망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 ……절망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선택은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부터 사랑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자기 아들 안에서 사랑하심을 우리에게 확증한다. 타락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성령과 함께 아들 안에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셨을 때 십자가는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아버지는 선한 백성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종족과 나라에서 원수들을 선택하셨다. 그리스도가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한 것”으로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계 13:8). 그리스도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다”(벧전 1:20-21). 십자가는 우리 역사에서 특정 시간과 장소에 세워졌으나 세계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희생적이고 자유로우며 측량할 수 없이 크다.


114쪽 아래 9줄 내용 추가


……하나님 나라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 ……하나님 나라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더욱이 나는 내 이웃이 선택받은 자들 가운데 포함되는지를 전혀 모른다. 내 이웃이 선택받은 자들 가운데 포함된다고 가정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선택받은 사람이 복음을 들음으로 구원의 믿음으로 나온다면, 왜 내가 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겠는가?


116쪽 1~2줄 사이에 단락 추가


……다른 것으로 생각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영국의 위대한 문호……


☞ ……다른 것으로 생각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가 오로지 하나님의 공의에만 맡겨진다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선택에서 하나님은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는 다수의 사람을 긍휼히 여기기로 작정하신다. 하나님의 공의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포용한다. 하나님이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시는” 것으로 나타나는 곳이 바로 십자가다(롬 3:26).

영국의 위대한 문호……


117쪽 아래 6줄 내용 추가


……될 수 없을 것이다.


☞ ……될 수 없을 것이다. 믿음은 더 이상 하나님께 용서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근거다. 다시 말해, 믿음은 행위가 될 것이다.


135쪽 위 2~19줄 단락 전체 교체


오래 전에 데이비드 니븐과……하나님께서는 나를 선택하셨던 것이다.


☞ 하나님은 내가 배역해서 하나님의 좋은 선물을 무기로 바꾸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공격할 수 있는 요새로 바꿀 것을 항상 아신다. 그렇지만 심지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참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아버지는 나를 무수한 가족과 함께 자기 아들에게 주셨다. 어떤 장애가 있어도 하나님이 승리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최종 결론이 될 것이다.


149쪽 위 12줄 내용 추가


……많은 사람들도 그러한 생각에 동의했다.


☞ ……많은 사람들도 그러한 생각에 동의했다. “이슬람의 사도” 새뮤얼 즈웨이머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보여주는 이 교리들이 자기가 전하는 메시지일 뿐 아니라 자기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64쪽 5~6줄 사이에 단락 추가


……오르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는지.

신학대학원에 가서야……


☞ ……오르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는지.

   그런데 성경에는 이솝 우화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각 이야기는 도덕 원리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 인물들이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방식을 이해하기보다, 이 인물들의 삶은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도덕적 모범을 제공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는 복음이 어른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에 반해, 아이들은 끊임없이 주의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받는 인상(아마 실제로는 추정일 테지만)은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죄인에게 구원을 전하는 일이 아니라 선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도움으로 어떻게 더 선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일이라는 것이다.

신학대학원에 가서야……


164쪽 아래 10~5줄 내용 교체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그는 두려워하면서……제시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말했다. 이 꿈에서 요지는 야곱이 잠자고 있는 작은 땅이 아니었다. 이 약속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역사에서 실제로 사람이 되실 순간을 가리켰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68쪽 위 8줄 내용 추가


……고난당하시는 종과 다윗의 후손이 되셨다.


☞ ……고난당하시는 종과 다윗의 후손이 되셨다. 문제는 우리가 항상 자신이 오르는 “높은 곳에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실제로 낮은 곳에서 우리를 찾으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유에서 헤롯의 대학살을 피하시며, 로마 제국과 백성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하나님께 멸시와 버림을 받은 것으로 여겨졌으나 용서하고 병을 고치신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루살렘으로의 입성이 취임 축하 무도회가 될 것이며 자기들도 좌우편에서 메시아와 함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오르실 것을 아셨다.


170쪽 위 13줄~171쪽 위 5줄 내용 교체


……그 모든 본성에 있어서 완전한 인간이시다. 특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동일시하기를 꺼리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 ……그 모든 본성에 있어서 완전한 인간이시다. 예수님은 우주를 창조하셨으나 자기 어머니의 보살핌에 의존하셨다. 요셉은 예수님에게 가업을 가르쳤는데,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라갔다”(눅 2:52). 실제로 예수님은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다”(히 5:8). 예수님은 흔한 질병에 사로잡히셨고, 굶주리고 갈증을 느끼고 연약하셨다. 예수님은 슬픔을 당하시고 시험을 겪으셨다. 몸과 영혼이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님은 죄를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우리와 같으셨다(히 2:17–18; 4:14–16을 보라).


181쪽 아래 2줄 문장 교체


……심오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 ……심오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원자다.



182쪽 위 2~9줄 내용 교체


……구원 얻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닌가? 어림도 없는 생각이다……“세상의 구주”(요 4:42)가 되기 위해 오셨다.


☞  …… 구원 얻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구원받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 “이미 정죄받은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친다(요 3:18). 그와 동시에 성경적 보편주의도 있는데, 성경적 보편주의는 온 세계(실제로 사람뿐 아니라 온 창조까지)를 아우른다(롬 8:22-25).


183쪽 위 8~14줄 내용 교체


……경향이 있었음을 상기하자. 요한복음 11장 50-52절만큼 이러한 오해를……미리 말함이러라.”


☞ ……경향이 있었음을 상기하자.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민족보다 더 크고 더 광범위한 구속에 대해 말했으나, 예수님이 일하시던 당시의 유대인들은 주로 지정학적인 신정 국가로서의 국가를 회복하는 측면에서 생각했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은 아브라함 언약(아브라함과 사라의 자손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약속함)이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이 맹세한 언약에 종속시켰다. 요한복음 11장 50-52절만큼 이런 오해를 훌륭하게 바로잡는 구절도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190쪽 위 10~13줄 단락 교체


물론 로버트 라이트너(Robert Lightner) 박사는……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


☞ “누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는가?”라는 질문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어쨌거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어도 무수한 사람이 정죄를 받는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실제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성취한 것일까?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그리스도는 실제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신” 것일까(마 1:21. 강조는 필자의 것임)?


195쪽 위 12~15줄 내용 교체


……이 은혜로운 선물을 거부한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거부했기……사실을 간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죄의 문제와 아들의 문제’ 사이에……


☞ ……이 은혜로운 선물을 거부한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행동 때문에 정죄받을 것이다.

   첫째, 모든 사람이 불신앙을 제외한 모든 죄에서 객관적으로 용서받는다면, 믿음 자체가 구원하는 행위여서 구원받는 수단이라기보다 용서의 근거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전제 조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죄인을 자신과 화목시키는 유일한 근거가 아니다.

   둘째, 이 견해는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 자체가 죄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나는 ‘죄의 문제와 아들의 문제’ 사이에……


199쪽 위 12줄 내용 추가


……차별 없이 주어질 수 있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 ……차별 없이 주어질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믿었다면 모두에게 고루 돌아가기에 충분할 만큼 구원의 긍휼과 용서가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 세상과 그 밖의 수많은 사람을 구원할 만큼 무한한 가치가 있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199쪽 아래 5줄~200쪽 위 9줄 내용 교체


……연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은 언제나 매우 개괄적인 것이다……유효적 구속을 실제로 소유한다.}


☞ ……연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신약에서 사도와 복음 전도자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포함되는 것과 별개로 누군가에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라고 선포하는 사례는 하나도 없다. 그보다도 반복된 선포는 그리스도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영원한 선택, 사랑, 긍휼, 은혜를 주셨음을 전혀 확신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촉구는 그만큼 더 긴급한 것이다. 그리스도 밖에는 진노뿐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용서, 생명, 기쁨이 있다. 여러분이 믿는다면 자기의 죄가 십자가에서 가려지며 자신이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에서 구원받는다고 확신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잠재적이지 않고 실질적이며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이며 가능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구속이다. 우리처럼 무력한 죄인에게 그리스도가 이미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음을 선포하는 것은 참으로 큰 특권이다. 우리가 완성시키거나 확보하거나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우리의 믿음은 이 구속을 받을 뿐이지 구속의 효력에 아무것도 더하지 않는다. 좋은 소식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관해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소식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롬 5:8–10).

   내가 이 가르침을 막 깨달았을 때, 내가 잘못에 빠질까 봐 염려하시던 우리 목사님은 나에게 “얘, 너는 언제 구원받았니?”라고 질문하셨다. 나는 실제로 아무 생각 없이 “2천 년 전에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당시에는 이 뜻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장 큰 자유와 확신을 주는 진리 중 하나다.


220쪽 위 18줄 (둘째 단락) 다음에 새 단락 추가


……결정은 결코 생기지 않을 것이다.


☞ ……결정은 결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취하게 하는 은혜는 중생으로 부르는데, 중생은 “새로운 기원”을 의미한다. 성령은 아버지의 말씀이 아들 안에서 유용한 효과를 가져오도록 창조의 수면 위를 덮으셨다. 성령은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를 지나도록 인도하실 때 이스라엘 자손 위에 머무셨으며, 마리아를 덮으셔서 성육신한 하나님을 태중에 잉태할 수 있게 하셨다. 성령은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셨으며, 세례받으실 때 예수님의 위에 머무셨고 예수님의 사역에 권능을 더하셨다. 같은 성령은 세례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합하게 하신다.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스스로 부활할 수 없고 마지막 때에 육체적으로도 스스로 부활할 수 없다. 우리는 생명의 주님이 자기 말씀과 영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해내실 때까지 죄와 사망의 능력에 자발적으로 따르는 종이다.


221쪽 1~2줄 사이에 새 단락 추가


……압도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모든 입양 절차를 마친 후……


☞ ……압도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선택하고 거듭나는 일을 하나님이 가능하게 하셨다고 믿는다. 결국 구원의 효력을 일으키는 것은 자기의 의지와 행동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좋은 소식은 이보다 훨씬 위대한데, 이것은 나쁜 소식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나쁜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선택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요, 구원의 효력이 사람에게 의존한다면 아무도 구속받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모든 입양 절차를 마친 후……


221쪽 아래 10줄 단락 끝에 각주 추가


각주) C. H. Spurgeon, The New Park Street Pulpit, vol. 4, sermon 181 (London, 1858), 129–136.


223쪽 마지막 줄(마지막 단락)에 이어 여러 단락 추가


……영향력을 발휘해서 온 누리에 퍼지게 된다.


☞ ……영향력을 발휘해서 온 누리에 퍼지게 된다.

삼위 하나님이 자기의 긍휼을 부으실 것을 굳게 결심하셨을 때, 우리는 직접 공헌하기 위한 어떤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우리가 은혜와 그리고 자기 선행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아도, 우리가 자기 구원을 어떤 의미에서 자기의 의지나 노력으로 돌릴 때 이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 우리는 기도함으로 구원받지 않는다. 그보다도 우리는 자기의 눈을 들어 하늘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은혜를 이미 받았으므로 은혜를 위해 기도하도록 마음에 감동하심을 받는다. 오래전인 529년 오랑주 공의회에서 교회는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자가 받아들이기 어렵게 생각할 수 있는 신앙 고백을 공식 발표했다. 이 신앙 고백은 길게 인용할 가치가 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 기도의 결과로 수여될 수 있어도 우리로 하나님께 기도하게 이끄는 것이 은혜 자체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이사야 선지자나 그와 똑같은 것을 다음처럼 말하는 사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누군가가 자기 의지가 죄로부터 정결해지기를 하나님이 기다리신다고 주장하면서도 심지어 우리의 의지가 정결해지는 것이 성령의 주입과 사역으로 말미암는다고 고백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솔로몬을 통해 “그 뜻은 주께서 예비하신 것”이라고 친히 말씀하시는 성령을 반대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믿음의 성장뿐 아니라 믿음의 시작과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믿는 믿음을 향한 열망 자체도 은혜의 선물로, 곧 우리의 의지를 바로잡으시고 불신에서 신앙으로 불경건에서 경건으로 돌이키시는 성령의 영감으로 말미암지 않고 선천적으로 우리에게 속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이 사람이 사도들의 가르침에 반대한다는 증거다……그 이유는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진술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분리된 사람을 어느 정도 신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하나님이 우리가 믿고 결의하고 열망하고 애쓰고 노력하고 기도하는 등의 일을 할 때 자기 은사와는 별개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신다고 말하면서도 우리가 심지어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이 모든 일을 하기 위한 믿음이나 의지나 힘을 갖게 되는 것이 우리 내면에 성령의 주입과 영감으로 말미암는다고 고백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사도들을 반대하는 것이다……누군가가 스스로 영생의 구원과 관련된 올바른 의견을 형성하거나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거나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의 힘으로 복음의 선포에 동의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면, 이 사람은 이단의 영에게 이끌리는 것이다……누군가가 스스로 자유의지로 온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이 사람이 진실한 믿음에 설 자리가 없다는 증거다.(각주-John H. Leith, Creeds of  the Churches, 3rd ed.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1983), 38–39)


이와 같은 선언은 교회가 이 점에서 항상 논란에 직면했다는 사실과 “칼빈주의자”가 주권적인 은혜에 대한 이런 변호를 최초로 제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234쪽 위 13줄 내용 추가


……영생을 얻을 만한 것이 전혀 못 된다.


☞ ……영생을 얻을 만한 것이 전혀 못 된다. 여러분이 구원에서 “우리의 역할”에 관해 말하고 싶다면 그것이 죄와 저항이다.


246쪽 아래 12~11줄 내용 추가


……선한 것으로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용납인 것이다.

그것을 종교개혁의 방식으로 표현하면……


☞ ……선한 것으로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용납인 것이다. 이것은 죄인의 도덕적 새로워짐(중생과 성화)을 무시하지 않았다. 실제로 종교개혁은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칭의와 성화를 모두 받는다고 주장했다. 칭의와 성화는 분리할 수 없다. 하지만 칭의와 성화는 같지 않다.

   중세 교회는 칭의의 결정을 성화의 과정으로 함몰시켰다. 여러분은 은혜와 협력함으로써 실제로 의로워지게 되고(의롭다 하심을 받고) 마지막 심판에서 최종 칭의를 공로로 받는다. 우리 대다수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여전히 불완전하므로 천국에서 완전하게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기 전까지 얼마간 연옥에 있는 것이 불가피하다. 종교개혁가들은 칭의가 우리가 생전에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전하고 온전하게 소유하는 것이라는 복음을 재발견했다. 따라서 우리는 감사함으로 살아야 한다. 칭의는 우리가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근거며 목표가 아니다.

그것을 종교개혁의 방식으로 표현하면……


251쪽 아래 9줄~252쪽 위 3줄 단락 전체 교체


우리가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요구하시지는 않는다.


☞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믿음을 통해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한 것은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죄를 악한 행동으로 단편화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의를 하나님의 인정을 공로로 받을 수 있는 선한 감정과 행동으로 단편화한 것은 로마 교회였다.

   로마 교회는 우리가 은혜와 무관하게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절대 가르치지 않았다. 실제로 이 이단(펠라기우스주의)은 거듭 정죄되었다. 로마 교회는 우리가 믿음과 무관하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적이 없으며 그리스도와 무관하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적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초점은 사소한 수식어구에 있었는데, 이것은 “오직”(sola)이다. 성경을 바탕으로 종교개혁자들은 우리의 상태가 매우 절망적이어서 우리에게 구조 작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랑하는 성향과 행동을 일으키기 위해 우리 마음속에서 일하시는 성령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시험을 견딜 수 있는 의를 가져오시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믿음을 통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 칭의와 관련해서, 이것은 단순히 우리의 노력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가 다 더러운 옷 같다”는 것이다(사 64:6). 우리는 은혜의 권능을 부여받은 성화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최선을 요구하시지, 우리의 최선을 요구하시지는 않는다.


261쪽 위 9줄 내용 추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 그렇지만 복음은 우리의 칭의뿐 아니라 성화의 원천으로도 충분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고 성화되는 과정에 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261쪽 위 17줄 내용 추가


……그분 안에서 우리는 영화롭게 될 것이다. 


☞ ……그분 안에서 우리는 영화롭게 될 것이다. 우리의 칭의는 이미 완전하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우리의 성화는 우리가 마지막 날에 영화롭게 되고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완료되지 않는 과제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것을 누린다.


263쪽 위 2~6줄 내용 교체


……지고한 선(summum bonum)이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 ……지고한 선(summum bonum)이었다. 로마 교회는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가 충분하다고 부언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에 우리 자신의 행위 중 어떤 것을 덧붙이는 일은 우리가 사용한 티슈와 탄산음료 캔을 천에 꿰매어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263쪽 8~9줄 내용 교체


……직접 목도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우리는 하나님께서……것으로 만족한다.


☞ ……직접 목도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복음으로 옷을 입으신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266쪽 각주 47) 삭제


269쪽 위 10~15줄 내용 교체


……그리고 신뢰(지식과 동의에 기초해서 영혼의 안전을 그리스도께 맡기는 것)로 정의했다. 하지만 ‘주권 구원’을 지지하는 어느 중견 학자는……믿음은 순종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울 사도가 로마서 4장에서……


……그리고 신뢰(지식과 동의에 기초해서 영혼의 안전을 그리스도께 맡기는 것)로 정의했다. 하지만 “주권 구원”을 지지하는 어떤 중요 학자는 의롭다 하심을 받는 믿음을 순종으로 정의한다. 로마 교회가 믿음이 사랑으로 역사할 때까지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치듯이, 이 주권 구원 지지자들도 믿음의 행위를 믿음의 열매와 혼동한다. 성경에 따르면, 믿음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온갖 유익을 받는 빈손인데 이 유익에는 성화도 포함된다. 믿음은 구원에 아무것도 공헌하지 못하고 단지 하나님이 아들 안에서 주신 은혜의 약속을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어서 구원의 도구에 불과하다. 칭의의 문제와 관련해서, 믿음과 행위는 완전히 상반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위해 일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지 이 둘을 동시에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상태는 두 번째 가능성을 배제한다. 그것은 바울 사도가 로마서 4장에서……


270쪽 위 5~10줄 내용 교체


……하나님의 확신이다. 참으로 이것들은 중요한 표현들이다.

물론 믿음이 순종을 포함하지는……의지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구주시지만 주님은 아니시다’고……


☞ ……하나님의 확신이다.

우리 구원처럼 중대한 문제와 관련해서 정의는 언어 놀이 이상의 것이다. ‘예수님이 구주시지만 주님은 주님은 아니시다’고……


270쪽 위 15~24줄 내용 교체


실제로 종교개혁은 이 논쟁에서……기운이 막혀 버린 씨앗에 불과하다. 종교개혁의 입장에서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 우리는 신앙생활의 중간보다 처음에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믿기가 더 쉽다. 특히 우리가 분명한 회심 체험을 떠올릴 수 있는 경우에, 자신이 공헌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죄와 배역뿐이라고 인정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구원받았다.” 우리 마음은 변화되었다. 우리는 하나님과 거룩함의 성장을 소원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사실이지만, 위험한 점은 우리가 자기 믿음을 은혜의 결과로 돌리고 은혜의 대상(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 신학은 우리가 율법주의(행위 의)와 반율법주의(하나님의 율법과 순종의 명령에 대한 배척)를 모두 피하도록 도와준다. 반율법주의에 대해,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모든 사람이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다고 우리에게 말한다(가령 롬 6장을 보라). 루터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단독적인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우리 믿음은 선한 일로 역사한다. 종교개혁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271쪽 위 16줄 내용 추가


……모든 사람들에게는 불가피한 것이다.


☞ ……모든 사람들에게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내재하는 죄와 일평생 씨름하지만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언제나 온전히 의로울 것이다.


272쪽 아래 3줄 내용 추가


……확실히 위선자들이었던 셈이다!


☞ ……확실히 위선자들이었던 셈이다! 비극적이게도 경건주의는 나름의 위선을 초래했다. 경건주의자들은 여전히 교회 안에 머물면서도 소집단을 형성했다(이를테면 옥스퍼드에서 웨슬리의 “신성 클럽”). 그렇지만 심지어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도 나중에 이 시기 동안 자기가 실제로 회심하지 않았거나 자기 구원을 자신하지 못했다고 회고할 것이다. 평범한 그리스도인보다 높은 수준의 완전함을 성취했다는 야심만만한 주장은 사람들을 넘어지게 만든다. 이런 주장은 절망이나 자기 의를 낳으며 종종 이 두 가지를 모두 유발하기도 하는데, 이 두 가지는 내적인 불안과 외적인 가식이다.


273쪽 위 9~10줄 내용 교체


……더 큰 관심을 보였다.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감정만을 북돋우고자 했다.


☞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경건주의자들은 가슴을 따뜻하게 하기를 원하면서도 불을 피우려면 나무(바른 교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278쪽 위 5~15줄 내용 교체


……우리의 반응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까닭에, ‘자신을 비우고……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


☞ ……우리의 반응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심지어 우리는 실패할 때도 자기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받으며 자기가 죄를 범한 사람들과 화목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해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에 근거한다.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께 맡기자’는 식의 소극적 태도에 호소하는 것이 중생의 실재와 내재하는 죄와 싸우라는 성경의 지속적인 촉구를 소홀히 하는 것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경은 종종 입양 비유에 의지하기도 한다. 우리는 선택받고 구속받고 중생되고 의롭다 하심을 받고 법률적으로 입양된다. 그렇지만 이 가족 안에서 성장하는 과정에 더 큰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는 자기의 인격, 자아상, 관계, 행동을 정의하고 형성하는 가족 정체성을 삶에서 실행한다. 우리는 자기 구원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느니라”라고 우리에게 촉구하는 것도 사실이다(빌 2:12-13). 우리는 형이나 누나를 본받음으로 이 가족에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무엇을 하실 것인가?”가 아니라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의 존재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심지어 비기독교인도 표면적으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를 수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그리스도의 포도나무의 가지, 그리스도의 유산의 공동 상속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를 성화에서 수동적으로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며,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실 뿐 아니라 자기의 새로운 창조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만드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의 승리한 삶에 우리로 뿌리내리게 한다.


280쪽 아래 7줄 내용 추가


……과연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 ……과연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이런 근심은 우리가 “육체 안에서”보다는 “성령 안에서” 선한 일을 할 것을 자주 경고받을 때 특히 커졌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했을까? 이제 나는 단지 자신이 옳은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 일을 하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 실제로 성령이심을 확신해야 했다. 여러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280쪽 아래 1줄 내용 추가


……라고 정의하고 있다.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율법이……


☞ ……라고 정의하고 있다. 범행의 죄(우리가 행하는 잘못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태만의 죄(우리가 행하지 않은 일)도 있다.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율법이……


281쪽 아래 10줄 내용 추가


……삶 속에서 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 ……삶 속에서 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존 웨슬리는 완전해진 신자도 실수를 저지를 수 있음을 인정했으나 이것은 죄를 사소화한다. 웨슬리는 우리가 사랑 안에서 완전해질 수 있으나 어떤 지점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할 수도 있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성경은 신비적인 완전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의한다. 내가 하나님의 율법과의 관계에서 완전하지 않다면 사랑에서도 완전하지 않다. 율법을 오해하는 이 견해는 복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왜곡할 수밖에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286쪽 위 11줄~287쪽 위 10줄까지 내용을 교체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특징을 보인다. 사실, 바울 사도는 중요치 않은……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마 11:16~19).

칼빈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특징을 보인다.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대개 불충분한 죄의 관점을 상정한다. 골로새서 2장에서 바울은 결혼과 일정 음식에 반대하는 설교를 하면서 마치 이런 금지가 죄악된 마음을 억누를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의 한담을 피할 것을 신자에게 경고한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더 강한 그리스도인이 “좋은 간증”을 갖기 위해 일반 식당에서 술 마시는 일을 피할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지만 아래서 살펴볼 것처럼, 바울은 면밀한 양심을 가진 자들을 더 연약한 형제자매로 밝힌다.

   위의 인용에서 칼빈의 논지는 우리가 이론적으로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복음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단언하더라도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율법의 잠재적인 정죄 아래에 있고 거룩한 삶을 위해 스스로 고안한 규칙의 지배를 여전히 따르는 것처럼 살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마치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사탄에 의해 조작된 인색한 폭군이신 것처럼 살아가면서도 어떻게 자신이 은혜롭고 관대하고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은혜는 우리가 이기적으로 생활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오히려 은혜는 우리가 생전 처음으로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장엄한 경배요, 측량할 수 없는 감사의 표현이기도 하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경건이나 성결에 대한 그 모든 정의 안에 성경 이외의 지침들-비록 그런 지침들을 성경에서‘추론’한 것이라고 주장할지라도-을 포함시키는 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먼저 선포했고 그 후에 우리 주님께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심판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 15:8~9). 아마도 예수님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사실상 요주의 인물로 철저하게 낙인찍히셨던 것 같다.“ 이세대를무엇으로비유할까……요한이와서먹지도않고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마 11:16~19).

   우리는 바리새인이 거룩함에 대한 면밀한 관심으로 정교한 규칙을 발전시켰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리새인은 자신들이 자기 전통으로 성경을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성경의 명령 주변에 울타리를 세우고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이 노동을 그침으로써 안식일을 지키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다면, 이웃을 구해내거나 음식을 위해 곡식을 줍는 일조차 불법이다. 그렇지만 이런 부가 규칙은 하나님의 명령과 구별하기 어렵게 되었다. 바리새인은 나무 때문에 숲을 놓쳤으며, 하나님의 율법의 진정한 의도, 곧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등한시하면서도 자기의 규정을 따랐다. 예수님이 이런 맥락에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나는 확대된 내 가족과 교계에서 많은 사람이 결혼식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시민권 운동 중에 인종차별적 견해를 서슴없이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은 노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셨는데, 나는 자기 부모를 소홀히 하고 우리 어머니가 교인들이 방문하도록 초대하는 데도 거절한 우리 교회 장로들이 생각난다. 그런데도 이 장로들은 친구들과 맥주 한잔 마시는 것을 적어도 “나쁜 간증”으로 여길 것이다.

칼빈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289쪽 아래 4줄~290쪽 위 10줄 내용 교체


……아마 그걸 종교로 인정했을 걸.’ 그렇지 않다면 이와 같은 모습들과는 정반대로……감사의 태도를 불러일으킨다.


☞ ……아마 그걸 종교로 인정했을 걸.’ 이것은 기독교적 자유가 아니라 양심의 침해다. 우리는 형제자매가 심지어 양심의 명령에 반해 참여함으로 자기의 자유를 긍정하도록 부추길 때 형제자매를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294쪽 마지막 줄에 내용 추가


……그 전투에 임할 수 있다. 


☞ ……그 전투에 임할 수 있다. 복음을 절대 당연시하지 말라. 여러분에게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중간과 마지막에도 복음이 매우 필요하다. 이 복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다.


306쪽 아래 11줄 내용 교체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강력한 것이다.


☞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은혜로운 것이다. 우리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았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지만, 처음부터 자기를 그리스도 안에 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신 안에 두셨다.


326쪽 위 3줄~아래 끝까지 내용 교체


……그 용어 자체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긴 하지만, ‘사크라멘툼……실제적인 통로다(세례는 믿음을 간절히 기다리며, 성찬은 믿음을 강화한다).


☞ ……그 용어 자체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또는 예수 그리스도에 덧붙여) 어떤 행위나 예식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반발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성례를 이런 식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많은 개신교 신자는 처음부터 세례와 성례가 주로 우리의 행위라고 상정한다. 세례는 은혜의 수단이 아닌 헌신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곧 우리가 자기 결정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다. 성찬은 우리가 자신을 기억하고 새롭게 드리기 위한 기회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이 논법에 따르면, 이 두 성례 모두에서 행위 주체는 신자다.

성례가 우리의 행위라면 성례를 “구원의 수단”으로 부르는 것은 매우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세례와 성찬은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수단이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자기의 열심, 헌신, 결정, 섬김에 대해 증언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자기 은혜 가운데 마지막까지 우리를 용서하고 의롭다 하고 새롭게 하고 보전하기로 약속하시는 것이다. 세례와 성찬은 하나님이 자기 말씀으로 우리에게 선포하신 언약 약속을 비준한다. 그래서 성례는 원장의 “행위” 계정에 속할 수 없다. 성례는 하나님이 자기의 은혜와 선물을 주시는 수단이다. 말씀 선포처럼 세례와 성찬도 믿음과 감사에서 우러나는 순종의 반응을 일으키지만,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일하고 계시며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정해진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크라멘툼’이라는 라틴어 단어는 ‘신성하거나 성별된 어떤 것’을 의미한다. 이 라틴어 단어는‘뮈스테리온(비밀)’이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것인데, 우리는 에베소서 1장 9절, 3장 9절, 5장 32절과 골로새서 1장 27절과 디모데전서 3장 16절과 요한계시록 1장 20절, 17장 7절에서 이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두 언어에서 이 용어는 시민 예식이나 종교 예식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중요한 것은 용어 자체가 아니라 성경이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구체적 예식의 의미와 관례를 정의하는 방식이다. 리처드 멀러(Richard Muller)는 자신의 『라틴어- 헬라어 신학용어 사전』(Dictionary of Latin and Greek Theological Terms)에서 ‘사크라멘툼’을‘은혜의 표지인 동시에 은혜의 수단인 거룩한 의식’으로 규정하고 있다.(각주-Richard Muller, Dictionary of Latin and Greek Theological Terms (Grand Rapids, Mich.: Baker, 1985), p. 267.)


335쪽 아래 6줄~336쪽 위 11줄까지 내용 교체


……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성화의 과정이……바라고 계신다.


☞ ……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로 하나님의 가족에 입양된 우리는 좋은 환경을 누릴 뿐 아니라 하늘의 양식도 정기적으로 섭취하며 자란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죽으셨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각자를 자기의 구속 사역에 포함시키심을 우리에게 증명하시는 것과 별개다. 우리가 매주 복음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믿음과 회개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이 복음이 우리와 관련됨을 정기적으로 우리에게 확신시키실 필요도 있다.


336쪽 아래 9~8줄 문장 교체


……주장했던 이유다. 세례와 성찬은 오직……은혜의 복음을 강화한다. 하지만 중세시대의……


☞ ……주장했던 이유다. 아버지는 선포된 복음과 함께 세례와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그의 유익을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손에 주신다. 하지만 중세 시대의……


337쪽 위 5줄 끝(단락 끝) 내용 추가


……연료를 새롭게 채워야 하는 이유다.


☞ ……연료를 새롭게 채워야 하는 이유다. 감사의 수단은 많은데, 그중에 주요 수단으로는 다른 사람과 복음을 나누는 것과 자기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뿐 아니라 기도와 묵상도 있다. 그렇지만 은혜의 수단은 세 가지뿐인데, 곧 말씀, 세례, 성찬이다.


337쪽 위 17~18줄 내용 교체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잃어버린 활력을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심히 연약하고 우리의 마음도……


☞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 정기적으로 힘을 받으려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심히 연약하고 우리의 마음도……


357쪽 아래 9~8줄 내용 추가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택함 받은 것이다(계 5:9-10).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구별’이……


☞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택함 받은 것이다(계 5:9-10). 이것은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도 교회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구속자와 결국 이 구속자에게로 이어질 자손에 대한 약속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처음부터 이미 존재했다. 교회는 옛 언약에서 특정 민족 이스라엘과 동일시되었으나, 하나님의 이 이스라엘은 이제 세계적인 공동체다. 이스라엘 족장과 선지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이 성취될 때 이스라엘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확대한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구별’이……


359쪽 위 9줄~361쪽 위 9줄 내용 교체


……찬양하는 데 이바지하도록 해야만 했다. 구약학자 메러디스 클라인은 이와 같은……계시하시고, 구원하시고, 보여주고 계셨던 것이다.

하지만 나사렛의 어느 고요한 밤, 한 유대인 처녀가……


☞ ……찬양하는 데 이바지하도록 해야만 했다. 아담이 타락한 뒤에 에덴동산은 범속해져서 더 이상 거룩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훨씬 나중에 하나님은 이 땅에서 자기 나라를 이스라엘 민족과 동일시하시는데, 이스라엘의 사회 문제와 개인 문제를 매우 세밀하게 직접 다스리신다. 하지만 “그들[이스라엘 자손]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겼다”(호 6:7). 또다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되어 “에덴의 동쪽”에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교회가 특정한 지정학적 민족과 융합되는 일은 단지 한시적인 것이었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소개하는 예고편처럼, 이것도 장차 나타날 볼거리에 대한 미리보기일 뿐이었다.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그림자는 실체에 자리를 내어준다.

나사렛의 어느 고요한 밤, 한 유대인 처녀가……


365쪽 위 13~14줄 내용 교체


……특히 칼빈의 경우,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은 도피처나 우월감이 아니라, 경건한 영향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재건이 아닌 혁신이었다.


☞ ……특히 칼빈의 경우,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은 도피처나 우월감이 아니라, 경건한 인내와 자기 소명에서의 탁월함이었다.


369쪽 위 13~21줄 내용 교체


……종교적인 주제들에서 탈피한 사람들이었다. 중세 시대에 예술가들이 생계를……참여할 것을 주장했다. 바흐의 원대한 포부는 종교개혁을……


☞ ……종교적인 주제들에서 탈피한 사람들이었다. 그때까지 예술가로 생계를 꾸리는 최선의 길은 둘째 계명이 명백히 금지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종교개혁은 교회에서 세상으로 강조점을 옮겼다. 역설적이게도 예술이 종교, 경건, 예배의 관심사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요구는 창조의 선함, 공통의 문화 영역, 세속적 소명을 경시했다. 그렇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이와 같은 문화 활동을 복음적, 도덕적, 헌신적 유용성의 측면에서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구두 수선공도 좋은 구두를 만들어 공정한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바흐의 원대한 포부는 종교개혁을……


385쪽 “더 깊은 연구를 위한 참고 문헌”앞에 다음 추가


[ 2판 발문 ]

복음이 충분히 단순해서 아이도 이해할 수 있고 그럼에도 그토록 심오해서 가장 성숙한 신자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 중에 나온다. 나는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에 놀라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은사 얻기를 간구하며 몇 번이고 거듭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깊이에 탄복한다. 우리는 영광을 입은 상태에 있을지라도 놀라운 복음에 압도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이르더라도 우리에겐 아직 배울 것이 그토록 많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는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저술한 이래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더 저술하거나 편집했다. 『기만의 괴로움』,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 『세상의 포로 된 교회』,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라』, 『파워 릴리전』 같은 일부는 특별히 미국 기독교에서 메시지가 기독교보다는 미국에 더 가까워지는 현상을 탐구한 책이다. 우리는 집중력을 잃었다. 우리의 메시지와 방법론은 뒤틀렸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이라 할 수 없는 인간이 중심에 있는 복음을 향하여 돌아섰다. 대위임령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망가뜨리는 계획과 전략을 향해 돌아섰다. 그동안 내가 쓴 다른 책들은 성경의 메시지와 선교에 더 긍정적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책에는 『우리가 믿나이다』, 『개혁신학의 뼈대를 세워 주는 언약신학』, 『연약함의 자리』가 있다.

더 최근에 내가 쓴 세 권은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복음이 이끄는 기독교』, 『위대한 사명』이다. 첫째, 나는 복음을 당연시해서 생기는 결과가 비극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현대 다수의 기독교회에서는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같은 값진 단어가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관심을 끌려고 애쓰다 하찮게 여겨지거나 심지어 왜곡과 부정을 당한다. 『복음이 이끄는 기독교』는 진단에서 치료로 나아가면서 역사 한 가운데에서 교회를 만들어 그 성장과 확장을 유지시키면서 신자들을 각자 순례의 길 가운데 계속 머물게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탐구한다. 『위대한 사명』에서는 “선교 혐오”의 도전을 막아 내면서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에 대한 우리의 전망을 새롭게 하라는 요청을 밝혔다. 여기에는 우리 주께서 이 사명의 성공을 위해 전해 주시는 구체적인 전략이 담겼다.

나는 자주 이렇게 질문한다.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 물론 이 질문에 적절하게 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주제넘는 태도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의 대답은 늘 예측 가능하다. 우리가 오늘날 겪는 가장 큰 도전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같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당연하게 여기고 대부분 그 자체로는 악하지 않은 다른 온갖 일에 집중력을 빼앗기는 것이다. 집중력을 잃는다는 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일이고, 우리가 믿는 대상과 우리가 믿는 이유를 안다는 것은 늘 성직자와 교사와 부모로서 내가 가진 관심사의 핵심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최근 20여 년간 상황이 나빠졌다. 심지어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전례없이 인간 중심적 사고와 실천에 더 크게 굴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복음을 자조적 도덕주의와 혼동하는 것이 경우에 따라 더 주류 입장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 자신이 느끼는 필요와 권면과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변화 사역보다 적절하지도 않고 흥미롭지도 않다. 성경의 권위나 원죄, 대속의 속죄, 오직 믿음을 통한 칭의같이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이것도 문제였다) 확신이 지금은 복음주의 진영에서 널리 의심받거나 도전받는다. 게다가 교회의 올바른 사역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과 가족 안에서 경건의 수행이 타락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퓨리서치센터에서 개최한 최신 포럼의 성과를 요약한 기사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에 비해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의 (성경을 포함한) 종교 이해도가 더 높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실제로 일부 충실한 신자 사이의 지식 격차는 ‘맹목적인 신앙’이라는 용어에 새로운 의미를 더할 수 있다.” “유대인과 모르몬 교도는 종교 지식 수준 측정 결과에서 그들(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 바로 아래 등위를 차지했다. 차이가 얼마나 근소한지는 통계적으로 동률로 칠 수도 있을 정도다.”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는 성경과 기초 기독교 교리를 더 많이 아는 것 외에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 지도자였다는 사실도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모르몬 교도가 성경 시험을 치르면 복음주의 개신교도보다 성적이 더 좋을 것이다. 퓨리서치센터의 포럼이 보고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랬다. “미국 성인 중에 거의 60퍼센트가 삶에서 종교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고, 40퍼센트 정도는 한 주에 최소 한 번은 예배에 참석한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 종교 인식 조사 보고’에 따르면 다수의 미국인이 자기가 속한 종교를 포함하여 주류 종교 전통의 교리와 실천과 역사와 주도적 인물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고 한다.”

다른 측면에서는 상황이 개선됐다. 복음과 복음에 대한 왜곡 사이의 대립이 더 뚜렷해지는 가운데, 복음은 다양한 배경과 교회 전통에서 자란 수많은 젊은 그리스도인에 의해 다시 발견되고 있다. 이 트렌드가 지속되면서 나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것은 이 트렌드가 성숙하다가 깊고 너른 강물이 되어 우리 시대의 메말라 버린 사막 같은 풍경에 물을 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운동이 실제 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교회에서 새로 발견된 활력이 평생에 걸쳐 양육되고 형성되며 가르침을 받고 깊어져야 한다.

이 세상에서는 설득력 있는 메시지와 실천이 꽤나 성공한다. 여기에는 즉석으로 희열을 주는 거짓 복음, 우리를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세례가 있으며, 우리를 사육하는 양식은 절대로 배부를 수 없는 패스트푸드이고, 우리는 무슨 의식처럼 순서가 정해진 쇼핑과 오락의 세계로 끌려다닌다. 그래서 우리는 죄와 심판과 사망의 현실에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각본에 순종하는 것으로만 하나님의 새 창조라는 드라마의 전개 가운데 소품과 죽는 것으로 끝나는 배역과 더불어 우리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이 극장에서 성부는 극작가이고, 성자는 주연 배우이며, 성령은 배역 담당 책임자다. 내 소망은 이 이야기가 얼마나 근본적인지 그리고 그 함의가 지금뿐만 아니라 언제든 심지어 말세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얼마나 충격적인지를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같은 책을 통해 우리가 점점 더 바르게 깨닫는 것이다.



[ 부록 ]

신학자 도널드 블로시(Donald Bloesch)가 말했다. “대화를 줄이고 독백을 늘릴 때가 왔다. 바로 하나님과 말하는 것이다.” 교리 주제를 논의할 때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헷갈려요. 성경을 봐도 정말 명쾌하지 않아요.” 그러나 이 혼동을 일으킨 혐의는 성경보다는 논쟁 양편의 신학적 수사론자에게 부과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책에서 거론한 여러 주제에 대해 상세하게 언급하셨다. 나는 이제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여러분에게 인간 조건, 선택, 특수 구속, 중생, 보증과 관련된 여러 본문을 선별해서 깊이 있게 연구하기를 청한다. 이 목록이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뜻하지 않게 성경에 대해 어느 정도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담은 우리의 원형이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 인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경우 발생하는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 경고받았다.


창 2:17: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아담이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속박을 벗어나 독립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아담과 우리 전 인류는 영적 자살을 경험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사람은 애초에 하나님과 분리되고, 소망도 없으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나 복음을 믿는 것에 대해 파악할 잠재력도 없이 태어났다.


욥 15:14: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시 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8:3: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시 130: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잠 20:9: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전 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전 7: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전 9:3: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사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막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요 3:19: 사람들이……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롬 3:9-12: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6: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롬 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엡 2:1-3: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분명히 우리의 사정이 그토록 절박해서 우리 자력으로는 이에 대해 전적으로 무능하다.


욥 14:4: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렘 13:23: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마 7:18: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고후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인간의 전적 무능이라는 충격적인 현실 때문에, 주도권은 하나님에게 속한다. 우리는 흑암의 침묵 가운데 하나님이 말씀하고 결정을 전하시기를 기다린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서 진노와 영원한 증오 외에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놀라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이 자비와 긍휼 가운데 행동하여 모든 행위, 모든 나라와 종족, 모든 민족적이고 인종적인 배경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택하여 새로운 인류를 구성하기로 작정하면서 아들을 이 나라의 새로운 머리, 둘째 아담으로 세우신다는 것이다.


시 33:12: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시 106:5: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게 하소서

마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 24:22, 24, 31: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눅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롬 8:28-3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롬 11:28: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골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살전 5: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딛 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벧전 1:1-2: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벧전 2:8-9: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