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10만 목회자와 1,000만 성도들의 아름다운 결혼 행진곡을 위하여
- 백금산 목사(예수가족교회)
* 목회자와 성도들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 나라에는 약 10만 명의 목회자와 약 1,000만 명의 성도가 있다. 이들은 제각기 이 땅의 약 5만 교회에서 어떤 이들은 목회자로, 어떤 이들은 성도로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목회자는 성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성도들은 목회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목회자와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라는 물음을 던져 본다면 어떤 대답들이 나올까?
* 목회자와 성도들의 경험에 근거한 답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함에 있어서 흔히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자신의 목회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목회자에게 이렇게 조언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목회자는 성도를 너무 가까이 해서도, 너무 멀리 해서도 안 되네.” 무슨 말인가? 목회자는 성도를 너무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목회자를 너무 가볍게 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란다. 반대로 목회자는 성도를 너무 멀리 해서도 안 된다. 성도가 목회자를 너무 어렵게 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는 너무 친하지도 않고, 너무 서먹하지도 않은 적당한 선이 좋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런 조언이 오랜 목회 생활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때로는 현실적인 목회 처세술을 담고 있어 목회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또한 교회 생활을 오래한 성도들이 새 신자들에게 목회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이렇게 조언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목회자와는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도 안 된다네” 무슨 말인가? 목회자와 너무 친하면 목회자의 사생활을 알게 되고, 자연이 목회자의 허물을 많이 알게 되어 설교의 은혜가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목회자와 너무 친하게 지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목회자와 너무 멀어지게 되면 그것도 교회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적당한 선에서 목회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 제일 좋다는 뜻이다.
불완전한 목회자와 불완전한 성도들이 만나 풍파 많은 교회에서 서로 부딪히다 보면 서로에게 가슴 아픈 상처를 많이 주고받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결론이 목회자 편에서도, 성도 편에서도 그저 ‘적당히’, ‘서로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필요에 따라 만났다가 필요에 따라 헤어지면 된다.’는 처세술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 불행한 교회의 모습, 너무 안타까운 목회자와 성도의 초상화가 아닌가?
*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을 찾아서
그렇다면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한 해답을 불완전한 경험에서 찾지 말고, 성경에서 찾는다면 어떨까? 성도로 부르시고, 또한 성도 가운데 목회자를 부르시고, 또한 한 지역 교회에서 목회자와 성도로 만나 함께 살도록 섭리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가 어떠하기를 바라실까? 하나님은 성경에서 목회자와 성도들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어떻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이 질문이야말로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목회자와 모든 성도가 다시금 깊게 생각해 볼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백
“이 세상에서 당신을 제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당신은 나의 기쁨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게 되는 모든 경우에 나는 당신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나는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둘이 아니요 하나입니다.”
이 고백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는 어떤 관계일까? 주례자 앞에서 결혼식 서약을 하는 신랑과 신부일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결혼식 때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있는 결혼한 남편과 아내일 것이다.
그런데 신랑과 신부, 남편과 아내 즉 부부 외에 서로에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누구일까? 목회자와 성도들이다. 결혼식 서약과 고백은 한 교회의 목회자로 청빙받은 목회자와 목회자를 청빙한 성도들이 동일하게 고백할 수 있는 내용이다. 목회자와 성도로 만나 함께 신앙 생활한다는 것은 처녀와 총각이 만나 신랑과 신부로 결혼식을 올리고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목회자와 성도로 연합된다는 것은 목회자가 성도에게 “나는 이제 여러분과 결혼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신랑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고, 성도는 목회자에게 “우리는 이제 목사님과 결혼했습니다. 우리는 목사님의 신부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것이 말이 되는 소리냐?”라고 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내 말이 아니고 성경이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를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성경은 목회자와 성도 간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를 닮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가장 좋은 목회자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교회를 사랑하는 목회자일 것이다. 또한 가장 좋은 성도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듯이 목회자를 사랑하는 성도일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수많은 비유를 통해 설명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비유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 남편과 아내의 결혼 관계로 비유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신랑이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이런 관계는 곧 목회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가장 심오한 모델이다. 목회자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성도와 결혼한 것이다. 목회자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성도들을 신부처럼 대해야 하고, 성도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목회자를 신랑처럼 대해야 한다. 목회자와 성도는 그리스도와 성도가 누리는 연합의 가시적인 모델인 동시에 축소판이기도 하다. 참으로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가 이와 같은 신랑과 신부, 남편과 아내 사이의 결혼 비유와 같은 연합 관계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목회자의 삶도, 성도의 삶도 새로운 변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될 것이다.
* 신앙 생활의 혁명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깨달음에서
왜냐하면 성도의 신앙 생활에 있어 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그리스도와 자신이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신앙 생활의 비밀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성도들에게 발생하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성도가 구원을 받게 된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이다. 즉 성도의 죄가 용서받게 된 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성도를 대신해서 성도의 죄 값을 치를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성도가 연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성도가 영생을 얻게 된 것도 모두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이다. 성도가 영생을 얻는 데 필요한 의를 얻게 된 것도 모두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성도에게 계좌이체해 주시기 때문이다. 성도가 신분상 거룩하게 된 것도, 경험상 거룩하게 성장해 가는 것도 모두 그리스도와 연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장차 성도가 그리스도처럼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온전히 변화되는 것도 그리스도와 연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신자의 모든 삶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신자의 비밀은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가 신자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다. 자신을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로 여기는 성도는 삶의 모든 관점이 바뀐다. 삶의 모든 중심이 그리스도이며, 삶의 모든 내용이 그리스도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깊이 깨닫고 누리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나의 옷이며, 나의 양식이며, 나의 집’이라고 고백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나의 구원이며, 나의 생명이며, 나의 힘이며, 나의 사랑이요, 나의 기쁨이요, 나의 소망’이라고 말하게 된다.
* 목회자와 성도와의 연합에 대한 진리를 깨닫는 것은 복된 교회 생활의 첫걸음
그런데 바로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이런 연합을 눈에 보이게,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관계가 바로 목회자와 성도와의 연합 관계다. 목회자와 성도의 연합은 바로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기초로 하며,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체험하는 구체적인 통로다. 목회자와 성도 간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위해 만드신 그리스도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처럼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가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기초로, 모델로 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또 한 번의 신앙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라 생각된다.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성도는 성도대로 신앙 생활의 새로운 변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연합 관계를 설명하는 비유가 신랑과 신부의 결혼 비유만이 아니다. 부모와 자녀, 목자와 양, 스승과 제자, 친구와 친구 등의 모든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한 비유는 모두가 다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런 시각으로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를 보면,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가 얼마나 풍성하며 놀라운 관계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목회자는 그 자신이 한 사람의 성도로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신부요, 자녀요, 양이요, 제자이며, 친구인 동시에 성도에 대해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남편이요 성도의 아버지와 어머니이며, 성도의 선생이며, 성도의 목자이자, 성도의 친구이기도 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 외에도 이런 방식으로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묘사해 주는 수십 가지의 비유를 가지고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목회자론이란 한 마디로 그리스도론을 모델로 적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수많은 비유 가운데 특정한 어느 한 가지만을 고집하고 다른 것은 전부 무시한다면 너무 편협하며 기형적이 될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로만 생각한다면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 모델을 제자훈련이라는 틀로만 보게 될 것이다. 또한 만일 친구 관계로만 생각한다면 목회자와 성도가 친구처럼 지내면 제일 좋은 관계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묘사하는 수십 가지의 비유 혹은 모델들은 각각 다른 비유 혹은 다른 모델이 줄 수 없는 독특한 진리의 측면이 있기 때문에 선별된 것이다. 따라서 이 모든 모델은 모두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상 중요한 비유들이고,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에 대한 모든 비유는 그대로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에 대한 모델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비유에는 다양성이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근본 원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비유들이 곧 그리스도의 대리인인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목회자, 그는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그림과 표지판
부끄럽게도 내가 이런 생각을 깊게 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책에 나오는 에드워즈의 목사론을 읽으면서다. 목사로 안수받은 지 벌써 십수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제대로 된 목회자상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 없이 십수 년의 세월을 훌쩍 보내 버렸다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또한 제대로 성도들을 섬기지 못했다는 아픔을 느끼게 된다. 10년 전쯤 어느 교회 부목사로 있던 시절, 40대 중반의 촉망받던 담임 목사님이 암으로 소천하기 며칠 전, 부목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제야 목회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은데…….” 하시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아마 그 목사님이 분명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 내용은 이 책에 나오는 진리의 한 단면이 아니었을까?
이 책은 이 땅의 10만 목회자에게 목회자의 초상화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그려 주며, 1,000만 성도가 목회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정표와 나침반이 되어 준다. 여기 성경이 말하는 목회자의 모습,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목회자와 성도들이 한 지역 교회에서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가장 아름다운 관계, 행복한 관계가 되는지에 대해 교회사에서 가장 탁월한 성경 해석과 적용을 한 네 편의 설교가 있다. 이 책은 미국 교회사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요 설교자요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목사 안수식 또는 목사 위임식 때 행한 설교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편집한 것이다. 에드워즈는 철저한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목회자의 정체성과 사역에 대한 진리를 분석한 후 이를 목회자와 성도 모두에게 실제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 네 편의 설교를 통해 교회사 최고의 목사 위임식 설교 현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이 목회자이건, 성도이건 간에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목회자의 모습과 성도의 모습에 자신을 비추어 보게 된다. 이는 참으로 놀랍고 영광스러운 체험인 동시에 참으로 두렵고 떨린 체험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우리는 에드워즈의 설교를 통해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관계인지를 보게 된다. 이 세상에서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를 능가하는 다른 인간관계(부부관계, 부모와 자식관계, 형제관계, 친구관계, 사제관계 등)가 있을까? 유교에서 말하는 ‘삼강오륜’의 인간관계가 모두 소중한 관계이지만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목회자와 성도의 만남’인 것을 알게 된다. 아! 목회자와 성도의 만남과 연합이 이처럼 중요한 것이로구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과 놀라움이 섬광처럼 우리의 마음에 다가온다. 그리고 좋은 목회자와 좋은 성도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한편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현실적인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본 목회자와 성도는 참으로 자신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자와 성도의 모습에서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를 고통스럽게 보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에서 우리가 참으로 멀리 떨어져 있구나 하는 탄식을 하게 된다.
오! 이 책이 이 땅의 10만 목회자와 1,000만 성도의 손에 들려져 이런 고백들이 쏟아져 나올 수만 있다면…….
“목회자는 성도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그리스도가 교회에게 자신의 목숨을 주시기까지 사랑했듯이 성도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섬겨야 합니다. 성도는 목회자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목숨을 다하며 사랑하듯이 목회자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섬겨야 합니다.”
물론 이런 고백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악함과 부족함 때문에 이 고백의 몇 퍼센트나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제대로 실천하고 있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보면 그 결과를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목표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목표도 모른 채 방황하는 것과 분명한 목표를 알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 약해서 쓰러지며, ‘이래서는 안 되는데, 빨리 일어서서 목표를 향해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야 하는데’라고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제 이 책을 통해 이 땅의 10만 목회자와 1,000만 성도의 아름다운 만남과 연합 그 복된 세계로 나가는 목회자와 성도의 힘찬 결혼 행진의 첫 걸음이 시작되기를…….
[지은이] 조나단 에드워즈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요,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지성은 너무나 심오하고 강하여 아직도 해마다 그의 업적에 관한 논평과 저술이 간행되고 있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러한 사상가 및 철학자로서의 명성보다 영어권 세계에서 가장 지적이고도 영적인 신학자요 대부흥사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생애의 가장 큰 목적은 그리스도를 통해 철저하게 하나님을 알고 찬미하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으로 하여금 그러한 삶을 살도록 각성시키는 일에 전력하였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메사추세츠 노샘프턴에서 목회를 시작했을 때 마침 뉴잉글랜드 전역은 처음의 청교도 정신으로부터 차츰 이완되어 영적으로 쇠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한 시대적 흐름에 저항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신앙회복과 거짓 종교, 즉 이단의 궤멸을 주창하며 영적 대각성 운동을 펼쳐 나갔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뜨거운 마음을 인정하시어 역사적 대부흥의 길을 여셨다.
그러나 인간적 안목으로는 아무리 보아도 그의 일생은 비극으로 끝이 났다. 즉, 노샘프턴 주민들에 의해 그는 사역지에서 쫓겨나야만 했고, 프리스톤 신학교의 총장직을 맡은 지 불과 두 달만에 열병으로 인해 삶을 마감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55세의 나이로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신학적 업적과 대부흥을 주도했던 뜨거운 설교들은 2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꺼지지 않는 불길로 남아 있다.
탁월한 신학적 이해력과 각성에 대한 직접적 체험론으로 인해 저술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을 두었지만, 그는 부흥신학의 제 일인자로 인정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옮긴이] 이용중
서울대학교 사범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KBS 취재 기자로 활동하다가 조나단 에드워즈, 찰스 스펄전 등을 책으로 만난 이후 좋은 번역의 가치를 절감하고 기독교 전문 번역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어 부흥과개혁사 전문번역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번역서로는 『개혁주의조직신학』, 『개혁주의인간론』, 『개혁주의구원론』, 『개혁주의종말론』, 『목회 황제 스펄전의 목사론』, 『십자가와 구원』,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 『ESV 스터디 바이블』(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다수가 있다.
[목차]
1. 목사는 성도의 영혼을 지키는 보초입니다
그리스도가 목회자에게 소중한 영혼을 맡기셨다
그리스도가 목회자에게 소중한 영혼을 맡기신 이유
목회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을 돌본 것에 대해 그리스도께 회계해야 한다
목회자를 향한 권면
성도들을 향한 권면
2. 목사의 모델은 그리스도입니다
목회자가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인가
목회자가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목회자를 향한 권면
성도들을 향한 권면
3. 목사는 빛과 열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목회자를 세우신 목적은 성도의 영혼에 등불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목회자가 불타는 등불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목회자가 빛나는 등불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목회자의 탁월성은 빛과 열의 결합에 있다
목회자가 빛과 열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목회가가 빛과 열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성도들은 어떻게 목회자를 대해야 하는가
4. 목사는 성도와 결혼한 사람입니다
목회자와 성도의 연합은 신랑과 신부가 결혼하는 것과 같다
목회자와 성도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위한 것이다
모든 목회자를 향한 권면
목회자를 향한 권면
성도들을 향한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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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10만 목회자와 1,000만 성도들의 아름다운 결혼 행진곡을 위하여
- 백금산 목사(예수가족교회)
* 목회자와 성도들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 나라에는 약 10만 명의 목회자와 약 1,000만 명의 성도가 있다. 이들은 제각기 이 땅의 약 5만 교회에서 어떤 이들은 목회자로, 어떤 이들은 성도로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목회자는 성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성도들은 목회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목회자와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라는 물음을 던져 본다면 어떤 대답들이 나올까?
* 목회자와 성도들의 경험에 근거한 답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함에 있어서 흔히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자신의 목회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목회자에게 이렇게 조언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목회자는 성도를 너무 가까이 해서도, 너무 멀리 해서도 안 되네.” 무슨 말인가? 목회자는 성도를 너무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목회자를 너무 가볍게 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란다. 반대로 목회자는 성도를 너무 멀리 해서도 안 된다. 성도가 목회자를 너무 어렵게 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는 너무 친하지도 않고, 너무 서먹하지도 않은 적당한 선이 좋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런 조언이 오랜 목회 생활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때로는 현실적인 목회 처세술을 담고 있어 목회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또한 교회 생활을 오래한 성도들이 새 신자들에게 목회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이렇게 조언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목회자와는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도 안 된다네” 무슨 말인가? 목회자와 너무 친하면 목회자의 사생활을 알게 되고, 자연이 목회자의 허물을 많이 알게 되어 설교의 은혜가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목회자와 너무 친하게 지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목회자와 너무 멀어지게 되면 그것도 교회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적당한 선에서 목회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 제일 좋다는 뜻이다.
불완전한 목회자와 불완전한 성도들이 만나 풍파 많은 교회에서 서로 부딪히다 보면 서로에게 가슴 아픈 상처를 많이 주고받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결론이 목회자 편에서도, 성도 편에서도 그저 ‘적당히’, ‘서로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필요에 따라 만났다가 필요에 따라 헤어지면 된다.’는 처세술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 불행한 교회의 모습, 너무 안타까운 목회자와 성도의 초상화가 아닌가?
*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을 찾아서
그렇다면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한 해답을 불완전한 경험에서 찾지 말고, 성경에서 찾는다면 어떨까? 성도로 부르시고, 또한 성도 가운데 목회자를 부르시고, 또한 한 지역 교회에서 목회자와 성도로 만나 함께 살도록 섭리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가 어떠하기를 바라실까? 하나님은 성경에서 목회자와 성도들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어떻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이 질문이야말로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목회자와 모든 성도가 다시금 깊게 생각해 볼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백
“이 세상에서 당신을 제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당신은 나의 기쁨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게 되는 모든 경우에 나는 당신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나는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둘이 아니요 하나입니다.”
이 고백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는 어떤 관계일까? 주례자 앞에서 결혼식 서약을 하는 신랑과 신부일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결혼식 때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있는 결혼한 남편과 아내일 것이다.
그런데 신랑과 신부, 남편과 아내 즉 부부 외에 서로에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누구일까? 목회자와 성도들이다. 결혼식 서약과 고백은 한 교회의 목회자로 청빙받은 목회자와 목회자를 청빙한 성도들이 동일하게 고백할 수 있는 내용이다. 목회자와 성도로 만나 함께 신앙 생활한다는 것은 처녀와 총각이 만나 신랑과 신부로 결혼식을 올리고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목회자와 성도로 연합된다는 것은 목회자가 성도에게 “나는 이제 여러분과 결혼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신랑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고, 성도는 목회자에게 “우리는 이제 목사님과 결혼했습니다. 우리는 목사님의 신부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것이 말이 되는 소리냐?”라고 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내 말이 아니고 성경이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를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성경은 목회자와 성도 간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를 닮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가장 좋은 목회자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교회를 사랑하는 목회자일 것이다. 또한 가장 좋은 성도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듯이 목회자를 사랑하는 성도일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수많은 비유를 통해 설명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비유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 남편과 아내의 결혼 관계로 비유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신랑이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이런 관계는 곧 목회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가장 심오한 모델이다. 목회자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성도와 결혼한 것이다. 목회자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성도들을 신부처럼 대해야 하고, 성도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목회자를 신랑처럼 대해야 한다. 목회자와 성도는 그리스도와 성도가 누리는 연합의 가시적인 모델인 동시에 축소판이기도 하다. 참으로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가 이와 같은 신랑과 신부, 남편과 아내 사이의 결혼 비유와 같은 연합 관계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목회자의 삶도, 성도의 삶도 새로운 변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될 것이다.
* 신앙 생활의 혁명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깨달음에서
왜냐하면 성도의 신앙 생활에 있어 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그리스도와 자신이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신앙 생활의 비밀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성도들에게 발생하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성도가 구원을 받게 된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이다. 즉 성도의 죄가 용서받게 된 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성도를 대신해서 성도의 죄 값을 치를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성도가 연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성도가 영생을 얻게 된 것도 모두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이다. 성도가 영생을 얻는 데 필요한 의를 얻게 된 것도 모두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성도에게 계좌이체해 주시기 때문이다. 성도가 신분상 거룩하게 된 것도, 경험상 거룩하게 성장해 가는 것도 모두 그리스도와 연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장차 성도가 그리스도처럼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온전히 변화되는 것도 그리스도와 연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신자의 모든 삶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신자의 비밀은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가 신자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다. 자신을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로 여기는 성도는 삶의 모든 관점이 바뀐다. 삶의 모든 중심이 그리스도이며, 삶의 모든 내용이 그리스도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깊이 깨닫고 누리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나의 옷이며, 나의 양식이며, 나의 집’이라고 고백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나의 구원이며, 나의 생명이며, 나의 힘이며, 나의 사랑이요, 나의 기쁨이요, 나의 소망’이라고 말하게 된다.
* 목회자와 성도와의 연합에 대한 진리를 깨닫는 것은 복된 교회 생활의 첫걸음
그런데 바로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이런 연합을 눈에 보이게,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관계가 바로 목회자와 성도와의 연합 관계다. 목회자와 성도의 연합은 바로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기초로 하며,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체험하는 구체적인 통로다. 목회자와 성도 간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위해 만드신 그리스도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처럼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가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기초로, 모델로 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또 한 번의 신앙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라 생각된다.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성도는 성도대로 신앙 생활의 새로운 변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연합 관계를 설명하는 비유가 신랑과 신부의 결혼 비유만이 아니다. 부모와 자녀, 목자와 양, 스승과 제자, 친구와 친구 등의 모든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한 비유는 모두가 다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런 시각으로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를 보면,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가 얼마나 풍성하며 놀라운 관계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목회자는 그 자신이 한 사람의 성도로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신부요, 자녀요, 양이요, 제자이며, 친구인 동시에 성도에 대해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남편이요 성도의 아버지와 어머니이며, 성도의 선생이며, 성도의 목자이자, 성도의 친구이기도 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 외에도 이런 방식으로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묘사해 주는 수십 가지의 비유를 가지고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목회자론이란 한 마디로 그리스도론을 모델로 적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수많은 비유 가운데 특정한 어느 한 가지만을 고집하고 다른 것은 전부 무시한다면 너무 편협하며 기형적이 될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로만 생각한다면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 모델을 제자훈련이라는 틀로만 보게 될 것이다. 또한 만일 친구 관계로만 생각한다면 목회자와 성도가 친구처럼 지내면 제일 좋은 관계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묘사하는 수십 가지의 비유 혹은 모델들은 각각 다른 비유 혹은 다른 모델이 줄 수 없는 독특한 진리의 측면이 있기 때문에 선별된 것이다. 따라서 이 모든 모델은 모두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상 중요한 비유들이고,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에 대한 모든 비유는 그대로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에 대한 모델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비유에는 다양성이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근본 원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비유들이 곧 그리스도의 대리인인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목회자, 그는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그림과 표지판
부끄럽게도 내가 이런 생각을 깊게 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책에 나오는 에드워즈의 목사론을 읽으면서다. 목사로 안수받은 지 벌써 십수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제대로 된 목회자상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 없이 십수 년의 세월을 훌쩍 보내 버렸다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또한 제대로 성도들을 섬기지 못했다는 아픔을 느끼게 된다. 10년 전쯤 어느 교회 부목사로 있던 시절, 40대 중반의 촉망받던 담임 목사님이 암으로 소천하기 며칠 전, 부목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제야 목회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은데…….” 하시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아마 그 목사님이 분명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 내용은 이 책에 나오는 진리의 한 단면이 아니었을까?
이 책은 이 땅의 10만 목회자에게 목회자의 초상화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그려 주며, 1,000만 성도가 목회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정표와 나침반이 되어 준다. 여기 성경이 말하는 목회자의 모습,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목회자와 성도들이 한 지역 교회에서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가장 아름다운 관계, 행복한 관계가 되는지에 대해 교회사에서 가장 탁월한 성경 해석과 적용을 한 네 편의 설교가 있다. 이 책은 미국 교회사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요 설교자요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목사 안수식 또는 목사 위임식 때 행한 설교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편집한 것이다. 에드워즈는 철저한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목회자의 정체성과 사역에 대한 진리를 분석한 후 이를 목회자와 성도 모두에게 실제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 네 편의 설교를 통해 교회사 최고의 목사 위임식 설교 현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이 목회자이건, 성도이건 간에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목회자의 모습과 성도의 모습에 자신을 비추어 보게 된다. 이는 참으로 놀랍고 영광스러운 체험인 동시에 참으로 두렵고 떨린 체험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우리는 에드워즈의 설교를 통해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관계인지를 보게 된다. 이 세상에서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를 능가하는 다른 인간관계(부부관계, 부모와 자식관계, 형제관계, 친구관계, 사제관계 등)가 있을까? 유교에서 말하는 ‘삼강오륜’의 인간관계가 모두 소중한 관계이지만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목회자와 성도의 만남’인 것을 알게 된다. 아! 목회자와 성도의 만남과 연합이 이처럼 중요한 것이로구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과 놀라움이 섬광처럼 우리의 마음에 다가온다. 그리고 좋은 목회자와 좋은 성도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한편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현실적인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본 목회자와 성도는 참으로 자신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자와 성도의 모습에서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를 고통스럽게 보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에서 우리가 참으로 멀리 떨어져 있구나 하는 탄식을 하게 된다.
오! 이 책이 이 땅의 10만 목회자와 1,000만 성도의 손에 들려져 이런 고백들이 쏟아져 나올 수만 있다면…….
“목회자는 성도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그리스도가 교회에게 자신의 목숨을 주시기까지 사랑했듯이 성도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섬겨야 합니다. 성도는 목회자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목숨을 다하며 사랑하듯이 목회자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섬겨야 합니다.”
물론 이런 고백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악함과 부족함 때문에 이 고백의 몇 퍼센트나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제대로 실천하고 있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보면 그 결과를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목표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목표도 모른 채 방황하는 것과 분명한 목표를 알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 약해서 쓰러지며, ‘이래서는 안 되는데, 빨리 일어서서 목표를 향해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야 하는데’라고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제 이 책을 통해 이 땅의 10만 목회자와 1,000만 성도의 아름다운 만남과 연합 그 복된 세계로 나가는 목회자와 성도의 힘찬 결혼 행진의 첫 걸음이 시작되기를…….
[지은이] 조나단 에드워즈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요,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지성은 너무나 심오하고 강하여 아직도 해마다 그의 업적에 관한 논평과 저술이 간행되고 있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러한 사상가 및 철학자로서의 명성보다 영어권 세계에서 가장 지적이고도 영적인 신학자요 대부흥사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생애의 가장 큰 목적은 그리스도를 통해 철저하게 하나님을 알고 찬미하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으로 하여금 그러한 삶을 살도록 각성시키는 일에 전력하였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메사추세츠 노샘프턴에서 목회를 시작했을 때 마침 뉴잉글랜드 전역은 처음의 청교도 정신으로부터 차츰 이완되어 영적으로 쇠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한 시대적 흐름에 저항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신앙회복과 거짓 종교, 즉 이단의 궤멸을 주창하며 영적 대각성 운동을 펼쳐 나갔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뜨거운 마음을 인정하시어 역사적 대부흥의 길을 여셨다.
그러나 인간적 안목으로는 아무리 보아도 그의 일생은 비극으로 끝이 났다. 즉, 노샘프턴 주민들에 의해 그는 사역지에서 쫓겨나야만 했고, 프리스톤 신학교의 총장직을 맡은 지 불과 두 달만에 열병으로 인해 삶을 마감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55세의 나이로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신학적 업적과 대부흥을 주도했던 뜨거운 설교들은 2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꺼지지 않는 불길로 남아 있다.
탁월한 신학적 이해력과 각성에 대한 직접적 체험론으로 인해 저술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을 두었지만, 그는 부흥신학의 제 일인자로 인정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옮긴이] 이용중
서울대학교 사범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KBS 취재 기자로 활동하다가 조나단 에드워즈, 찰스 스펄전 등을 책으로 만난 이후 좋은 번역의 가치를 절감하고 기독교 전문 번역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어 부흥과개혁사 전문번역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번역서로는 『개혁주의조직신학』, 『개혁주의인간론』, 『개혁주의구원론』, 『개혁주의종말론』, 『목회 황제 스펄전의 목사론』, 『십자가와 구원』,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 『ESV 스터디 바이블』(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다수가 있다.
[목차]
1. 목사는 성도의 영혼을 지키는 보초입니다
그리스도가 목회자에게 소중한 영혼을 맡기셨다
그리스도가 목회자에게 소중한 영혼을 맡기신 이유
목회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을 돌본 것에 대해 그리스도께 회계해야 한다
목회자를 향한 권면
성도들을 향한 권면
2. 목사의 모델은 그리스도입니다
목회자가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인가
목회자가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목회자를 향한 권면
성도들을 향한 권면
3. 목사는 빛과 열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목회자를 세우신 목적은 성도의 영혼에 등불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목회자가 불타는 등불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목회자가 빛나는 등불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목회자의 탁월성은 빛과 열의 결합에 있다
목회자가 빛과 열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목회가가 빛과 열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성도들은 어떻게 목회자를 대해야 하는가
4. 목사는 성도와 결혼한 사람입니다
목회자와 성도의 연합은 신랑과 신부가 결혼하는 것과 같다
목회자와 성도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위한 것이다
모든 목회자를 향한 권면
목회자를 향한 권면
성도들을 향한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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