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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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몰러 지음 | 김병하 역| 출간일: 20100401 | ISBN: 978-89-6092-138-2 | 신국판 | 256쪽 

말씀하시는 하나님 - He is not silent



[책 소개]
읽으라. 설명하라. 반복하라.

간단히 말해서 이것은 설교다. 너무나 단순한 말인가? 세계에서 가장 큰 신학교들 중의 한 신학교 총장인 앨버트 몰러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어휘를 사용해서 설교를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우리가 우리의 많은 교회들에서 찾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책『말씀하시는 하나님』에서 몰러는 오늘날 설교가 놓여 있는 상태를 폭로하고 있다.

“오늘날의 설교는 말씀의 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에……과학 기술에 심취함으로써……성경 본문 앞에서 보이는 당혹스러움으로 말미암아……성경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에……감각되고 감지된 필요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복음을 선포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추천의 글]
몰러는 오늘날 강단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은 강해 설교라고 말하면서 “이 세대의 스펄전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말로 그의 절박한 외침에 대한 결론을 맺고 있다. 남침례 신학교 총장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런 책을 썼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오늘날 교회와 설교자들을 위한 매우 중요한 주제에 대해 긴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깊은 신학적 성찰과 염려와 확신을 가지고 저술된 책이 분명하다.
- 마크 데버(워싱턴 DC 캐피톨 힐 침례교회 담임목사)

이 책은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한 몰러 박사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 주고 있다. 한 신학교의 총장과 문화에 대한 사려 깊은 관찰자와 복음주의의 대변인이라고 하는 그의 역할들 이외에도, 몰러 박사는 한 설교자로서 뛰어난 분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과 그 말씀이 가지고 있는 구원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탁월한 분이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학적으로 심오하고 문화적으로 깨어 있으며 목양적으로 민감하고 영적으로 교훈적인 설교의 관점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다. 복음주의 목사들에게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분명하고 확신적이며 긴급한 요청이 매우 절실히 필요하다.
- 매허니(주권적 은혜 사역 팀 회장)

나는 설교를 한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진리와 백성들을 위해서 내 마음 가운데 불을 붙여놓으신 그 긴급성과 열정을 만족시켜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한 사람의 목회자와 설교자가 되는 대신에 차나 주식을 팔 수 있다고 한다면, 가서 팔도록 하라. 그런 자들을 제외하고 남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나는 나의 친구이자 멘토인 몰러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그는 우리가 신학교 강의 시간표들과 정해진 설교학을 넘어서서 생각해 보도록 도전하고 있다. 주의하라! 이 책은 당신의 목회 사역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 제임스 맥도널드(하비스트 성경 교회 담임목사)

몰러는 기독교와 문화에 대한 북아메이리카의 가장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분석가 중의 한 분이다. 이 열정이 넘치는 책에서 그는 우리 교회가 필요로 하는 설교 유형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는 사례를 보여 주고 있다. 성경에 대한 신실한 강해를 보여 주고 있는데, 그런 신실한 강해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과 그분의 백성들의 성화를 위한 그분 자신의 생명을 주시는 복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 필립 그레이엄 라이켄(제10장로교회 담임목사)

남침례 신학교 총장으로서 몰러 박사는 통전적이고 명석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수천의 목사들과 목회 사역자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책은 효과적인 성경적 설교를 위해서 일생을 통해 헌신하고 도전하며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나는 이 책이 오는 세대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높이고 하나님의 교회를 강하게 만드는 설교의 준비와 전달을 위한 하나의 고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잭 그레이엄(텍사스 주 플레이노 프레스턴우드 침례교회 목사)

“성경에 따르면 강해는 설교다. 그리고 설교는 강해다.”몰러 박사의 진술은 설교 신학에 대한 이 강력한 책을 매우 잘 요약한 말이다. 나는 설교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모든 젊은 사람들에게 강해 설교의 필요성에 대해서 매우 잘 말하고 있는 이 뛰어난 책이 주어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은 그 어떤 목사의 설교 사역도 변화시킬 수 있다. 이 책을 읽을 그 어떤 세대의 설교자들도 귀한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 제리 바인스(플로리다 주 잭슨빌 제1침례교회 원로목사)

몰러의 역작! 7장은 이 책의 백미!
- 알리스타 벡(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파크사이드 교회 담임목사)

 

[서문]
우리가 교회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교훈들 중에 하나는 강력한 성경적 설교가 교회의 건강과 생명력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약 성경 교회의 태동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부흥, 개혁, 선교의 확장 혹은 건전한 교회의 성장을 이룬 모든 중요한 국면 이면에는 바로 성경적 설교의 시대가 있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것은 사도 시대의 현저한 특징들 중의 하나였다. 초기의 모든 변증가들을 포함한 가장 영향력 있는 후기 사도적 교회 교부들도 뚜렷하고 강력한 성경에 대한 설교자들이었다. 테르툴리아누스, 제롬,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초기의 신학자들도 매우 뛰어난 성경학자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유능한 설교자들이었다. 롤라드의 지도적인 사람들과 주요 개혁자들 그리고 청교도들은 바로 세상이 알고 있는 가장 정교하고 강력한 강해 설교자들이었다. 대각성 운동과 웨일스 부흥 그리고 초기 학생 선교 운동들은 모두 성경 교리에 대한 강력한 설교로 말미암아 촉발되었던 것이다.
매우 당연한 일이다! 설교는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선택한 가장 주요한 수단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설교는 또한 성령이 선택하신 주된 도구이기도 하다. 성령은 이 설교를 통해 교회를 집단적으로 양육하며 훈계하신다. 하나님 말씀 자체만이 그 어느 설교자의 메시지를 구성하는 유일하면서도 유효한 본질적인 내용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교회가 주로 설교를 통해 태동하게 되었으며, 1세기 세계 속으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누가는 초대 교회에서 교회 성장의 모습을 지적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용어로 표현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설교 특별히 성경적 설교는 하나님이 친히 교회의 성장과 자신의 양 떼를 인도하시고 기르시기 위해 기름 부으신 주된 전략임이 분명하다. 성경적 설교는 하나님이 항상 참으로 복 주시는 유일한 전략이다.
그렇다면 지난 반세기혹은 더 오랫동안 동안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적 설교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새로운 교회 성장안을 만들어 내는 일에 엄청난 양의 힘과 재원을 쏟은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런 교회 성장안들에 있는 구조는 때때로, 특별히 믿지 않는 자들이 있을 때에는, 성경에 관련된 어떤 구절들을 고의적으로 피하기조차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 교회의 성장안들은 오히려 판매 전략들과 유흥물들과 사회적인 활동들과 그 밖의 다른 유사한 기교들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 교회 지도자는 회사의 조직 세계에서 자신들의 경영 철학을 도입하고 있다.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는 자신들이 취해야 할 양식의 단서를 유흥 산업에서 얻는 것이며, 세속 대중 매체의 의사소통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는 가르치고 교화하기보다는 주로 놀라게 하고 어떤 강인한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고안된 현대 기술에서 각종 다양한 종과 호각을 사용한다. 이런 눈에 보이는 교회는 이제 혼란스러울 정도로 세상을 반영한다. 기독교계의 주요한 부분들이 영적으로 굶주려 죽어 가고 있다. 건전하고 성경적인 설교는 극도로 희귀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런 조류가 변하고 있다는 몇 가지 고무적인 표지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배고파하는 기독교인은 자신들이 몸담은 교회를 위해 신실하고 깊이 있는 성경적 설교와 가르침을 회복해 줄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요청하고 있다 나는 성경이 진지하게 전해지고 있는 교회들을 추천 해 달라는 요구를 온 나라 전역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매주 듣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오늘날 목회 사역에 발을 들여놓은 많은 젊은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에 신선한 헌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젊은 목회자들은 연기자이거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어떤 동기를 부여하는 연설자들이 아닌 진정한 강해자들이 되고자 훈련을 받고, 그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몰러는 교회가 강해 설교를 추구해 나가도록 교회를 갱신시켜 주고 자극을 주며 그런 욕구를 채워 주는 것을 돕는, 자신의 세대에서 몇 명 되지 않는 사람들 중에 앞서 가는 사람이다. 신학교 총장으로서 몰러가 생각하는 일을 추진하는 열정은 젊은 사람들을 준비시켜 주고 있으며 젊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파송하고 있다. 몰러가 보여 주는 격려하고 힘을 실어 주는 지도력은 남침례 신학교 학생들이 따라야 할 본보기다. 몰러는 이미 믿기 어려운 놀라운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 나는 몰러가 오랜 기간을 통해 이루어 놓은 유산과 같은 업적들이 앞으로 좀 더 심오하게 그 깊이가 깊어지고 훨씬 멀리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몰러가 이루어 놓은 것과 침례교회 안에 성경적 설교를 바른 위치에 회복되도록 하고 있는 몰러의 노력을 볼 때, 나는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몰러 박사는 설교를 매우 주의 깊게 연구하는 학도이면서 뛰어난 설교가다. 그리고 세밀한 학식과 깊은 영적인 열정을 함께 조화시키는 능력을 겸비한 뛰어난 은사를 받은 사람이다. 몰러는 수년 동안 연례 목자 콘퍼런스에서 기둥과 같은 존재였다. 몰러 박사는 건 전한 교리와 매우 투명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적 강해에 대한 열정적인 헌신으로 매우 합당한 평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일이었다.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의 장로들이, 내가 자신들을 위한 목회자로서 지낸 35년째 되는 해를 축하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였다. 그 기념일은 설교의 날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장로들이 마음을 모아 결정했다. 장로들은 말씀을 전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성경적 명령에 초점을 맞추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장로들은 위대한 설교자가 그날 밤의 순서를 진행해 주길 원했다. 몰러 박사는 장로들이 첫 번째로 택한 사람이었다. 몰러 박사는 장로들의 그런 바람에 정말 꼭 맞는 설교자였다. 우리는 그날 몰러 박사가 전한 메시지에 감동받았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남은 사역에 새로운 마음으로 온전히 헌신하게 되었다.
바로 이런 면들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대할 때 매우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설교에 대한 몰러 박사의 열정은 강하게 퍼져 나가는 전염성이 있다. 현대 설교에서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몰러의 진단은 정곡을 찌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에 대한 몰러의 제안에는 번득이는 통찰과 도전으로 가득하다. 나는 이 책이 설교자들과 평신도들 모두에게 두루 널리 읽혀지길 바라며 기도하는 바이다. 또한 주께서 신실한 신앙인들을 모든 경박하고 세속적인 것에서 돌이켜 진정으로 중요한 일로 돌아가도록 하는 데 이 책을 사용해 주시길 기도할 뿐이다.

- 존 맥아더


[머리말 : 오늘날 행해지는 설교의 실상]
“최상의 시기였다. 최악의 시기였다. 지혜의 세대였다. 어리석은 세대였다. 믿음의 시대였다. 믿음이 없는 회의의 시대였다…….” 찰스 디킨스 는 이렇게 널리 회자되는 유명한 어구들을 사용해서 자신의 위대한 소설인『두 도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물론 디킨스는 이 이야기에서 런던과 파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에서 시대가 흘러가는 방향은 누군가가 살았던 곳에 의존되어 있는 것임을 드러내 보여 준다.
우리는 오늘날 행해지는 설교의 실상을 고려해 볼 때, 이런 견해가 매우 참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상의 시기 혹은 최악의 시기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어떤 사람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것이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커다란 희망과 격려가 되는 표지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많은 젊은 복음주의 목사는 성경 강해에 담대할 정도로 헌신되어 있다. 이 젊은 목사들은 도심과 교외 그 너머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교회들의 강단에서 진정한 성경 강해가 부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새로운 세대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실제적이고 충실한 강해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며 교회의 영적인 성장과 건강한 교회를 이루게 해 준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대학과 신학교 교육을 통해 자신의 길을 열어 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젊은 목회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이 세대는 정말로 오는 세대 속에서 성경적 설교의 부흥을 말해 주는 듯하다.
다른 한 편으로 지난 몇십 년 동안은 수많은 강단에서 무분별하고 제멋대로인 실험들이 행해진 시간들이었다. 가장 많은 문제가 있는 현상들 중에 하나는 강해 설교가 쇠퇴하고 있으며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주의 진영 안에 있는 영향력 있는 수많은 목소리는 강해 설교의 시기는 이제 과거사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 대신에 몇몇 현대 설교자들은 이제 세속적이거나 피상적인 회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한 메시지를 대신 전하고 있다. 이런 메시지는 성경 본문을 설교하는 것을 회피함으로써 성경적 진리와 혹시라도 난처하게 부딪힐 수도 있는 것들을 피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인가? 신약의 교회에서 설교가 그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라면 성경적 설교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야만 하는 것 같다. 어찌되었건 남침례 신학교 설립 교수단 중 한 사람인 존 브로아더스가 언급한 유명한 말처럼 “설교는 기독교의 특징이다. 신을 경배하는 총체적인 면으로 볼 때, 어떤 종교에서도 사람들이 종교적인 가르침과 훈계를 듣기위해 정규적으로 빈번하게 모이지는 않는다.”
나는 21세기 초에 설교가 약화되고 있는 현상은 여러 가지 요소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모든 요소는 정말 염려스러운 일들이다. 모든 요소는 교회에서 설교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도록 하고 있으며, 설교를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과 적용보다는 다른 것으로 다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첫째,오늘날의 설교는 말씀의 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인류 역사에서 이전 그 어느 세대보다도 더 많은 말씀을 접할 수 있는 여건에 놓여 있다. 노래, 방송, 전산화된 내용, 인쇄된 글 그리고 전달되는 이야기 등과 같은 모든 가능한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지는 말씀 때문에 우리는 포화를 맞고 있는 듯하다. 말씀은 포스트모던 언어 이론들로 말미암아 수치화되었고 상품화되었으며 그 이론들에 종속되었다.
총괄적으로 보면 이 모든 사태는 기록되고 이야기되는 말씀이 상당한 정도의 자신감을 상실한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사진작가인 리처드 아브돈은 “영상은 우리의 초보적인 언어로서 말씀을 빠르게 대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작가인 뉴욕 대학의 미첼 스티븐은 “영상은 마음(정신)을 전달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말씀을 대치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설교는 그 자체가 ‘마음(정신) 전달’의 형태이기 때문에, 말씀에 자신감을 상실한다는 것은 곧 설교에 자신감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에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권위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며, 성경의 구원하며 변화시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말씀이 가진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다면, 그런 설교자가 전하는 설교는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적인 설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회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자신감을 가지고 서서 전해야 한다. 그 회중은 매주 음향 효과와 동영상들로 전달되는 수많은 말씀으로 마치 폭격을 맞는 것과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회중이다. 기독교 설교가 담대하게 주장하는 것은, 설교자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실한 선포는 그 어떤 음악이나 영상이 전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강력하다는 것이다.

둘째, 현대 설교는 과학기술에 심취함으로써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엘룰은 과학기술과 기술력의 발흥을 우리 시대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가장 커다란 도전들 중에 하나로 지적했다. 이는 올바른 예언이었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오만을 보면서도 과학기술의 도움을 도처에서 받고 있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어떤 형태의 과학기술의 도움이 없이 우리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우리 가운데 대부분은 어떻게 과학기술이 과업과 경험을 다른 모양으로 만들고 있는 것인지 주의를 거의 기울이지 않고 이런 과학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이와 동일한 현상이 설교를 할 때 시각적 과학기술과 대중 매체를 성급하게 혼합시키려고 하는 설교자들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일련의 시도들이 보여 주는 그 노력의 이면에 놓여 있는 의도는 선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의심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즉, 마음정신 전달의 일차적인 형태가 시각적인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선교적인 관점에서 의도된 면에서 그 노력은 의미가 있다. 따라서 설교자들은 청중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 영화와 동적인 그림들 그리고 눈을 사로잡는 다른 기법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방법의 위험성은 시각적인 것이 매우 빠르게 말씀을 삼켜 버리고 만다는 데 있다. 이 외에도 시각적인 것은 종종 인간 경험의 매우 좁은 부분, 특별히 우리 지각의 정서와 감정 부분에만 초점이 맞추어진다는 것이다. 영화는 음향 효과와 기술적인 감독 기법들로 이루어지는 감정을 기교적으로 다루는 기법으로 말미암아 우리
를 감동시키는 것이다.
설교자는 바로 이런 기법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인간의 음성을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힘은 인격의 모든 차원을 꿰뚫고 나가는 성경의 독특한 힘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이 십계명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을 선택하신 것이다. 시각적인 기법들을 사용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혼동하게 하는 위협이 되고 만다.

셋째, 현대 설교는 성경 본문 앞에서 보이는 당혹스러움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나는 수년 동안 복음주의 설교자들의 수많은 설교를 들어 왔는데, 그 설교들 중에 어떤 것들은 성경 본문 앞에서 당혹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과 우리 시대의 감성은 성경의 실제 본문에 대한 설교자의 자신감을 빼앗아 간다.
신학의 좌파 측의 대답은 매우 단순하다. 즉, 본문을 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최근 개념의 관점에서 볼 때, 본문을 가부장적이며 압제적이고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 가운데는 본문을 하위 성경적인 자료 혹은 고대의 편견 때문에 왜곡된 것으로 치부하거나 버리려고 하는 설교자들이 훨씬 적은 것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설교자들이 성경의 많은 부분을 경시하며 무시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설교자들은 현대인의 마음에 입맛이 맞고 더욱 편안하며 직접적으로 도전하지 않는 본문들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목양적으로 볼 때 나태한 태도이며 부정적인 치료의 모습이다. 그런 잘못된 목양의 모습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만, 즉 성경 전체를 영감되고 잘못이 없는 권위 있는 하나님 의 말씀으로 보는 것으로써만 교정될 수 있는 모습이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바로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마치 바울이 디모데에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넷째, 현대 설교는 성경적인 내용이 없기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선포되지 않는 성경 본문에 대한 것이다. 또 선포되는 본문들은 무엇에 대한 것인가? 오늘날 설교자들은 본문의 내용을 정말로 연구하고 있는가? 너무나 많은 경우에 본문은 목회자가 회중과 나누기를 원하는 잘 의도된 메시지의 출발점으로써의 역할만 하는 듯하다. 이 외에도 내용이 본문의 본문 양식과 내용과는 관계없이 주요 개요 형식으로 함께 엮어지는 일련의 간결한‘요점들’로 획일적으로 나타날 때, 성경의 본문은 종종 그 성경적인 내용이 없어지거나 실종되곤 한다.
모든 본문은 어떤 요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교자의 주된 관심은 그 중심 되는 진리를 전하는 데 있어야 한다. 사실 설교자는 그런 가장 중요한 목적을 전하는 설교를 계획해야 한다. 더욱이 본문의 내용은 삶에 적용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삶에 대한 적용은 강해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지 적용을 위해 강해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성경 내용에서 벗어나게 하는 또 다른 문제는 성경의 ‘큰 그림’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설교자가 전해지는 본문의 정경적인 문맥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고 죄인을 구원하심을 통해 하나님 자신이 영화롭게 되시는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 안에 놓여 있는 그 본문의 위치에 대해서도 역시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문맥에서 동떨어진 내용이며 성경 신학에 분명하게 유의하지 않는 설교는 관련되지 않은 본문들에 대한 일련의 연관되지 않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이런 설교는 진정한 성경적 설교가 보여 주는 영광에 훨씬 미치지 못하게 된다.

다섯째, 현대 설교는 감각되고 감지된 필요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설교에 대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는 주로 설교의 초점과 형태에 대한 주장을 통해 설명을 시도한 것이다. 설교자는 강해 설교 형태를 통해 성경 본문을 전하도록 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설교자는 설교를 청중으로 말미암아‘감각된 필요’와 인식된 관심들을 향하도록 해야만 하는 것인가?
아마도 20세기 초반 몇십 년 동안 가장 유명한(혹은 유명하지 않을 수도 있음) 설교자인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의 목사인 해리 에머슨 포즈딕은 설교가 감당해야 할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다. “설교는 어떤 그룹을 토대로 한 인격적인 상담이다.” 초기 복음주의자들은 포즈딕의 접근방법을 성경적인 설교에 대한 일종의 거부인 것으로 간주했다. 뻔뻔스러운 신학적 자유주의자인 포즈딕은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과 무류성을 자신이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했으며,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 되는 다른 교리들을 거부했다. 심리학적인 이론의 흐름에 매료된 포즈딕은 자유주의 개신교의 행복한 강단 치료자가 되었다. 포즈딕이 전하는 설교의 목적은 자신의 많은 책 중의 하나인『참된 인격체가 되는 것에 관하여』라는 제목에 잘 나타나 있다.
놀랍게도 이런 접근법은 많은 복음주의 강단에서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설교 방법론이 되어 버렸다. ‘필요에 토대를 둔 설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바에 따라 많은 복음주의자는 자신들 이 지금까지 본문을 고려해 왔던 방법을 버린 것이다. 종국에는 이 설교자들도 설교를 전하는 중에 본문을 고려하기는 하지만, 그 본문은 설교자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 주제를 설정하지 못하거나 메시지의 주요 골격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만다. 목회자의 신성한 강단은 조언을 주는 곳으로 전락했고, 성도가 앉는 의자는 치료사의 소파가 되어 버렸다. 심리적이고 실제적인 관심사들이 신학적 강해를 대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를 구세주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청중의 필요보다는 청중이 가지고 있는 필요들에 맞추게 되었다.
물론 이런 방법의 문제점은 죄인에게 가장 긴급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데 있다. 죄인은 구원과 하나님과의 화해를 위해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하는 소경이다. 이런 죄인은 단지 잠정적으로 실질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성취욕, 재정적인 안정, 가족의 평안 그리고 직업의 승진과 같은 일시적인 필요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너무나 많은 설교자가 이런 필요와 관심에 대답을 주려고 하는 반면에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실패하고 있다.

여섯째, 현대 설교는 복음을 선포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사도들의 설교는 항상 케리그마, 즉 복음의 핵심을 전하는 것이었다. 어떤 본문이라 할지라도 복음을 분명히 제시하는 것은 그 본문 설교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찰스 스펄전은 이런 점을 매우 설득력 있게 말했다. “말씀을 선포하라! 설교를 정경적 본문 안에 두어라! 그리고 십자가를 향해 똑바로 나아가라!”
많은 설교자의 접근법은 종종 일반화된 기독교적 내용과 더불어 도움이 되며 실제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메시지는 복음의 어떤 분명한 제시나 본문에 대해 결단을 내리고 신뢰하도록 하거나 그리스도가 요구하는 것들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사도들은 우리가 따라야 할 본보기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도들은 지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지냄과 부활하심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이 의미를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믿을 만한 설교는 인간 죄의 실재성을 정직하게 그리고 성경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을 허심탄회하게 다루어야만 한다. 이런 모든 것은 설교자로 하여금‘감성적인’우리 세대에서 있을 수 있는 중요한 도전들을 감지하게 해 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요건을 가지고 있지 못한 설교 즉, 성경적 본문과 성경적 진리를 피해 나가는 설교는 우리가 기독교적인 설교라고 부를 수 있는 면이 없는 것이다.
정말로 이런 것들이 존재하는 시기는 최상의 시기이면서 최악의 시기인 것이다. 나는 특별히 많은 젊은 설교자 가운데 강해 설교가 중흥하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다. 나는 이제 어떻게 성경 강해가 효과적이고 강력한 사역의 바로 그 중심을 구성하고 있는지 보기를 갈급해하는 세대에게 좋은 본이 되는 귀한 지도자들로서 섬기고 있는 건강하고 튼실한 강단 사역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또 이 세대가 그런 일들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 하고 준비시켜 주는 방향으로 학제를 운영해 나가고 있는 신학교들에서 수많은 뛰어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는 것에도 감사한다.
이런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복음주의 강단에서 성경적 강해가 그 중심이 되는 것을 평가절하하는 위협적인 위험한 경향과 성행하고 있는 많은 예들에 우려하는 마음도 있다. 결국 기독교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성도를 담담히 직면해야 한다. 그런 직면은 때로는 낯설기도 하고 도전적이기도 하고 어렵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칼과 같이 우리를 찔러 쪼개는 것은 바로 말씀이다. 복음주의 설교자는 칼을 숨기지도 말고, 그 칼날을 무디게 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팔로 그 칼을 사용해야 한다.




[지은이] 앨버트 몰러
앨버트 몰러는 남침례 총회의 본교이며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신학교인 남침례 신학교의 아홉 번째 총장이다. 또한 그는 가족과 성경적 남성과 여성관을 위한 모임에 중점을 두고 있는 여러 기구들의 임원뿐만 아니라 남침례 신학교에서 기독교 신학의 교수로서 그리고「남침례신학 저널」의 편집장으로서 일하고 있다. 몰러 박사는「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그리고「유에스에이 투데이」와 같은 미국의 유수한 신문들에 자주 인용되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CNN의 <래리 킹 라이브>와 NBC의 <투데이 쇼> 그리고 <데이트라인 NBC> 등과 같은 미국의 뉴스 프로그램들에도 출연하고 있다. 몰러 박사는 메리 켈러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케이티와 크리스토퍼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옮긴이] 김병하
옮긴이는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B. 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영국 셰필드 대학 성서학과에서 석사 과정(M.A.)을 졸업한 뒤 박사 학위(Ph. D.)를 받았다. 학위를 마치고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구약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영국에서 구약 사회 경제 윤리의 원리가 되는 성서적 희년사상과 성서학 연구의 토대가 되는 중간기 문헌들인 외경, 위경 및 쿰란 문헌들에 대해서 연구 중이다. 저서로는「희년사상의 영성화」가 있으며, 역서로는 WBC 주석 시리즈인 시몬 드브리스의「열왕기상」, 홉스의「열왕기 하」(이상 솔로몬)와 매튜 헨리의 주석「출애굽기.레위기」(크리스챤다이제스트)가 있고, 공역으로는 데이비드 클라인스의「포스트모더니즘과 이데올로기 성서비평」(한들출판사), 헤돈 로빈슨의「성경적인 설교와 설교자」(두란노) 등이 있다.




[목차]

■ 추천의 글
■ 감사의 글
■ 서문
■ 머리말: 오늘날 행해지는 설교의 실상

1 예배로서의 설교: 기독교 예배의 본질적인 중심
예배와 신학을 연결하기
우리의 예배를 망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일 것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고 있는 예배의 양식
진정한 예배를 시작하는 방법: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정한 나타나심
진정한 예배가 이끌어 가는 곳: 죄의 고백
진정한 예배가 이끌어 가는 곳: 복음의 선포
진정한 예배가 요구하는 것: 반응

2 설교의 토대: 삼위일체 되시는 우리의 하나님
말씀하시는 하나님
구원하시는 아들
조명하시는 성령님
설교의 토대, 설교의 목표 그리고 설교의 영광

3 설교는 강해다: 강해의 신학
설교의 위기
신명기 4장과 강해 설교
강해 설교를 위한 열정을 진작시키기

4 강해 설교: 정의와 특성
강해 설교와 하나님의 말씀
진정한 강해 설교의 표지들

5 비밀을 맡은 청지기: 설교자의 권위와 목적
설교자의 권위
설교자의 목적

6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성경의 거대담론 설교하기
거대담론 거부
공산주의와 실패한 다른 거대담론들
다른 모든 이야기들을 설명하는 거대한 이야기
예수님에 대한 포괄적인 이야기
이야기의 첫째 전개 요소: 창조
이야기의 둘째 전개 요소: 타락
이야기의 셋째 전개 요소: 구속
이야기의 마지막 전개 요소: 종말
전체 이야기를 말하기

7 신학자로서의 목회자: 설교와 교리
목사의 소명
목사가 집중해야 할 것
목사의 확신
목사의 신앙 고백

8 이전보다 더 낯선 상황: 포스트모던 문화를 향한 설교
포스트모던의 지형: 진리의 해체
포스트모던의 지형: 거대담론의 죽음
포스트모던의 지형: 본문의 사망
포스트모던의 지형: 치료의 주도권
포스트모던의 지형: 권위의 몰락
포스트모던의 지형: 도덕성의 대치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에 대한 반응

9 설교의 긴급성: 설교자들에 대한 간곡한 권유
왜 우리는 긴급성을 가지고 설교해야 하는가
죄인들은 구원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복음이 구원하기 때문이다
죄인들은 우리가 전하지 않는다면 믿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특권

10 마른 뼈들을 향한 설교에 대하여: 설교자들에 대한 격려
우리의 설교 사역에 있어서 인내하기
현대 목회 사역을 위한 예화
에스겔의 환상
하나님의 질문과 에스겔의 응답
에스겔의 설교

맺음말 설교에 대한 열정: 찰스 스펄전
영적인 긴급성
강해와 선포에 대한 열정
확신에 토대를 둔 설교의 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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