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추천의 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으시는 언약은 인격적이고 이 땅에 속한 차원들을 통해 전개되는 역사적 드라마인데, 그런 차원들이 간과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언약의 의미와 영역을 탐색하는 이 연구에서, 마이클 윌리엄스는 물질세계의 가치와 창조 세계를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강조한다.
이 책은 독자들이 성경에 나타난 언약의 구조와 성격, 하나님의 언약적인 신실하심 속에 나타나는 영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예수님 안에서 지금부터 영원토록 충만함을 깨닫는 데도 도움을 준다. 광범위한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의 지혜에서 이끌어 내고 성경에 굳게 뿌리를 두는 윌리엄스의 연구는 접근 방식이 독특하고 전개에 빈틈이 없으며 논증에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지금 출간된 것은 시의적절하다.
T. M. 무어
이 책은 주석적인 충실함, 성경신학적인 지혜, 기존 논문들에 대한 인식, 전도와 목회에 대한 열정이라는 네 가지 강조점을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한다. 나는 이와 비슷한 책을 아직까지 만나본 적이 없었다. 참으로 훌륭한 책이다.
윌리엄 에드거
나는 신학교에서 가르치기 위해 출판되기 전의 견본을 사용했는데, 학생들은 이 책이 독자가 읽기에 편하고 창조와 구속의 긴밀한 관계를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학생들은 성경에서 펼쳐지는 언약 이야기의 역동성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와 구원과 자기 자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가 열려서 크게 놀란 학생도 있었다. 이 책은 명쾌하고 사려 깊고 성경에 충실하다.
로버트 A. 피터슨
이 책은 목회자와 일반 신도가 모두 읽어야 하는 필독서다. 만일 여러분이 성경 전체에서 펼쳐지는 큰 그림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작품을 읽어 보라고 주문하고 싶다.
리처드 L. 프랫 주니어
[서문]
유명한 작가이자 학자인 C. S. 루이스는 기독교가 모든 사람에게 생사에 관한 문제라고 믿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말은 “하나님께 영원히 굴복하든지 아니면 하나님과 영원히 결별함”1)을 뜻한다. 하지만 루이스는 기독교의 제일 목표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한 현실에 주목했다. 월터 후퍼는 루이스와 나눈 대화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어느 날, 루이스와 나는 우호적이면서도 탐구심이 강한 화성인이 갑자기 옥스퍼드 대학교 한복판에 출현해서 도망치지 않은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교회에 대한 편견을 말하는 일은 둘째로 치더라도,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화성인에게 정확한 정보라고 할 만한 내용을 제공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대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화성인이 참으로 소유할 만큼 가치 있는 정보를 얼마나 많이 얻어서 자기 별로 돌아갈 것인지가 미심쩍었다.2)
루이스와 후퍼의 생각이 옳다. 비기독교인뿐 아니라 신자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도 기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신뢰할 만한 답변을 제공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삶과 죽음이라는 절박한 문제를 감안하면, 우리는 기독교 신앙이 갖는 영속적 중요성과 기독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보이는 이해력 사이에 뚜렷이 존재하는 불일치를 반전시킬 필요가 있다. 기독교는 계시 종교다. 이 말은 하나님이 자기 존재, 자신의 길, 자신의 뜻을 신·구약 성경에 포함된 글들 속에 가장 분명하고 완전하게 나타내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책의 종교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가 기독교의 핵심 문제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성경을 어떤 근본적인 방식으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신자가 성경에 담긴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전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은 혼란스럽게 만드는 책일 때가 있다. 무심코 성경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성경은 역사적 일화, 법률 문서, 교리 강독, 묵시 이야기, 교훈극, 격언 등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듯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한다. 이 말에는 성경이 하나로 된 전체 안에 통일성 있는 메시지를 포함한다는 우리의 기대가 숨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러서는 안 되고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들 혹은 계시 선집(가령, 『여호와의 베스트 어록』이나 『하나님의 최고 히트 금언집』)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성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대부분의 내용이 성격상 서사임을 알게 된다. 성경은 이야기로 엮어진 계시다. 이 사실은 계시로서의 일관성을 성경에 부여하는, 통일성 있고 통찰력을 만들어 내는 특징은 바로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임을 암시한다. 성경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이상의 일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성경에는 시편과 잠언, 노래와 기도, 윤리적 교훈과 교리적 반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결합하고 성경을 통일된 계시로 만드는 것은 바로 성경에 나타나는 구상인데, 신학자들은 그런 구상을 구원 드라마라고 부를 때가 종종 있다. 서사가 아닌 부분들은 성경의 구상에 꼭 들어맞으며, 그런 구상 속에서 알맞은 맥락에 있을 때만 이해될 수 있다.
훌륭하게 구성된 모든 이야기를 살펴보면, 우리는 적어도 네 가지의 기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이야기 혹은 서사적 드라마를 이루는 첫째 요소는 도입부인데, 거기서는 등장인물과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소개된다. 도입부는 전개되는 드라마를 위한 무대, 곧 이야기가 펼쳐질 배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짜임새 있게 구성된 이야기라면, 전개 과정에서 발생하고 등장인물들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갈등도 포함할 것이다. 그런 갈등은 이야기에서 극적인 문제를 만들어 낸다. 셋째로, 그런 갈등은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되거나 처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래의 관계가 극적인 문제의 발생과 해결을 통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독자나 청자에게 들려주는 요약 또는 결말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구조 면에서 보면, 성경은 이런 드라마의 양식을 따른다. 성경에는 도입부, 발생하는 극적인 문제, 그 문제에 대한 해결 그리고 요약 또는 결말이 있다. 우리는 성경의 구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런 네 가지 요소를 창조, 타락, 구속, 완성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성경이 들려주는 그 이야기에는 전체 드라마에 배경을 제공하는 서막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완성하신 경이로운 우주 창조다. 성경은 우주적 규모로 발생하는 갈등을 서술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타락하자 하나님이 그런 범죄에 대해 언약의 저주로 대응하신 것이다. 하지만 성경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죄에 대해 심판하시는 와중에도, 성경은 죄를 심판하고 구속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들에 힘입어서 타락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데 그런 행동들은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계획하신 구원 목적으로 절정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성경 이야기는 요약으로 끝나는데, 하나님은 창조와 인류를 약속된 완성으로 이끄신다. 헤르만 바빙크는 “기독교에 나타난 요체는 여기에 있는데, 곧 죄로 말미암아 철저히 손상된 성부 하나님의 창조가 성자 하나님의 죽음으로 회복되고,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로 재창조된다는 것”3)이라고 말한다. 삼위 하나님은 역사에서 언약을 바탕으로 행동하신다. 성부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구속하시며 성령 하나님은 재창조하신다.
창조-타락-구속-완성의 구상은 성경의 핵심 주제며, 성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학적 구조를 이룬다. 이런 구상은 주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이야기하는 성경 드라마에서 근본적인 것이다. 성경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각각의 사건은 그보다 앞서 발생한 연속적 사건들 전체를 동반한다. 창조는 타락 사건과 구속 사건으로 변화되는 환경이다. 타락과 구속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라는 환경 밖에서는 무의미하다. 우리는 무엇에서 타락하는 것일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의도에서부터 타락한다. 우리는 어떤 기준에 따라 구속되는 것일까? 우리는 자기 피조물이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 곧 창조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속된다. 창조는 타락 이야기의 전제인데, 창조와 타락은 모두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구원 역사의 전제다.
그리스도인이 믿는 이야기는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 세계에 관한 진리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유일하게 진실한 이야기이므로, 성경은 점진성을 갖는 계시다. 하나님이 죄에 대해 그리고 인류와 세계에 미치는 죄의 영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계시는 곧장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 세기에 걸쳐서 일련의 구원 역사적 행동들을 통해 발생한다. 성경 이야기에서 이런 특별한 사건들은 언약 체결을 특징으로 하거나 만일 그렇지 않으면 성격상 언약으로 예표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지만 역사는 언약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리고 언약은 무엇일까? 언약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단일한 정의는 결코 존재하지 않지만, 언약은 다름이 아니라 인격적 존재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역사적 관계다. 인격적 관계가 역사적인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너무나 자주 간과하는 것이 바로 이런 진실이다.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일하시는데, 이 말은 하나님이 언약을 바탕으로 일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관계를 맺으시는데, 이 말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언약으로 부르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에게 하신 약속들은 예수님 안에서 절정에 이르고 최종 성취된다(고전 1:20). 예수님은 “약속의 언약들”(엡 2:12)이 지향하는 목적인 동시에 그런 언약들에 대한 열쇠인데, 왜냐하면 성경 이야기 전체가 나사렛 출신의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참으로 우리는 부활에서 시작한다. 얼핏 보면 우리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출발점이 부활절 아침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빈 무덤은 구원 드라마와 구원 드라마를 뒷받침하는 하나님의 언약 목적으로 들어가기에 가장 알맞은 시간과 장소다.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고 승리하시기 전에 발생하는 모든 일은 그런 부활을 기대하며, 성경 이야기에서 부활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일은 부활에 대한 해설이다.
처음 두 장을 뒷받침하는 주제는 기독교와 기독교의 복음이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행동과 관계있다는 것이다. 도로시 세이어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 점을 정확히 이해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폭위를 떨치고 하나님을 자신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실로 놀라운 한 편의 드라마다. 그런 말을 처음 전해들은 기자라면, 그것을 뉴스라고 인식할 것이다. 그런 말을 처음 전해들은 사람들은 실제로 그것을 뉴스라고 불렀고 그것도 좋은 뉴스라고 불렀지만, 우리는 복음이라는 단어가 과거에 세상을 그처럼 대단히 놀라게 하는 무엇을 의미했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그 드라마가 지금은 끝난 것일 수도 있는데, 예수님은 틀림없이 죽어서 묻힌 상태다. 어쩌면 말이다. 어쨌거나 그러한 말들이 일찍이 세계사에서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전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운데, 그것은 바로 부활이 임박했다는 소식이다.4)
성경의 종교는 주후 1세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활동하던 한 전도자가 죽었다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약속들에 대한 성취로서 이틀 후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사건이 인류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복음이다. 루이스와 후퍼가 던진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기독교에서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우리는 성경 이야기가 “세상을 극진히 사랑한” 까닭에 세상에 오셔서 결국 세상을 위해 죽으신 하나님에 대한 메시지라고 틀림없이 답해야 할 것이다. 허물과 부끄러움 중에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된 사건, 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이야기(허물과 부끄러움을 종종 특징으로 하는 또 다른 이야기)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예표된 사건은 하나님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 때에 유대 땅의 시골 마을에서 발생했다. 세이어스가 대단히 효과적으로 표현하듯이, “예수님은 사람이실 때에 사람으로 행동하셨다. 예수님은 가난 속에 태어나 수치 가운데 죽으셨고, 그 죽음이 더할 나위 없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셨다.”5)
이 모든 것은 기독교가 신성에 관한 초현세적 혹은 불변적 교리나 정신과 물질의 관계에 관한 세련된 철학 담론이 아니라, 언약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세상에 관여하시는 일들이 펼쳐지는 역사며 하나님이 예수라는 인물로 세상에 오신 사건이 그 역사에서 절정임을 시사한다. 계시나 교리에 관해 생각할 때면 초월적이고 불변하는 순수 사고의 영역, 곧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굴곡, 변천, 번잡함에서 안전하게 벗어난 영역과 관계된 다소 무미건조한 생각이나 개념들의 집합체라는 인상을 받는 신자가 정말 많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현실이다.
하지만 성경이 증언하는 구원 사건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 안에서 발생한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진행되는 영역은 어떤 형이상학적이고 초시간적인 하늘이 아니라 바로 이 세계의 역사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인류의 죄를 정복하시고 세계를 자신과 화해시키는 일은 다름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이뤄진다(고후 5:19).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에게 이끌기 위해 행동하시는 일은 바로 역사 안에서 발생한다. 하나님이 초월적이신 분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변함없는 위엄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 위에 주권적으로 우뚝 서 계신다. 그러나 성경 이야기는 하나님이 하늘에만 묶여 계시거나 거기서만 머무시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오시는 분으로서, 관계를 맺고 죄를 심판하고 자기 백성을 속량하고 자기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유익을 쏟아붓고 궁극적으로 자기 백성과 창조를 재창조의 완성으로 이끌기 위해 자신을 자기 피조물에게 낮추신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이 취하시는 방식, 곧 역사적 드라마에서 하나님이 취하시는 방식은 언약의 방식이다.
우리는 루이스와 후퍼가 가상했던 다른 행성의 경건한 구도자에게 어떤 말을 해 줄 것인가? 기독교가 삼위 하나님의 이야기라는 바빙크의 대답은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화성인에게 삼위 하나님의 드라마인 사도신경 사본을 한 부 건네는 것도 역시 도움이 될 텐데, 왜냐하면 사도신경은 2천 년 역사 동안 바로 그 목적에 기여해 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호기심 많은 화성인을 위해 저술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라는 사람을 위해 저술된 것이다.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우리는 먼저 자신이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려면, 다시 말해, 우리가 사는 세계 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창조 행동과 구원 행동을 담은 힘찬 역사 드라마로서의 기독교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우리는 언약이 전개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이 역사에서 언약의 방식을 보이는 사건들을 살펴봄으로써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처음 두 장은 성경에 기록된 두 가지 최고의 사건, 곧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과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출애굽 사건에 집중할 것이다. 구원 드라마에 속한 이 두 장은 하나님의 참된 성품, 하나님이 역사에서 이루시려는 목적,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운명에 대한 계시에서 중요한 순간이었고 여전히 중요한 순간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전개되는 드라마 안에서 각각의 성경 사건을 살펴봄으로써, 성경에 나타난 언약의 구상에 따라 창조로부터 출발해 새 창조로 나아갈 것이다. 이것은 우리 연구에서 더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각 언약 사건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살펴보고, 루이스가 말하듯이 부활이라는 ‘우주의 봄’을 믿는 믿음의 경주를 벌이는 사람들에게 언약이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를 질문함으로써, 언약의 관점으로 성경 이후의 시기를 간략히 생각해 볼 것이다.
[지은이]마이클 윌리엄스
마이클 윌리엄스(Ph.D., University of Toronto)는 도르트대학에서 6년간 가르쳤고, 지금은 커버넌트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윌리엄스의 다른 책으로는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닙니다』(This World Is Not My Home)가 있으며, 로버트 피터슨(Robert A. Peterson)과 함께 『왜 나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가 아닌가』(Why I Am Not an Arminian)도 저술했다. 또한 자연신학, 신학 방법론, 역사, 동성애에 대한 윌리엄스의 통찰력 있는 논문들이 유명하다.
[옮긴이]윤석인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케빈 밴후저 교수의 지도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 M.)를 받았다. 개혁신학과 청교도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폭넓게 조직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부흥과개혁사의 전문 번역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역서로는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사도신경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기독교 핵심』, 『십계명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 의미』, 『거룩하신 하나님』, 『윤리실종』, 『위대하신 그리스도』, 『문화신학』(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다수가 있다.
[목차]
목차 |
서문 |8
1장 부활 |19
성경 이야기에서 최고의 사건
2장 출애굽 사건 |45
하나님은 구속의 양식을 정하신다
3장 창조 |75
언약 역사적 서론
4장 타락 |107
반역하는 인간
5장 홍수 사건 |135
하나님은 포기를 모르신다
6장 아브라함 |157
하나님은 세계를 구속하기 위해 자손을 추리신다
7장 이스라엘 조상들 |183
모든 족속을 대상으로 하는 하나님의 선교를 방해하기
8장 시내 산 |201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다
9장 율법 |223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나타내기
10장 약속된 땅에서의 삶Ⅰ |253
이스라엘의 왕
11장 약속된 땅에서의 삶Ⅱ |277
선지자들의 글
12장 예수 그리스도 |301
새롭고 더 영광스러운 언약
13장 교회 |347
새 언약에 속한 메시아 공동체
14장 종말 |387
만물이 새롭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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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으시는 언약은 인격적이고 이 땅에 속한 차원들을 통해 전개되는 역사적 드라마인데, 그런 차원들이 간과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언약의 의미와 영역을 탐색하는 이 연구에서, 마이클 윌리엄스는 물질세계의 가치와 창조 세계를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강조한다.
이 책은 독자들이 성경에 나타난 언약의 구조와 성격, 하나님의 언약적인 신실하심 속에 나타나는 영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예수님 안에서 지금부터 영원토록 충만함을 깨닫는 데도 도움을 준다. 광범위한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의 지혜에서 이끌어 내고 성경에 굳게 뿌리를 두는 윌리엄스의 연구는 접근 방식이 독특하고 전개에 빈틈이 없으며 논증에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지금 출간된 것은 시의적절하다.
T. M. 무어
이 책은 주석적인 충실함, 성경신학적인 지혜, 기존 논문들에 대한 인식, 전도와 목회에 대한 열정이라는 네 가지 강조점을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한다. 나는 이와 비슷한 책을 아직까지 만나본 적이 없었다. 참으로 훌륭한 책이다.
윌리엄 에드거
나는 신학교에서 가르치기 위해 출판되기 전의 견본을 사용했는데, 학생들은 이 책이 독자가 읽기에 편하고 창조와 구속의 긴밀한 관계를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학생들은 성경에서 펼쳐지는 언약 이야기의 역동성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와 구원과 자기 자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가 열려서 크게 놀란 학생도 있었다. 이 책은 명쾌하고 사려 깊고 성경에 충실하다.
로버트 A. 피터슨
이 책은 목회자와 일반 신도가 모두 읽어야 하는 필독서다. 만일 여러분이 성경 전체에서 펼쳐지는 큰 그림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작품을 읽어 보라고 주문하고 싶다.
리처드 L. 프랫 주니어
[서문]
유명한 작가이자 학자인 C. S. 루이스는 기독교가 모든 사람에게 생사에 관한 문제라고 믿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말은 “하나님께 영원히 굴복하든지 아니면 하나님과 영원히 결별함”1)을 뜻한다. 하지만 루이스는 기독교의 제일 목표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한 현실에 주목했다. 월터 후퍼는 루이스와 나눈 대화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어느 날, 루이스와 나는 우호적이면서도 탐구심이 강한 화성인이 갑자기 옥스퍼드 대학교 한복판에 출현해서 도망치지 않은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교회에 대한 편견을 말하는 일은 둘째로 치더라도,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화성인에게 정확한 정보라고 할 만한 내용을 제공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대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화성인이 참으로 소유할 만큼 가치 있는 정보를 얼마나 많이 얻어서 자기 별로 돌아갈 것인지가 미심쩍었다.2)
루이스와 후퍼의 생각이 옳다. 비기독교인뿐 아니라 신자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도 기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신뢰할 만한 답변을 제공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삶과 죽음이라는 절박한 문제를 감안하면, 우리는 기독교 신앙이 갖는 영속적 중요성과 기독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보이는 이해력 사이에 뚜렷이 존재하는 불일치를 반전시킬 필요가 있다. 기독교는 계시 종교다. 이 말은 하나님이 자기 존재, 자신의 길, 자신의 뜻을 신·구약 성경에 포함된 글들 속에 가장 분명하고 완전하게 나타내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책의 종교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가 기독교의 핵심 문제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성경을 어떤 근본적인 방식으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신자가 성경에 담긴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전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은 혼란스럽게 만드는 책일 때가 있다. 무심코 성경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성경은 역사적 일화, 법률 문서, 교리 강독, 묵시 이야기, 교훈극, 격언 등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듯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한다. 이 말에는 성경이 하나로 된 전체 안에 통일성 있는 메시지를 포함한다는 우리의 기대가 숨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러서는 안 되고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들 혹은 계시 선집(가령, 『여호와의 베스트 어록』이나 『하나님의 최고 히트 금언집』)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성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대부분의 내용이 성격상 서사임을 알게 된다. 성경은 이야기로 엮어진 계시다. 이 사실은 계시로서의 일관성을 성경에 부여하는, 통일성 있고 통찰력을 만들어 내는 특징은 바로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임을 암시한다. 성경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이상의 일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성경에는 시편과 잠언, 노래와 기도, 윤리적 교훈과 교리적 반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결합하고 성경을 통일된 계시로 만드는 것은 바로 성경에 나타나는 구상인데, 신학자들은 그런 구상을 구원 드라마라고 부를 때가 종종 있다. 서사가 아닌 부분들은 성경의 구상에 꼭 들어맞으며, 그런 구상 속에서 알맞은 맥락에 있을 때만 이해될 수 있다.
훌륭하게 구성된 모든 이야기를 살펴보면, 우리는 적어도 네 가지의 기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이야기 혹은 서사적 드라마를 이루는 첫째 요소는 도입부인데, 거기서는 등장인물과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소개된다. 도입부는 전개되는 드라마를 위한 무대, 곧 이야기가 펼쳐질 배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짜임새 있게 구성된 이야기라면, 전개 과정에서 발생하고 등장인물들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갈등도 포함할 것이다. 그런 갈등은 이야기에서 극적인 문제를 만들어 낸다. 셋째로, 그런 갈등은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되거나 처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래의 관계가 극적인 문제의 발생과 해결을 통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독자나 청자에게 들려주는 요약 또는 결말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구조 면에서 보면, 성경은 이런 드라마의 양식을 따른다. 성경에는 도입부, 발생하는 극적인 문제, 그 문제에 대한 해결 그리고 요약 또는 결말이 있다. 우리는 성경의 구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런 네 가지 요소를 창조, 타락, 구속, 완성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성경이 들려주는 그 이야기에는 전체 드라마에 배경을 제공하는 서막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완성하신 경이로운 우주 창조다. 성경은 우주적 규모로 발생하는 갈등을 서술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타락하자 하나님이 그런 범죄에 대해 언약의 저주로 대응하신 것이다. 하지만 성경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죄에 대해 심판하시는 와중에도, 성경은 죄를 심판하고 구속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들에 힘입어서 타락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데 그런 행동들은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계획하신 구원 목적으로 절정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성경 이야기는 요약으로 끝나는데, 하나님은 창조와 인류를 약속된 완성으로 이끄신다. 헤르만 바빙크는 “기독교에 나타난 요체는 여기에 있는데, 곧 죄로 말미암아 철저히 손상된 성부 하나님의 창조가 성자 하나님의 죽음으로 회복되고,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로 재창조된다는 것”3)이라고 말한다. 삼위 하나님은 역사에서 언약을 바탕으로 행동하신다. 성부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구속하시며 성령 하나님은 재창조하신다.
창조-타락-구속-완성의 구상은 성경의 핵심 주제며, 성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학적 구조를 이룬다. 이런 구상은 주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이야기하는 성경 드라마에서 근본적인 것이다. 성경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각각의 사건은 그보다 앞서 발생한 연속적 사건들 전체를 동반한다. 창조는 타락 사건과 구속 사건으로 변화되는 환경이다. 타락과 구속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라는 환경 밖에서는 무의미하다. 우리는 무엇에서 타락하는 것일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의도에서부터 타락한다. 우리는 어떤 기준에 따라 구속되는 것일까? 우리는 자기 피조물이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 곧 창조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속된다. 창조는 타락 이야기의 전제인데, 창조와 타락은 모두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구원 역사의 전제다.
그리스도인이 믿는 이야기는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 세계에 관한 진리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유일하게 진실한 이야기이므로, 성경은 점진성을 갖는 계시다. 하나님이 죄에 대해 그리고 인류와 세계에 미치는 죄의 영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계시는 곧장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 세기에 걸쳐서 일련의 구원 역사적 행동들을 통해 발생한다. 성경 이야기에서 이런 특별한 사건들은 언약 체결을 특징으로 하거나 만일 그렇지 않으면 성격상 언약으로 예표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지만 역사는 언약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리고 언약은 무엇일까? 언약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단일한 정의는 결코 존재하지 않지만, 언약은 다름이 아니라 인격적 존재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역사적 관계다. 인격적 관계가 역사적인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너무나 자주 간과하는 것이 바로 이런 진실이다.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일하시는데, 이 말은 하나님이 언약을 바탕으로 일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관계를 맺으시는데, 이 말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언약으로 부르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에게 하신 약속들은 예수님 안에서 절정에 이르고 최종 성취된다(고전 1:20). 예수님은 “약속의 언약들”(엡 2:12)이 지향하는 목적인 동시에 그런 언약들에 대한 열쇠인데, 왜냐하면 성경 이야기 전체가 나사렛 출신의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참으로 우리는 부활에서 시작한다. 얼핏 보면 우리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출발점이 부활절 아침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빈 무덤은 구원 드라마와 구원 드라마를 뒷받침하는 하나님의 언약 목적으로 들어가기에 가장 알맞은 시간과 장소다.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고 승리하시기 전에 발생하는 모든 일은 그런 부활을 기대하며, 성경 이야기에서 부활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일은 부활에 대한 해설이다.
처음 두 장을 뒷받침하는 주제는 기독교와 기독교의 복음이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행동과 관계있다는 것이다. 도로시 세이어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 점을 정확히 이해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폭위를 떨치고 하나님을 자신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실로 놀라운 한 편의 드라마다. 그런 말을 처음 전해들은 기자라면, 그것을 뉴스라고 인식할 것이다. 그런 말을 처음 전해들은 사람들은 실제로 그것을 뉴스라고 불렀고 그것도 좋은 뉴스라고 불렀지만, 우리는 복음이라는 단어가 과거에 세상을 그처럼 대단히 놀라게 하는 무엇을 의미했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그 드라마가 지금은 끝난 것일 수도 있는데, 예수님은 틀림없이 죽어서 묻힌 상태다. 어쩌면 말이다. 어쨌거나 그러한 말들이 일찍이 세계사에서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전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운데, 그것은 바로 부활이 임박했다는 소식이다.4)
성경의 종교는 주후 1세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활동하던 한 전도자가 죽었다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약속들에 대한 성취로서 이틀 후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사건이 인류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복음이다. 루이스와 후퍼가 던진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기독교에서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우리는 성경 이야기가 “세상을 극진히 사랑한” 까닭에 세상에 오셔서 결국 세상을 위해 죽으신 하나님에 대한 메시지라고 틀림없이 답해야 할 것이다. 허물과 부끄러움 중에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된 사건, 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이야기(허물과 부끄러움을 종종 특징으로 하는 또 다른 이야기)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예표된 사건은 하나님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 때에 유대 땅의 시골 마을에서 발생했다. 세이어스가 대단히 효과적으로 표현하듯이, “예수님은 사람이실 때에 사람으로 행동하셨다. 예수님은 가난 속에 태어나 수치 가운데 죽으셨고, 그 죽음이 더할 나위 없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셨다.”5)
이 모든 것은 기독교가 신성에 관한 초현세적 혹은 불변적 교리나 정신과 물질의 관계에 관한 세련된 철학 담론이 아니라, 언약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세상에 관여하시는 일들이 펼쳐지는 역사며 하나님이 예수라는 인물로 세상에 오신 사건이 그 역사에서 절정임을 시사한다. 계시나 교리에 관해 생각할 때면 초월적이고 불변하는 순수 사고의 영역, 곧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굴곡, 변천, 번잡함에서 안전하게 벗어난 영역과 관계된 다소 무미건조한 생각이나 개념들의 집합체라는 인상을 받는 신자가 정말 많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현실이다.
하지만 성경이 증언하는 구원 사건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 안에서 발생한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진행되는 영역은 어떤 형이상학적이고 초시간적인 하늘이 아니라 바로 이 세계의 역사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인류의 죄를 정복하시고 세계를 자신과 화해시키는 일은 다름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이뤄진다(고후 5:19).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에게 이끌기 위해 행동하시는 일은 바로 역사 안에서 발생한다. 하나님이 초월적이신 분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변함없는 위엄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 위에 주권적으로 우뚝 서 계신다. 그러나 성경 이야기는 하나님이 하늘에만 묶여 계시거나 거기서만 머무시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오시는 분으로서, 관계를 맺고 죄를 심판하고 자기 백성을 속량하고 자기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유익을 쏟아붓고 궁극적으로 자기 백성과 창조를 재창조의 완성으로 이끌기 위해 자신을 자기 피조물에게 낮추신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이 취하시는 방식, 곧 역사적 드라마에서 하나님이 취하시는 방식은 언약의 방식이다.
우리는 루이스와 후퍼가 가상했던 다른 행성의 경건한 구도자에게 어떤 말을 해 줄 것인가? 기독교가 삼위 하나님의 이야기라는 바빙크의 대답은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화성인에게 삼위 하나님의 드라마인 사도신경 사본을 한 부 건네는 것도 역시 도움이 될 텐데, 왜냐하면 사도신경은 2천 년 역사 동안 바로 그 목적에 기여해 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호기심 많은 화성인을 위해 저술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라는 사람을 위해 저술된 것이다.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우리는 먼저 자신이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려면, 다시 말해, 우리가 사는 세계 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창조 행동과 구원 행동을 담은 힘찬 역사 드라마로서의 기독교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우리는 언약이 전개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이 역사에서 언약의 방식을 보이는 사건들을 살펴봄으로써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처음 두 장은 성경에 기록된 두 가지 최고의 사건, 곧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과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출애굽 사건에 집중할 것이다. 구원 드라마에 속한 이 두 장은 하나님의 참된 성품, 하나님이 역사에서 이루시려는 목적,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운명에 대한 계시에서 중요한 순간이었고 여전히 중요한 순간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전개되는 드라마 안에서 각각의 성경 사건을 살펴봄으로써, 성경에 나타난 언약의 구상에 따라 창조로부터 출발해 새 창조로 나아갈 것이다. 이것은 우리 연구에서 더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각 언약 사건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살펴보고, 루이스가 말하듯이 부활이라는 ‘우주의 봄’을 믿는 믿음의 경주를 벌이는 사람들에게 언약이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를 질문함으로써, 언약의 관점으로 성경 이후의 시기를 간략히 생각해 볼 것이다.
[지은이]마이클 윌리엄스
마이클 윌리엄스(Ph.D., University of Toronto)는 도르트대학에서 6년간 가르쳤고, 지금은 커버넌트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윌리엄스의 다른 책으로는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닙니다』(This World Is Not My Home)가 있으며, 로버트 피터슨(Robert A. Peterson)과 함께 『왜 나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가 아닌가』(Why I Am Not an Arminian)도 저술했다. 또한 자연신학, 신학 방법론, 역사, 동성애에 대한 윌리엄스의 통찰력 있는 논문들이 유명하다.
[옮긴이]윤석인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케빈 밴후저 교수의 지도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 M.)를 받았다. 개혁신학과 청교도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폭넓게 조직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부흥과개혁사의 전문 번역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역서로는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사도신경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기독교 핵심』, 『십계명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 의미』, 『거룩하신 하나님』, 『윤리실종』, 『위대하신 그리스도』, 『문화신학』(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다수가 있다.
[목차]
목차 |
서문 |8
1장 부활 |19
성경 이야기에서 최고의 사건
2장 출애굽 사건 |45
하나님은 구속의 양식을 정하신다
3장 창조 |75
언약 역사적 서론
4장 타락 |107
반역하는 인간
5장 홍수 사건 |135
하나님은 포기를 모르신다
6장 아브라함 |157
하나님은 세계를 구속하기 위해 자손을 추리신다
7장 이스라엘 조상들 |183
모든 족속을 대상으로 하는 하나님의 선교를 방해하기
8장 시내 산 |201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다
9장 율법 |223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나타내기
10장 약속된 땅에서의 삶Ⅰ |253
이스라엘의 왕
11장 약속된 땅에서의 삶Ⅱ |277
선지자들의 글
12장 예수 그리스도 |301
새롭고 더 영광스러운 언약
13장 교회 |347
새 언약에 속한 메시아 공동체
14장 종말 |387
만물이 새롭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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