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신 하나님-양장
데이비드 웰스의 <거룩하신 하나님>을 읽고 현대 사회가 던져주는 가치를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치 자신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양 못내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느정도 후자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바는 인간이 좀더 인간다워질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기틀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예외가 되는 나라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이 누리는 자유로움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다. 더이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종교권력과 정치권력 앞에서 죽는 시늉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통가치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정신을 옭죄는 관습을 따를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인간은 최대한의 소비를 통해 존재감을 맞보며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제약없는 일탈도 맛볼 수 있다. 이젠 '내가' 원하기만 하면 못할 것이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데이비드 웰스의 4부작 시리즈 중 두번째 책인 <거룩하신 하나님>은 현대성의 공격 앞에서 그 본연의 모습을 잃고 줏대없이 흔들리는 교회와 그 교회를 매개삼아 '자아'의 무한정한 확장을 꿈꾸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현대성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 안에 자리잡은 핵심적인 사상은 거의 변함없다. 바로 모든 것을 상대화, 상황화, 관계화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동성애가 옳지 못하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에 따라, 또는 개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있으므로 동성애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는 사고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절대적인 가치'에 대한 반항이 이 시대의 조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진리라고 알고 있는 복음주의 교회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현대화에 중심을 내준 교회는 이러한 부담스러운 상황이 연출되지 않도록 입장을 선회하기도 한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으며 진리는 여러 곳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다양한 종교 소비자 또는 '구도자'들을 환영하는 대형교회의 경우 완고한 복음주의의 메시지를 흐리게 만드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현대성의 세례를 환호하는 일부 교회는 종교 소비자의 입맛에 맛는 치유 위주의 메시지를 활용하고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마케팅 기법을 교회 안에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현대성이 주는 단물에 목을 적시는 경우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세상의 인정은 얻을 수 있으나 우리의 영혼을 잃어버릴 수 있음을 경고한다. '성공'은 진리와 지혜를 측정하는 타당한 기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회마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형시켜 세상 속에서의 성공을 부추긴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동안 교회에 다닌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결국 비대해지고 오만해진 자아에 비해 훨씬 왜소한 하나님을 만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설령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현대 사회에 '먹혀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받은 임무는 바로 하나님과 원수된 세상 속에 하나님의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 우리가 보다 강건하게 말씀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스스로의 내장을 갉아먹으며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좋아하는 모습을 취하기 위해 고민하기 전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여 세상과는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현대 교회가 잃어가고 있는 중요한 것을 일깨워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결코 교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저자는 '상황(Context)'에 의존하기보다는 '원칙(진리)'를 지켜나가는게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런가? 우리나라와 같이 격동적인 변화를 겪는 나라 또는 남미와 같이 제국주의의 비인간적인 권력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상황을 보지 않고 원칙만을 고수하는게 옳은 일일까? 현재 겸해서 읽고 있는 강원용 목사의 <역사의 언덕에서> 시리즈를 읽으며 이러한 고민은 깊이가 더해지고 있다. 강목사는 편협한 자기논리속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난마처럼 얽힌 문제를 풀어내고자 '크리스찬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정치, 경제, 종교간 벽을 허문 인물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복음주의의 원칙을 지킨다면 이러한 '범종교적' 대화 자체는 결코 성립되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시대적인 요청 속에서는 그러한 운동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여하튼 데이비드 웰스를 알게 되어 무척 기쁘다. 저자가 들려주는 메시지에 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