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실종 - 양장
문화는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사상은 사회에 새로운것들을 심어서 문화를 변화시키고 변질시킨다. 역사속에 이루어진 사상의 흐름들은, 시대를 관통하며 반복되고 자신의 자아를 높이려고 하는 발상은 반복되어간다. 교회의 진리가 선포될때 그것들이 다소 누그러지다가, 교회가 진리를 잃고 방황할 때, 사상은 인간을 높이기 위해 다시 고개를 들고 세상을 향해 말을 해간다. 그래서 교회가 힘을 잃고 휩쓸려 갈때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힘을 내어 교회를 지켜가는 모습들을 우리는 성경과 역사속에서 보게된다. 자본주의와 계몽주의로 비롯된 절대적인것을 상실하기 원하는 인간의 마음은 현대화를 만들어간다. 누군가가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에 이루어지지 않는 암묵적인 자세들은 왜 발생했을까? 하나님과 자신을 분리해서 하나님이 없이 자신이 하나님화되고 싶어서일것이다. 그리고 과학의 발전이 그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낙관적인 자세들은 인간을 황폐하게 하여 자신의 중심으로 현대화를 만들어갔다. 그러나 정작 인간은 자아에 머물러 있으나, 인간이 존중되어지는 상황이 이루어지기보다는 자신이 위협을 받고 두려움에 떠는 상황에 있다. 현대화가 만들어가는 현대성은 그것이 성질의 것으로 만들어진다는데 문제가 크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이 되어서 자동적으로 이 흐름에 맞게 통제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커다란 시스템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지 않으면 성도는 어딘가에 부딪쳐도 아픈지 알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이 상처를 입었는지, 자신이 암기 말기인지도 알수가 없다. 그런데, 현재 교회의 상황은 눈이 멀어있는것처럼 다가온다. 현실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교회에 존재하면서 교회와 분리되는 생활과 감각을 갖는다는것은 너무나 괴로운일이 되어버렸다. 이런 충격이 다가온것은 성경을 읽고서 교회를 보고 사회와 텔레비전의 정보들을 보고 성도들간의 속이며 외양적인 윤리를 보여줄때마다, 그들간에 함께 공존해야 하는 약속들이 없다고 느낄때마다이다. 그래서 내가 존재하지 않는것이 낫다고 생각이 들정도가 있었다. 나는 이 문제를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으며 내 자신의 갈등을 해소하고 현실을 이겨낼수가 있었다. 그래서 에드워즈와 그 이전에 있었던 청교도의 저서들을 읽어야 한다는 이유들을 다시금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신학이 살아서 현실을 비추어주고 신학적인 고민으로 성도들이 서로를 나누는 교제를 한다는것이 실제이며 현실의 현대성을 파악하는 지름길임을 알게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구체적인 표현들 그것들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사라져가는 교회, 그것이 사려져 가는것이 당연시 되는 모든 것들이 교회의 사역자들과 성도들의 암묵적인 문화가 되어 현실에 존재한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신학서적과 성경을 읽는 시야를 더 갖게 되지 않는다면 교회에서의 내 삶은 참 피곤해 졌을것이다. 이젠,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 나의 고민들의 여러 가지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정상적이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전까지 나는 나의 고민과 삶, 신학적인 고찰들과 계속해서 고민하게되는 어떤 주제들에 대해서 내가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딘가에 포근히 담겨져서 감싸 앉게 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한마디로 마음의 짐을 버릴수가 있었다. 이런 고민으로 밤을 세워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면 잘 몰랐던 적이 많다. 그 해결은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고 청교도 서적을 읽으며 신학을 다시금 세우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읽은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신학을 읽자! 성경을 깊이 읽자! 청교도를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