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복음주의

윤재****
2009-02-24
◉ 오늘날 “복음주의자”는 무슨 의미인가? ◉ 오늘날 어디에선가 쉽게 접하거나 스쳐지나갈 수 있는 말이다. 쉽게 요약하면 ‘복음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따로 구분해서 부르는 말’이다. (책 중간에서는 ‘복음쟁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미 “복음주의”라는 용어는 매우 많이 혼란스럽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복음주의의 분열로 인해서 ‘복음에 대한 정의’ 즉,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가 매우 모호한 모습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에큐메니칼 운동은 무엇인가? ◉ ‘에큐메니칼’의 사전적 정의는 <전반적인, 보편적인> <세계교회운동의 연합의> 라는 2 가지 뜻을 지닌다. 즉, 1950년대부터 활발하게 등장한 교회연합운동을 칭하는 말이다. 이 운동은 영국 성공회화 카톨릭의 연합으로 확장되는 동시에, 복음주의가 카톨릭과 연합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이 운동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연합”에 초점을 맞추고 전 세계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의 교회로 연합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에는 매우 모호한 기준들이 섞여있어서 분별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 저자 이안 머레이는 어느 입장인가? ◉ 분열된 복음주의는 책의 표지에 요약되어 있는 것처럼 ‘1950~2000년대 현대 복음주의 역사가 주는 교훈’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역사란 그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에 따라서 매우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작가가 매우 중요하다. 이안 머레이는 로이드 존스를 도와 사역을 했고, 종교개혁자 및 청교도들의 작품을 위주로 출간하는 ‘진리의 깃발사’ 설립자이다. 그의 진술은 여러모로 종교 개혁자와 청교도들, 또한 그들의 신학을 받아들인 후예들에 대한 입장을 대변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로이드 존스가 있으며,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영국 청교도들과 종교 개혁자인 칼빈, 루터의 저작들에서 취한 입장들을 지지한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저작, 발언, 주장 등으로 20세기 후반 복음주의 분열을 진단한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복음주의 연합운동을 주도한 신학자들, 목회자들을 상대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 ‘분열된 복음주의’의 구성 ◉ 이 책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신복음주의의 출현과 분열의 역사 (1~5장) 2. 분열의 핵심 논쟁들과 문제점 (6~10장) 3. 20세기 신복음주의 역사의 교훈 (11장) 책의 전개는 20세기 복음주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18세기 계몽주의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 면에서 이안 머레이는 이 책에서 오늘날 복음주의 연합운동이 오히려 복음주의의 분열을 초래했으며, 그것의 원인을 1) 그리스도인의 정의 2) 성경 무오설 논쟁 3) 교회론의 차이로 빚어졌다고 본다. 그래서 6~10장에서는 위의 3가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마지막 11장은 결론을 맺는 내용으로서 20세기 후반 새롭게 등장한 복음주의의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크게 6가지로 구분한다. 1) 극단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위험성 2) 분열의 원인은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관련된다. 3) 교회는 실용주의로 성공해서는 안 된다. 4) 참된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도 심각한 신학적 이견과 갈등이 있을 수 있다. 5) 지도자들이 균형 감각을 잘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6) 그리스도인 사이의 분열은 종말론적 최후의 심판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상 6가지가 이안 머레이가 복음주의 역사의 분열을 분석하면서 제시한 결론이다. 이 결론은 오늘날 매우 복잡해진 교단과 교파, 그리고 신학논쟁의 소용돌이 가운데 매우 숙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을 분별하는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이 책에서 한국교회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 왜 영국과 미국 등 서구교회를 중심으로 벌어진 복음주의의 분열사건들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까? 그렇게까지 폭넓은 관점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서구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한국 교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신복음주의자들의 영향력은 한국교회에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빌리 그레이엄, 제임스 패커, 존 스토트,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의 저작들은 대부분 한글로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다. 또한 에큐메니컬 운동을 지지하는 <크리스쳐니티 투데이>는 한국어판이 발매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서구 교계의 지도자들의 신학사상과 주장들은 한국 교계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일반 성도들에게 수용되고 있다. 결국 그들의 견해에 대해서 반박하거나 지적할 수 없는 상황이 이미 조성되었다. (참고: <부족한 기독교>는 <긍정의 힘>을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수용한 한국 교회의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결국, 1950년과 2000년 사이에 미국과 영국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현재진행형이며 그 진행범위는 한국도 피할 수 없다. 둘째는 수십 년, 수백 년 전에 복음주의자들이 경고했던 일들이 오늘날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책에서 저자가 인용했던 필립 휴즈의 말이다. “교회 안에서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그 영향력의 급격한 확대를 보게 될 것이다. (중략) 예수님을 평범한 인간으로 보는 관점, 신학을 따지는 것을 거부하는 흐름, 세속주의, 철저한 상대주의, 반율법주의적 태도, 은혜를 대속의 은혜로 보지 않고 공짜로 보는 사상들이 바로 그 증거이다. (중략) 결국 이러한 교회는 세상에 너무 설득력을 가진 나머지,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따로 부를 이유가 사라질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세상에 전적으로 동화되어 교회도 세상과 구별할 수 없이 하나가 될 것이다. (pp.386)” 그는 이미 수십년 전에 오늘날의 심각한 상황을 예견했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SBS에서 몇 달전에 방영한 <신의 길, 인간의 길> 다큐멘터리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인터뷰와 예수님을 평범한 인간으로 보는 학자들의 견해로 뒤섞여 있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신학을 따지는 것은 매우 거북한 일이 되어버렸다. 신학을 따지기 전에 상대를 먼저 사랑하는 것이 순종의 우선순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죄악 가운데 처한 인간들을 그대로 사랑할 수 없는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분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일부 한국 교회의 세속주의는 이미 공영방송에서 취재될 정도로 세상의 권력과 욕망의 모습과 닮아있다. 저자가 지적하고 경고했던 내용들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 성경무오론 논쟁, 세계교회의 연합운동 등등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되었다. 결론을 맺으면, 이 책을 읽은 한 사람이 거대한 현실 앞에서 당장 행동하여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의 배경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통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며, 주변에 이미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청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인의 모호한 기준을 넘어서서 성경이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을 끊임없이 전해야 할 것이다. 또한 복음을 아직 듣지 못했거나, 온전한 복음을 접하지 않아서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서 무지한 자들에게도 진리를 일깨워줘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했던 것처럼 우리가 기독교인이 된 이유는 “바로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저함 없이 선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