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복음주의

조영****
2009-02-26
“분열된 복음주의”를 읽고 기독교 특별히 복음주의 진영이 어떤 형태로 계속해서 분열되어 왔는지에 대한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그의 탁월한 문체와 치밀함으로 자칫하면 잘 읽혀지기 어려운 주제의 글을 명료하게 풀어내었다. 하나 하나의 분열의 사건들과 그 사건의 결과 나눠진 복음주의 진영을 본다는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그렇게라도 포기할 수 없는 영역들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에 대해서 이전에 가지고 있던 막연한 ‘근본주의자’라는 부정적 입장이 아니라 ‘진리 수호자’라는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 복음주의 진영의 분열을 단순하게 어떤 프로그램이나 조항들 상황 속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핵심을 이루는 가치에 있어서 상반된 태도로 인해서 생겨났다는 것을 말하며, 복음주의 진영 속에 있던 갈등들과 그 갈등에 관한 대응의 방식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유명한 신학자들과 한 두 번쯤 읽어보았음직한 서구 목회자들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과 그들에 대한 이전 필자가 가지고 있던 평가와 전혀 다른 평가들을 하는 저자를 보며, 그리고 그 평가의 기준이 필자가 믿는 복음주의의 기초석으로 한 평가라는 것을 보며 막연한 느낌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판단을 다시금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저자는 분열되어져야 했던 그리고 분열됨으로 지켜내야 했던 복음주의에 관해서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슐라이어마허의 자유주의 신학에 관해서는 그 신학의 기초가 전혀 성경에 있지 않음에 관하여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유주의 신학이 영미사회 속에서 신학의 기초가 되어버린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주의의 확장 앞에서 근본주의적인 복음주의 진영에서 활로 모색으로 신복음주의가 등장했다는 것과 그 대표적인 인물이 빌리 그래이엄이라는 것과 그가 만든 신복음주의가 미국의 복음주의를 대표하게 되고 결국 그 영향이 전세계적이 되게 만들었다는 부분에 관하여는 이전에 막연하게 들었던적이 있었지만 이만큼 심도 있게 읽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후에 영국 성공회와 복음주의와의 갈등,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의 에큐메니컬 운동 참여에 대한 평가들을 통해서 이러한 흐름이 어떻게 이어져 내오는지 설명한다. 결국 저자 이완 머레이는 이러한 분열의 문제가 단순한 외형이나 강조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 그 자체를 향한 외곡의 차원 즉 기독교 본질인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성경은 어떤 책인가’, ‘교회는 무엇인가’와 같은 핵심적 차원에서의 차이임을 밝히며, 이러한 차이에 대해 모호하게 만드는 많은 시대적 상황적인 부차적인 배경들을 이야기 하지만 실체는 ‘본질’의 문제였다고 밝히며 본질을 붙드는 복음주의 정신을 명확하게 만들고 있다.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제였고, 쉽게 읽혀져 넘어가는 책도 아니었으나 읽는 중에 필자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외곡이 내가 믿는 기독교 안에 포함되어 있는지 보게 되었다. 최근에 읽었던 ‘값비싼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 단순하며 성경에 입각한, 결코 소비자 중심적이거나 실용적일 수 없는 복음이 얼마나 심하게 외곡 되어져 버렸는지 보게 되었고 그것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듯 보이는 한국교회와 강단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맡겨진 영역 안에서 나로 보게하신 이 진정한 복음에 대한 수호를 위해 어떤 복음을 전할지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눈에 비늘을 벗겨주는,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