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한 기독교

우현****
2009-03-11
나의 기도제목 가운데 하나가 복음위에 진리위에 든든히 세워져가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요즘 교회 내에 이루어지는 많은 혼란과 혼돈의 모습들은 기독교의 본질이 회석되고 있다. 바르게 말하는 사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사라져 버린 듯 교회의 소리는 공허하게 울리는 빈 수레바퀴처럼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 이유들이 궁금했다. 또한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어져 가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러한 가운데 존 맥아더의 “그리스도로 충분한 기독교”라는 저서는 나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난 회개의 자리에 앉게 되었고, 나 또한 그렇게 교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실용주의 프르그램의 방법론에 물들어 있었음을 고백하게 되었다. 오직 성경으로 외치던 많은 복음주의자들의 모습들이 오버랩 되며 현 나의 모습이 너무도 부끄러워 졌다. 다시한번 교회에 회개의 물결과 함께 기독교의 본질이 바르게 세워지기를 기도한다. 존 맥아더는 최근 교회들이 새로운 방법들을 받아들이는 세속화에 우려의 소리를 낸다. 현 교회 속에 침투해 있는 옛 영지주의 이단의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는 세 가지 주요경향 즉 심리학, 실용주의, 신비주의에 대해 지적한다. 심리학: 지금 많은 교회는 인본주의 심리학에 물들어 있다. 심리학은 물론 ‘영혼의 학 문'을말하는 것으로 좋은 단어이다. 그러나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것으 로 실제로 영혼을 치유하거나 영혼을 연구할 수 없다. 그러나 교회는 이 세속 심리 학을 수용 했고, 지난 수십 년간 그 영향력은 가히 혁명적이다. 많은 교회의 목회자 들과 평신도들이 이제 심리학적 기법에 대한 정식교육을 받지 않으면 상담할 자격 이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 성경, 성령, 은혜, 그리스도, 기도 등의 정통적인 해결책들은 이제는 피상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복잡다단한 오늘날에는 그 어느 때보 다 시간을 들여 함께 성경을 찾아보고, 경청하며 오랜 시간 기도하는 개인적 관계 를 맺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실용주의: 교회는 지금 성도의 수를 늘리기 위해 여러 새로운 방법과 프르그램을 끌어들 이고 있다. 이것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영적인 목표를 도달하려는 것이다. 실용주 의의 일차적인 척도는 외적인 성공이다. 교회는 세속사회의 모든 유행을 모방한 다.많은 이들이 복음을 우리 시대의 우행에 맞추지 않으면 복음의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들은 계시된 진리로 설득되지 않는 불 신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프르그램을 짜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성의 추구로 인 해 교회들은 모든 전통적 예배 방식을 내어버리게 되었고 사람들을 매료시키기 위해 마케팅 계획과 오락 매체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말 씀이 사라진 것이고, 심오한 진리의 깊은 예배, 기도, 자각의 경험보다는 오락과 좋은 감정을 제공하는 것이고 한 주의 첫날은 이웃을 만나 즐기거나 교제를 나누 는 정도의 날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신비주의: 신비주의란 영적 실재는 인간의 지성과 자연적인 감각과는 관계없이 지각되는 믿음이다. 객관적이고 관찰 가능하며 외적인 정보보다는 감정, 직관 및 그 밖에 내적인 감동을 훨씬 더 중시하며 마음 안에서 진리를 찾는다. 이러한 신비적인 체 험으로 인해 그리스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되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첨가하게 된다. 그리스도 더하기 철학, 그리스도 더하기 율법주의, 그리스도 더하기 신비주 의,그리스도 더하기 금욕주의등 그리스도만으로 충분치 않은 듯 다른 실재와는 다 른 체험들을 신뢰하게 된다. 존 맥아더는 우리들의 현 교회에 침투해 있는 위에 여러 문제점들을 제시하며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오직 성경만으로 충분함을 강조한다. 이것이 가장 본질적인 것인데 이 본질은 이제 피상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좀 더 세상의 입맛에 맞게 복음이 변질되어 버렸음을 한탄한다. 성경은 그 모든 주장에 있어 참되며 교회의 생명과 성장을 위해 충분하다. 우리는 영적인 문제에 대해 새로운 통찰이나 해답을 가려내기 위해 이 세상의 오염된 지혜를 받아 들이 필요가 없고, 인간적인 그러한 방법들은 결국 주님께 열납 될 수 없는 건물을 짓고 잇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에 다시 묻는다. “그리스도 안에 충분함이 있는가?”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절대적인 충분함이 있다.”이제 우리의 과제는 그분을 더 잘 알고 그분을 더 열정적으로 섬기며 더욱더 그분의 형상을 닮는 것이다. 존 맥아더처럼 바르게 용기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 교회의 현주소를 바르게 지적하며 교인수의 부흥에 상관없이 복음을 선포할 수 있을까? 그 어떤 세상적인 문화에 맞춰 실용주의 여러 프르그램들을 도입하지 않고도 오직 성경과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만을 전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한가지의 의문을 해갈한 느낌이다.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이젠 분별할 수 없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의식을 버리기로 다짐해본다. 나는 다시 겸허히 성경속으로 들어간다. 그 곳에서 주님을 만나고 난 그것으로 충분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