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손용****
2009-04-08
젊은 개혁 신학의 기수, ‘마이클 호튼’에게 붙는 호칭이다. 현재 그는 ‘북미연합개혁교회’(URCNA)의 목사로서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교수로 봉직하면서 ‘미국 기독교 종교개혁 연합’(Christian United for Reformation)의 대표로도 정열적으로 사역하고 있다. 이번에 호튼의 새 책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이하‘그기’)』가 한국에 소개 되었다. 호튼은 ‘그기’에서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호튼은 한 마디로 미국 복음주의 교회가 ‘미국 문화에 포로 된 교회’ 라고 평가하며, 이러한 미국 복음주의 교회를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라고 말한다. 얼마나 충격적인 선언인가? 그렇다면 호튼은 왜 미국 복음주의 교회를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라고 평가하였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호튼의 지적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한국이 미국 교회의 복사판이기 때문이다. 미국 교회의 유행이 한국 교회에도 그대로 전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호튼의 혜안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 호튼은 기독교에서 복음이 빠진 상태를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라고 평가하고 있다. 즉,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미 하신 놀라운 일들이 아니라, 각 개인의 경험만 남아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교회에서는 ‘더 열심히 사세요’ , ‘더 노력 하세요’라는 구호만 전해질 뿐이다.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주가 아니라, 우리에게 좀 더 좋은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코치에 불과하다. 호튼은 미국 교회의 상태를 사회학자인 크리스천 스미스가 평가한 대로‘도덕적이고, 심리적인 이신론’에 빠져 있다고 보고 있다. 하나님이 좋은 분이니, 우리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주요 핵심이다. 결국 죄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없어지고, 단지 주관적인 죄책감과 카타르시스적인 해소만이 남게 된다. 호튼은 이것이 펠라기우스주의 영향이라고 진단한다. 호튼은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에서 조엘 오스틴과 맥클라렌의 이머징 교회 운동을 비판하고 있다. 오스틴이 구원을 전적으로 지금 여기에서의 형통이라고 말한다면, 맥클라렌는 여기에서의 평화와 정의라고 말한다. 이들에게서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자리는 찾아 볼 수 없다. 오스틴과 맥클라렌의 공통점은 구원을 가져오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다. 호튼은 미국의 기독교 영성이 ‘펠라기우스주의’와 ‘영지주의’의 결합의 산물으로 어떠한 교리보다도 자신의 경험을 앞세움으로 신화적이고 몽한적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호튼이 말하는 미국 기독교의 특징들이다. 그렇다면 어쩌다 미국 기독교는 이렇게 되었을까? 호튼은 교회에서 “복음이 복음답게, 율법이 율법답게” 선포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호튼은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 율법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말하고 있다고 구분한다. 우리는 신앙이 깊어 갈수록 많은 헌신과 봉사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살아간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지쳐 있는 이유도 이러한 강박관념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호튼은 이에 대해서 교회가 복음과 율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결과라고 말한다. 복음이 아닌 율법만을 강조한 결과이다. 우리는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공예배에서 충분히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돌아오는가? 아니면 특히 주일 공예배 후에는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가? 호튼이 지적한 것처럼 성도가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은혜들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상태에 빠져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잘 차려 놓은 밥상에 단지 맛나게 먹기만 하면 된다. “율법이 율법답게, 복음이 복음답게” 무엇 하나 부족하게 전해지게 되면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게 된다. 율법이 빠진 기독교는 오스틴이나 맥클라렌의 메시지처럼 인간의 죄책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오신 의미를 무로 만들어 버린다. 복음이 빠진 기독교는 성도를 끝없는 ‘헌신과 봉사’의 강박관념으로 밀어 넣는다. 성도는 더 이상 교회에서 아무것도 공급받지 못한다. 두 가지 경우다 기독교는 치명적인 결과를 맞게 된다. “율법이 율법답게, 복음이 복음답게” 참 멋진 표현 이다. ‘무엇 ~다움’이라 할 때 각자의 본질을 가장 잘 지키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한다. 결국“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성도가 성도답지” 못한 것도 “율법이 율법답게, 복음이 복음답게”가르쳐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호튼이 미국 기독교를 향해 던지는 이 메시지가 참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한국 교회에도 동일한 처방이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호튼의 ‘율법과 복음’의 구분은 한국 기독교에도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다. 죄에 대해 강조하지 않는 한국 교회, 헌신만을 강조하여 믿음의 척도를 삼는 한국교회에게 참 좋은 약이 되겠다. 호튼을 읽어보자!! 그리고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자!! 성도를 성도답게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