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전영****
2009-05-07
목회자로 서원하고 교역자의 길로 들어선지 이제 14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사역 초기에는 말할 수 없는 열심과 열정으로 사역을 감당하였다. 이제 단독 목회로 나가야 할 시점에 들어선 지금 내게 가장 큰 숙제가 있다면 바로 “기독교의 존재감”에 대한 부분이다. “무엇이 기독교를 유일하면서도 지고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가?” “무엇이 설교자를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갖게 만들어 주는가?” “무엇이 이 세상에 세워진 교회를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는가?” “무엇이 이 땅에 기독인들을(앞으로 내게 섬기게 될 교인들을) 흔들림 없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움받게 하는가?”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에겐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질문이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나름대로의 고민을 하던 중 흐릿하게나마 내린 대답은 바로 “복음(말씀)”이었다. 성경적인 복음에 대한 고민과 이해 그리고 신실하면서도 일관성이 있는 통전적인 설교라고 풀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답을 내린 뒤에 여러 서적을 찾으며 고민하던 중에 만나게 된 출판사가 바로 부흥과 개혁사였다. 평소에 하던 고민 그리고 나름대로 내린 대답에 대한 풍부한 역사적 지적 동의를 부흥과 개혁사에서 출판된 책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른다. 특별히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의 경우에는 오늘날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와 성도를 둘러싼 시대를 이해하고 그 시대의 조류에 너무나도 화려하게 발을 맞추어 가는 교회를 볼 수 있었다. 비록 이 책의 배경은 미국의 교회를 삼고 있지만, 미국의 교회 문화를 곧바로 직수입하여 일정한 검증이 없이 목회의 현장에 바로 사용되고 있는 한국의 교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이클 호튼은 미국의 교회가 포로가 되었다고 하였다. 무엇으로부터 포로가 되었다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철저한 실용주의’라고 설명한다. 미국의 철저한 실용주의적인 사고는 ‘실용주의적 기독교’를 낳았고, 그것은 오늘날 개인주의와 신비주의를 만나 ‘영성탐구’라는 작품을 낳았다. 결국 이것은 역사를 거슬러 독적이며, 심리치료적인 이신론과 맞닿아 있고, 그 시조는 바로 챨스 피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교회의 현실은 작금의 기독교 스타로 떠오른 조웰 오스틴의 형통복음 곧 “긍정의 힘”과 “잘되는 나”라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를 만들어 내었으며, 이러한 형통복음은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에게 열광적인 호응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특별히 조엘 오스틴은 자신의 책을 통해 기존에 개혁주의자들이 이해하던 죄와 구속의 개념을 자기식으로 풀이하여 부족함과 개선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자신의 책으로 통해 주장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포로된 교회의 상태는 나아가 이머징 교회라는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 내었는데 호튼이 이것이 율법과 복음을 잘못 이해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특별히 본인은 율법과 복음을 설명하면서 말한 다음의 문장에 무릎을 치고 말았다. “율법은 하나님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강조한다면 복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이야기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결정하는 일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이유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는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성경에서 말하는 죄인이라는 교리적인 개념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비단 미국 교회 만에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솔로몬의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해 주시는 은혜의 수단인 “설교, 세례, 성찬”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더 이상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헌신의 수단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의 섬김이요 은혜임을 선포해야 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교회가 다시 복음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것은 마르틴 루터에 의해 일어났던 16세기의 종교개혁을 21세기 지금 우리 삶에 현장에 다시 경혐 해야 한다는 말로 설명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이 또 하나가 있다면 현재 미국 교회가 만난 이 처참한 상황은 바로 신학의 문제였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신학교의 문제이다.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의 세속화는 바로 목사의 세속화를 낳고 그것은 결국 교회와 성도의 세속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고 교회의 바른 회복을 꿈꾸는 자라면 정말 일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읽되 적당히 읽는 것이 아니라 정독을 권하고 싶다. P.S. 책을 읽는 동안 아쉬운 점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번역상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것 같았다. 책의 적지 않은 부분이 직역된 듯한 느낌을 받았고, 앞의 내용과 쉽게 연결이 되지 못하여 한참 동안 다시 읽곤 하였다. 또 어떤 경우에는 철학사전과 신학사전을 읽어보고서야 이해를 하게 된 경우가 있었다. 만약 이 책을 일반 독자가 읽는 다면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단어의 경우에는 역자 주를 통해 설명이 되어지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서평을 올리기로 한 약속 시한보다 한참이나 늦어 정말 죄송합니다. 교회 부교역자로 사역하면서, 대학원공부도 하고, 또 이 책을 정독하며 서평을 잘 올릴려고 하다보니 이제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흥과 개혁사의 파이팅을 기대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마산에서 전영민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