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중심적 세계관

영****
2009-05-13
"우리는 지금 계몽주의로 형성된 인본주의적인 문화 속에 살면서 교회 안팎으로 인본주의적인 형태의 신앙에 포위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에드워즈의 생각을 따르려면 다시 생각하고 다시 상상하며 우리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우리의 소망을 바로잡으며 거의 우리의 능력 밖에 있는 감정의 초점을 다시 맞추는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J.I.Packer의 지적은 참으로 에드워즈의 신앙의 유산인 그리고 위대한 이전 개혁주의의 스승들이 믿고 따랐던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이 현재 세계에서, 그리고 심지어 복음주의진영 내에서도 얼마나 많이 잊혀졌고 희미해졌으며 그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논의와 각고의 노력이 요구됨에 대해서 명징하게 표현한다. 존 파이퍼는 복음주의라는 거목의 단단한 목질은 역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위대한 성경의 교리들로 채워져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에드워즈가 지키려하였고 깨우려 했던 그의 소망이기도 하였다. 1.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완전하심 2.인간의 타락한 본성 3.구속사의 기적들 4.그리스도의 놀라운 구속 사역 5.영혼 안에서 구원과 성화를 이루는 은혜의 역사 6.영혼 안에서 구원과 성화를 이루는 은혜의 역사 7.세상,육신,마귀와의 싸움 속에서 성취해야 할 교회의 위대한 사명 8.하나님 우편에서의 영원한 즐거움이라는 우리의 위대한 소망 그리고 "복음주의자들은 이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에 대해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 이상 그러한 성찰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 시대의 전체적이 문화"이기 때문이라는 마크놀의 의견을 인용한다. 이것은 마치 데이빗 웰스가 논의한 삶의 중심성의 소멸을 경험하면서 그 공허함을 다양한 것(다원주의)과 쪼개어진 하위의 것들로 채우려 하고, 이러한 현상을 통해 더욱더 중심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나타낸다는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즉, 중심성의 파괴 더 나아가 우리 존재를 규정하는 단 하나의 근원적 실재인 하나님을 다른 무엇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커다란 혼란과 복음주의 내부에 커다란 혼란과 많은 논란을 야기시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에드워즈가 평생 연구하고 소망한 부흥에 대한 현대적 견해가 치우치는 경향과 성경적이지 못한 관점을 가지게 되는 근본적 이유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오스 기니스, 데이비드 웰즈가 지적하듯 에드워즈가 예기한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 - 중심이 있고 그 중심은 인간이나 인간이 만들고 경험하는 세계가 아닌 성경에 계시된 무한히 인격적인 거룩한 하나님- 이 복음주의와 세속화 과정에서 사라지고 약해짐에 따라 복음주의가 내부에서부터 올바른 신앙관과 세계관이 아닌 "속 빈 강정(p.21)"과 같이 되어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모든 것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급격한 문화적 변화의 시기 가운데서 "삶의 실재에 있어서의 총체적 영성"을 부르짖었던 프란시스 쉐퍼의 음성을 듣는 듯 하였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1부에서는 에드워즈의 사상과 생애와 유산, 2부에서는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이 주는 교훈,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드워즈의 주요 신학서 해설로 이루어져있다. 다양하고 믿을 수 있는 여러명의 저자들을 통해 에드워즈에 대해서 개괄적이고 포괄적인 이해의 틀을 제공한다. 더 알고 싶은 갈망을 불러 일으킨다. 특별히 제임스 패커의 4장은 거의 모든 줄마다 줄을 긋고 여러 번 멈추어서 생각하게 만들고 기도하게 만들었다. 3장 “조나단의 안식처 사라 에드워즈” 는 실제 존 파이퍼 목사의 사모인 노엘 파이퍼가 어머니이자 사모의 자리에서 에드워즈를 보필하며 교회와 방문객들과 가정을 보살핀 그녀의 삶 속에 뿌리박은 영성을 논의하였다. 특별히 2명의 딸과 남편을 먼저 사별한 후 그녀가 보낸 편지는 내 마음에 진한 감동을 주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하셨다” 라는 구절에서 에드워즈가 가족에게 물려준 신앙의 유산과 그의 하나님 중심적 세계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그녀에게도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