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웬 전집 01, 02, 03, 04, 05

이태****
2009-07-21
오웬에 대한 관심은 김남준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평소 그분의 글과 설교를 읽고 들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아왔기 때문에 김목사님의 스승인 오웬에 대한 관심은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김남준 목사님은 "진실한 신자가 되는 것이 자신의 간절한 소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소원대로 나 역시 참된 신자가 되고 싶다. 에드워즈는 그리스도를 가장 닮은 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나이고 싶다라고 하였는데 솔직히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분의 영광을 가리며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내 안에 내제하는 죄를 죽이는 성화의 훈련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그러한 절실한 필요를 김남준 목사님의 책들을 통해 공급받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항상 바랬던 것이 있었는데 모국어로 오웬을 만나는 것이었다. 언어의 한계로 간절한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오웬의 책을 구입한 시점에 독서에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교회행사관계로 2주동안 집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노트북에 결함이 생겨 AS를 맡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저녁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웬의 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늦은 밤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내 안에 내제하는 죄의 힘이 얼마나 강하고 끈질긴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제하는 죄의 힘 아래 거하는 부패한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깊은 수렁에서 건져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오웬의 글은 체계적이며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읽기 전 김남준 목사님의 "존 오웬의 신학 2부 존 오웬의 죄와 성화"를 아주 꼼꼼히 3번을 읽고 오웬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 "죄 죽이기"를 읽으면서 이해의 어려움을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은혜를 누리는 가운데 비교적 쉽게 독서를 마칠 수 있었다. 오웬은 내제하는 죄를 법이라고 말한다. 내제하는 죄는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성령의 소욕을 거스르도록 역사한다. 죄는 지성과 감정, 의지에 영항을 미쳐 신자의 마음의 틀을 악한 경향으로 기울어지도록 역사한다. 그래서 지성은 흐려지고 감정은 혼란스러워지며 의지는 죄의 쾌락을 원하는 가운데 죄를 산출한다. 죄는 인간 영혼의 파괴를 목적으로 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죄는 신자를 창조의 목적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최대 원수이자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다. 죄는 신자를 유혹하여 시험에 빠뜨린다. 그분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부족하게 만든다. 오웬은 그것을 시험이라고 한다. 신자는 성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거룩함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제하는 죄를 죽여야 한다. 내제하는 죄는 오직 성령만이 죽이실 수 있다. 죄를 깨닫는 것도 그 죄를 미워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웬의 말대로 성령은 "우리의 성화의 저자이자 완성자"이시다. 하지만 우리의 순종이 요구된다. 거룩함을 사모하는 열렬함, 마음의 굳어짐을 슬퍼하고 통회하는 간절한 눈물의 기도와 죄의 정체 그리고 죄의 기만함을 파악하는 지성의 작업이 요구된다. 성령은 독자적으로 일하시지 않는다. 우리의 순종을 도구삼아 역사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오웬이 필요하다. 오웬은 죄의 정체와 목표, 기만함을 보여주며 그 치료책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