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제3권

권지****
2009-08-17
하나님의 구속 드라마 조나단 에드워즈, 존 윌슨 편집, 김귀탁 옮김, 구속사,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제 3권 권지성 당신이 살고 있는 동내에 막 건설되어 가는 건축물을 볼 때, 당신은 그 건축물이 무엇을 위해, 언제 완공될 것이며, 어떠한 방식과 구조로 지어질 것이며, 최종적으로 누구를 위해 어떤 의미와 목적으로 지어질 것인지 알 수 있는가? 당연히, 당신이 설계가가 아닌 이상 절대로 상세한 건축물의 존재 목적과 방식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동일한 원리로 역사라는 제한된 시공간을 살아가는 인간 역시, 제 아무리 날고 뛴다 한들, 역사와 그 속에 감추어진 인생의 목적을 결코 알 수 없음이 자명하다. 그 이유는 역사의 최종 마스터 플랜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용과 논지 조나단 에드워즈의 미완의 역작 “A History of the Work of Redemption”은 인간의 유한한 역사 위에 수 놓인 타락한 인간을 향한 영원하신 하나님의 장엄한 구속 드라마이다. 이 남겨진 에드워즈의 유작 속에서 그는 신약과 구약을 시공의 틀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의 일관된 성경의 주제, 하나님의 구속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와 성경을 조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한다. 물론, 성경의 진리를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성령 하나님을 통해 인간 개개인에게 적용시켜 나가시는 개별적인 구원일로써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역사가 어떻게 끝날 것이며, 어떠한 방식으로 멸망할 것이며, 신자와 불신자의 운명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공간에 펼쳐진 역사라는 무대에서 전체 성경 진리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며, 조나단 에드워즈의 “The Work of Redemption”은 이러한 그의 성경관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작품임이 분명하다. 그는 성경 신학적 해석학의 초기 개척자라고 할 만한 성경의 내러티브들을 역사라는 거대한 뼈대 위에 올려 놓았고, 그의 야심찬 구속사에 대한 작품은 비록 완성되지 못하였지만, 1738년 3월과 8월 사이에 노댐프턴 교회에서 행한 그의 30편의 설교와 강의를 통해 오늘날 대략적인 구속에 대한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깨달은 점 성경이 말하는 구속이란 무엇일 말하는 것일까? 구속은 값을 지불하고 노예시장에서 노예 신분의 사람을 사는 행위, 속박을 풀어주는 행위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사망으로 노예된 인간을 그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하시고 구원하시려는 장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십자가를 통해 대속이라는 위대한 방식으로 그 꿈을 이루셨고, 완성시키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신 구속의 전 과정 속에서 그는 구속의 일만을 생각하고 계신 걸까? 에드워즈가 말하는 성경적인 구속의 비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원수들을 완전히 정복하시고, 멸망시키실 것이며, 타락한 인간의 지위를 타락 이전의 지위로 회복시키시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회복시키시며,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즉,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안에서 연합되고 통합될 것이며, 교회 전체가 영광스럽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에드워즈가 자신의 “천지창조의 목적”에서 열정적인 목소리로 외쳤던 것처럼, 창조의 근원적인 목적인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고 그 안에서 삼위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구속사의 절정이 역사의 마지막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에드워즈의 구속사는 비좁은 이 땅의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죄인들의 좁은 시야를 넓혀 하나님의 광대한 비전을 바라보게 한다. 변화창조-타락-구속-종말 필자는 대학생 시절 한 수련회에서 성경이 말하는 창조-타락-구속-종말의 성경적 구속관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만약 인류의 역사가 결국,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전해지고, 그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역사가 이 땅에서 시작되고, 영원한 왕국이 도래하게 된다면, 한 낱 먼지에 불과한 이생을 어떻게 소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결국 완수하실 것이며, 모든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고 실현될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 때 나의 머무는 곳, 나의 소망은 어느 곳에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 결단하게 되었다. 학생이라는 명찰을 떼고, 제법 거창한 꿈을 꾸며, 시작한 직장 생활은 숨쉴 틈도 주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현실과 타협해 가면서, 꿈꾸었던 비전의 빛이 희미해지고, 사라져 갈 때 즈음, 내 앞으로 에드워즈가 바라보았던 창조, 타락, 구속, 그리고, 종말의 완성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새 시대에 대한 비전이 눈 앞에 다시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역사는 이제 최후의 심판과 재창조의 절정을 향해 부흥과 선교라는 역사의 반복된 패턴 속에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한국 교회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유행병처럼 퍼져있는 단어 중에 “비전”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람들은 비전을 발견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면서,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집회에 참석하면서, 비전을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비전을 찾았다고 말한다. 물론, 각자가 가진 달란트와 부르심에 따라서 직업과 감당해야 할 몫은 다른 법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비전은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고시에 패스하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거나, 혹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비전은 단 하나, 그리스도의 오심과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이다. 바로 요한계시록 7장의 비전, 그리스도가 다시 오심을 우리의 생애에 다시 확인하고, 구속의 절정의 잔치와 축제에 동참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교회의 끊없는 타락과 세속화된 채 정체되어 있는 현실을 볼 때, 하나님께서 과연 오늘날 인간의 역사 가운데 간섭하시는 것일까 의문을 품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속사를 공부하고 읽을 때, 마음은 열정으로 불 타오르고, 무엇인 참된 비전이며 소망인지 더욱 뚜렷하게 느끼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은 역사의 모든 것들을 통치하시고, 그 분의 백성인 신자들이 거대한 드라마에 배우로써, 구속의 작업에 동참하고,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기 원하시는 것이다. 이 구속의 일에 우리를 초청하시고 계시며, 즐거움과 환희 속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이 일의 부분이 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