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청교도 영성
개혁을 실행하라! 개혁주의 청교도 영성/조엘 비키/부흥과 개혁사 조엘 비키의 개혁주의 청교도 영성 (Puritan Reformed Spirituality)은 16세기-18세기에 거쳐 유럽에서 형성되어 신대륙의 부흥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청교도 개혁주의 운동의 뿌리에 대한 폭넓고 방대한 배경 지식을 제공한다. 신학적 지식의 학문성을 개인 경건의 실제와 놀랍도록 결합시킨 탁월한 모범의 역사적 운동으로써, 조엘 비키는 프로테스탄트 청교도 운동을 칼빈에서부터 영국 청교도 운동를 거쳐 네델란드 종교개혁 운동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 담긴 신학적 의미들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특별히, 이 책이 다른 개혁주의 역사 신학서와 차별되는 점은 13장에서 16장까지 서술된 네덜란드 제 2종교개혁운동과 이 운동이 미국 대 각성 운동 (테넌트와 휘필드)에 미친 영향에 대한 고찰이다. 이 장들에서 언급된 귀중한 네덜란드 청교도 운동 (나더러 레포르마치)의 지도자들, 빌럼 텔링크, 헤르만 위트시우스, 프렐링호이젠, 그리고 베르셔와 푸치우스와 같은 선구자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들과 그들의 사상과 삶은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교회를 개혁하라는 믿음의 선배들의 경고와 호소는 오만함과 교만함이 극에 달한 오늘날 한국 교회의 컨텍스트에 적합한 도전이다. 16세기 칼빈의 종교개혁으로부터 17세기 영국 청교도 운동, 그리고 네덜란드 제 2 종교개혁에 이르기 까지 종교 개혁을 이끌었던 믿음의 선배들은 부패하고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았고, 강팍하고 굳어진 그들의 안일하고 타락한 심령을 향하여 설교하였다. 한국교회는 오늘날 2000억이 넘는 메가처치에 대한 세속적인 욕심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론하며,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교회의 특수성을 가지고 항변한다. 교인들은 목회자를 자신들의 전문 직업인으로 생각하고, 자기들의 소비욕구를 채워주는 교회의 이상을 제시한다. 만약, 18세기 네덜란드 개혁파의 인물 중 하나였던 데오도루스 애코부스의 설교를 위선자들과 자기 의를 자랑하는 한국 교회 교인들이 듣는다면 과연 무엇이라고 할까 (p. 604-605)? 사실, 개혁주의자들이 한국 교회에 던지는 물음은 단 하나, 오늘 우리는 우리의 교회를 하나님의 진리로 다시금 개혁할 것인가, 아니면, 세속화되는 상태로 내버려 둘 것인가 이다. 개혁하는 교회의 비전은 교회의 불완전함에 대한 인식 속에서 끊임없이 개혁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단지 교리 교육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체적인 행동의 개혁이며, 그들의 삶의 회심의 열매에 대한 것이며, 참된 신자와 거짓 신자, 성경적 교회와 비성경적 교회에 대한 분별력의 문제이다. 참으로,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개혁주의의 이상은 단지 개혁주의 교리를 강론하라는 충고의 하나가 아니다. 모든 개혁자들은 순진하게 교리적인 회복 그것만을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인의 전 인생 전체가 끊임없이 그리스도께 헌신되고 진리의 말씀이 그들의 삶의 열정과 실천과 행동 속에서 드러나고 세속 세계에 타격을 가하고 세상 정신을 무너뜨리는 것에 까지 나아가길 원하였다. 물론 완벽할 순 없지만, 그들의 심령 속에는 숭고하며 위대한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에 불타 올랐다. 네덜란드 개혁주의의 기수였던 어스킨 형제의 시대, 빌럼 텔링크의 시대, 그리고 위트시우스와 야보쿠스의 시대의 공통점은 그들이 메가처치를 운영하는 세상적으로 성공적인 목회를 했다는 데에 있지 않다. 결단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진리가 교회에 올바로 선포되며, 삼위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이 모든 교회 구성원가운데 올바로 선포되는 것에 있었다. 개혁과 부흥을 선도한 시대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시대의 교회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시대보다 영적인 환경이 더욱 척박한 시대였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동일한 죄인들, 방탕하고 게으르고 강팍한 영혼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2009년 한국 교회는 승리주의와 기독교 제국주의에 도취된 채 병들어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병든 상태를 진단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더욱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마치, 하나님의 심판이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북이스라엘에게 임했던 것처럼 한국교회에 임하지 않을 지 두렵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이미 그 심판의 칼은 집행 된 듯이 보인다. 네덜란드 개혁자의 한 사람인 위트시우스는 오직 국가와 교회를 멸망에서 지켜낼 수 있는 길은 “개혁,” 하나님의 말씀의 회복과 실천적 행동이라고 보았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행하여 지는 부도덕과 오만한 행동, 그리고 세속적 가치에 대해서 올바른 목소리를 강단에서 내지 않는다면, 과연 나의 교회를 올바로 지킬 수 있을까? 이 개혁의 물꼬는 바로 나에서부터 시작하고, 가정과 그리고 교회로 번져나가야 한다. 나의 개혁과 부흥, 그리고 참된 경건의 길은 교회를 변화시키고 사회에게 영향을 줄 것이다. 이것이 참된 개혁주의 영성이며, 신비주의적 영성과 다른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다음 세대를 짊어질 청년들의 읽어야 한다. 또한, 프렐리오이젠의 선언, “진리를 설교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천 번이라도 죽겠다”는 신념과 그리스도를 향한 겸손한 사랑으로 무장한 개혁하는 목회자들이 읽어야 할 책임이 분명하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