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비평학은 과학인가 의견인가

전두****
2010-09-01
 시대에 따라 신학(믿음)은 철학(이성)의 위에, 그리고 조화, 분리되는 과정을 겪는다. 교부시대에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강조 되었다. 신학은 철학 위에서 절대 권력을 군림 했다. 중세를 거치며 신학은 철학과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는 스콜라 철학을 취하여 신앙과 철학의 조화를 꽤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교리와 신학을 이해시키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도입한다. 철학을 도구로 사용한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은 이것을 잘 나타내는 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근대가 되자 이제 신학과 철학은 분리 된다. 계몽주의 등을 거치며 믿음이 아닌 이성이 강조 되면서 철학은 - 물론 과학 등도 - 신학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현대에 신학은 도리어 철학의 노예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성경 연구와 그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할 때 철학방법을 동원 하고, 그 방법을 통해 결과를 얻어 낸다. 심지어 과학적 연구방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이는 신학은 믿음보다 이성을 중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신약의 무슨 문서는 어떠한 이유로 바울의 저작이 아니라고 의심하고, 이사야서는 본문의 내용 등을 연구하여 발생하는 차이에 따라 저자를 셋으로 구분하고, 각각 세 시기에 작성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성경비평학 - 이 책에서는 여기서 예로든 문제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대신 비슷한 문제를 언급하고 지적한다. - 을 비판하고 있다. 급기야 "역사비평 신학은 이단적 교리(177p)"라고 정죄를 한다.  신학교에서는 성경비평을 버젓이 가르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성경 내용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성경을 자르고, 붙이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성경을 믿음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에 호소하고 있다. 성경을 대함에 있어 믿음보다 이성을 우위에 두고 있다. 성경의 내용을 이성으로 진위 여부를 가리고, 내용을 취사 선택한다. 이것은 성경을 100% 믿지 못한다는 고백과 같다. '성경 비평'이라는 말 자체가 그것을 보증하고 있다. 성경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저작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의심하고, 진위를 가리는 것이다.  이제 신학은 - 신학의 모든 영역이 그렇지는 않을지라도 - 철학의 시녀가 되어 버렸다. 성경비평은 신학의 주요 연구 방법이 되었다. 성경은 단지 이성의 산물이란 말인가? 어찌 그것을 이성의 판단 아래 둔다는 말인가? 신학에도 입장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 신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해야 할 바를 지금이라도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