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지역교회를 사랑하는가

전두****
2010-12-23
 교회 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교회라 부르는 것은 단지 하나의 건물일 뿐이고, 진정한 교회는 성도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두 세 명의 성도가 모이면 그것이 곧 교회이므로 흔히 말하는 건물로써의 교회는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몇 명의 성도가 어디지든 모이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신약 성경 어디에서도 건물로써의 교회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그것은 비성경적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100% 맞는 말도 아니다.  '왜 우리는 지역 교회를 사랑하는가?'  이 책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교회 반대론들자에 대한 일종의 교회 그 자체의 변증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케빈 드영이라는 미국 교회 목회자와 테드 클럭이라는 자유기고가(?)로 두 사람 모두 우리에게는 낯설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 책에서 하는 얘기는 상당히 의미가 있다.  내용은 두 저자의 글이 번갈아가며 담겨 있다. 케빈 드영은 (지역)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의 선교적인, 개인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신학적인 이유들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케빈 드영이 형식을 갖춰 답을 하고 있다면 테드 클럭은 교회에 대한 생각을 자신의 경험 등을 통해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 있다.  케빈 드영의 글을 통해 교회를 반대하는 이들의 대표적인 반박들을 알고, 그에 대한 이해 할 만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변증법적 과정이나 신학적 논의 형식으로 답을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들과 비슷한 형식들 갖춰서, 논리적 과정을 통해 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거부하려 하지 않는 이상 케빈 드영의 답에 상당히 수긍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테드 클럭의 글은 간증 등의 자유 양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글이 약간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그의 글은 케빈 드영의 글보다 부담이 적기 때문에 가볍게 읽을 수 있다. 테드 클럭의 글을 통해 교회에 대한 (일부 혹은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 평가가 어떠한지 알고, 지적 고민이 아닌 감정적 고민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두 형식의 글을 통해 교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지적 논리 과정을 통해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감정적 고민을 통해서 말이다. 따라서 그러한 두 형식의 글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잘 보완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된다. 단점이라 지적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테드 클럭의 글은 자유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야기 하려는 바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떠한 면에서 케빈 드영의 글의 흐름을 깨뜨린다고 할 수도 있다. 좀 더 부정적으로 말하면 테드 클럭의 글은 거의 필요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교회론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이가 있다면 두 사람의 글을 통해 혼란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담겨 있는 교회에 대한 반박과 혼란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하지만 종종 담겨 있는 바와 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즉 우리도 조금씩 교회론이 흔들리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분명히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바울 사도가 성도의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 한 바와 같이 성도 개개인이 곧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교회이다. 그렇다면 건물로써의 교회는 필요 없지 않을까?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간단히 말해서 성도들이 교회라 할지라도 어디선가 모여야 한다. 두 세 사람이든 십 수 명이든 모일 장소가 필요하다. 즉 한시적이든 계속적으로든 교회를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건물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여러 답을 할 수는 있지만 글이 길어질 것 같아 겸연쩍게도 더 이상의 답은 않기로 한다.  어쨌든 성도의 몸으로 구성된 교회와 지역 교회는 둘 다 중요하다. 특히 지역 교회는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아무리 부정적이라 할지라도 그 기능과 역할 면에서 필요하다. 유용하다. 물론 건물로써의 교회를 지니치게 치장하고, 확장 할 필요는 없다. 즉 건물에 지나치게 집착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거의 대부분 (지역 교회가 아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의 바르지 않은 행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진정한 목적을 상실하고, 허튼데 집중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 교회인 성도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교회인 지역 교회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의 용도를 명확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교회론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앎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성도라는)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로써의 본질적 기능과 역할을 다 할 것이다. 그때에는 단지 과시를 위한 하나의 건물, 우상으로서의 교회만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