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신재****
2011-01-16
이 책에 대한 극찬으로 서평을 시작하고자한다.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이야기”는 2010년 읽은 많은 책 중에서 가장 추천할만한 책이다. 책 추천은 정말 부담이 되는 일이지만 다행히 1년에 한권씩은 마음 놓고 추천할만한 책이 나온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고정관념(1장)과 인본주의, 교육학/심리학적(2장)해석으로 인해, 때로는 도덕적(3장)인 교훈에만 초점을 맞추려다 하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바를 놓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목회학적 목적(4장)을 위해, 기도와 전도(5장)에 열심을 부여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하는 현실에 대해 저자는 일침을 가한다. 나 역시도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사실에 가슴아파하며 이에 대해서 불만을 얘기했을 땐 저자와 같이 ‘은혜만 받으면 됐지 뭘 따지느냐?’, ‘너무 까칠한 것 아니냐?’, ‘저는 너무 은혜 받았는데 님은 사랑이 메말랐나 봐요’라는 식의 말을 워낙 많이 들어봤기에 저자가 책을 집필하게 된 심정을 이해하며, 한편으론 통쾌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첫째, 성경해석의 건전성이다. 저자는 철저히 개혁주의신학에 기초하여 구속사적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며 인간의 관점이 아닌 시종일관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을 풀어 설명한다. 그 일관성!!!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남을 느꼈다. 이러한 관점을 처음 접해보는 독자라는 누구라도 eye open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둘째. 이 책의 특징은 저자의 탁월한 전달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솔직히 구속사적 설교를 접해 몇 권 책을 읽었고 또한 개혁주의의 조직신학적 틀 안에서 개혁주의 성격해석법으로 꾸준히 성경공부를 해온 분들에게는 그렇게 새로울 게 없을 수도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첫 걸음을 때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예전부터 내가 추천하는 책이 너무 어렵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왔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요점을 명확히 하면서도 쉽게 전달하는 저자의 글 솜씨, 혹은 탁월한 전달력은 현장에서의 목회경험과 꾸준한 온라인상에서의 대화와 소통에 대한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누구라도 이 책을 읽어본다면 행간 행간에서 독자에게 쉽게 설명하기위한 저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비판적, 분석적 독서를 하는 나로서는 100% 이 책에 대해서 좋은 점만 열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나는 실패한 독서를 한 것 일 것이다. 아쉬운 점을 하나만 들자면... 저자의 성경해석이 다소 경직되어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생각에 A(main)와 B(minor)를 동시에 강조한다고 생각했던 본문에서 저자는 본문이 A만을 강조한다는 주장을 가끔 발견했다. 단호히 B는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해버린다. 이것은 아마 모범적 설교만이 횡행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잘못된 설교방식을 탄식하는 마음과 구속사적 성경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그런듯하다. 충분히 그 마음과 진심은 이해한다. 그러나 모범적-구속사적 설교 방식에 대한 대립을 떠나 정통적 개혁주의 성경해석법에는, 벌코프가 잘 정리해놓았듯이, 문법적-역사적-신학적 성경해석이라는 탁월한 성경해석법이 있다. 설교자가 너무 구속사적 설교에 집착을 한다면 마음이 너무 급하게 마지막 단계로 가고픈 마음이 앞 설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사실상 모범적 설교-구속사적 설교의 대립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꼭 하나만을 선택해야한다면 나는 구속사적 설교법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구속사적 설교라고 해서 “모범적 요소 추방”을 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공감하며 그 필요성을 공감하지만 성경해석이 다소 경직되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두 가지 예만 들어보자. 첫째, 29쪽의 마18:18-20구절에 대해서 저자는 이 본문이 기도에 대한 본문이 “아니다”라고 하며 단지 ‘교회가 권징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권징에 대한 83문의 각주가 마 18:15-18절이라는 사실을 통해 저자는 그의 주장에 힘을 더한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구절은 19절임을 유의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저자의 해석을 지지하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다시 그 본문으로 돌아와서, 과연 “땅에서 합심하여 구한다.”는 말씀이 전혀 기도와 무관한 것일까? 저자는 권징과 관련된 본문에서 “갑작스럽게” 기도에 대한 말씀이 올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20세기 화란의 大신학자 헤르만 리델보스는 그의 주석에서 이 구절을 “치리함에 있어서의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한다고 하며, 양용의 교수님도 그의 책에서 동일한 주장을 한다. 즉 리델보스와 양용의 교수님의 해석을 나 스스로 해석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교회의 결정과 하나님의 뜻 사이엔 분명한 연광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에 교회가 권징에 있어 “사역상의 권한”이 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교황주의자가 아니기에 교회의 결정이 기계적, 자동적으로 (automatically) 하나님의 뜻이 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결론적으로 권징에 있어서도 기도로써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과연 마 18장 19절 말씀이 기도와 전혀 상관이 없는가에 대해선 우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둘째, 155쪽의 막 5:25-34, 혈루증으로 앓은 여인의 믿음에 대해서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야! 저 여인의 믿음은 정말 대단하구나!”를 깨달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물론 저자의 말씀대로 이 본문에서 여인의 믿음은 절대로 주된 주제가 아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 “우리는 놀라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봐야합니다.”에 아주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 역시도 저자가 여인의 믿음이 대단하구나라고 깨달아서는 “안 된다.”고 적극적으로 부정을 하기에 짚고 넘어가고 싶다. 위에서도 지적한바와 같이 구속사적 설교 원리를 채택한다는 것은 “모범적 설교 추방”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떠어떠한 설교 원리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 주님이 말씀하신 바가 중요하다. 이 본문은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있을 정도는 유명한 본문이다. 세 복음서 모두에서 그 여인에 대해 예수님께선 보기 드문 친근한 표현으로 “딸아”하시며 친절하게 말을 거셨고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그녀를 “믿음의 [모범]”으로 인정하셨다. 또한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시며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물론 개혁주의자인 나는 믿음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고 해석하지 않는다. (오직 은혜로 인해 구원을 받는다.) 그렇지만 통로, 수단이 되는 믿음의 중요성을 주님께서는 강조하셨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를 위해 그 여인을 모범으로 보여주셨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고 싶다. 일단은 여인의 믿음을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를 보류한다. 사실 나는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에 동의한다. 그러나 서평을 작성하면서 동의하는 내용에 대해서 길게 쓸 수는 없으며 또한 일방적으로 동의만 하는 서평은 재미가 없기에 이러한 서평을 작성함을 저자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다. 다시 한 번 이와 같은 귀한 책을 집필해주신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물론 나는 신학에 관심을 가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갓 걸음마를 배우는 수준에 있기에 누군가의 성경해석을 감히 판단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다만 항상 독서를 하면서, 오히려 개혁주의를 전면에 표방한 책 일수록 더욱 주의하며 비판적으로 읽기에 이와 같은 서평을 남긴다. 나 역시 개혁주의 신학이 가장 성경에 충실한 신학 전통임을 확신하고 있지만 신학전통은 본질상 인간의 작업이므로 그 전통(傳統)에 ‘갇힌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정통(正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 이상 개혁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책들을 통해 목사님들도 더욱 경각심을 갖고 이로 성도들도 더욱 성경을 상고함으로 한 층 더 성숙하고 한 층 더 성숙한 성도들을 위해 목사님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선순환’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이 책을 통해 성경이 인간의 이야기가 아닌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하신 일”에 대한 책임을 깨닫는 분이 많아졌으면 하는 소원이 있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