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바르게 받아야 하는가
필자는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다. 하지만 아직은 미혼이다. 그러나 그리 염려할 필요는 없다. 조만간 결혼할 사람이 있다. 케빈 드영의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바르게 받아야 하는가』라는 책을 읽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사십 년이라는 세월의 절반의 시간 동안 교회에 출석했다. 교회와 그 안의 청년부 안에서 많은 자매들과 교류하였다. 그녀들 중엔 나의 신부감이 없었던가? 결론은 있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놓쳤다고 본다. 은근과 끈기가 부족했었거나, 용기가 없었거나. 한 마디로 성숙하지 못했었다. 그릇이 안 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나 같은 형제들을 훈계한다. 그런 형제들 때문에 많은 자매들이 자의반 타의반 독신의 길을 걷는다고 한다. 우리는 결혼을 생각할 때 흔히 이상형을 생각한다. 흔히 소울 메이트의 반쪽을 찾는다. 지구상에 내게 맞는 사람이 단 한 명뿐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한다. 결혼은 내게 맞는 오직 단 하나의 퍼즐 조각을 찾는 일이 아니라고. 그런 생각은 결혼의 파경이 생길 때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로 인도한다. 이 사람은 내 인생의 반쪽이 아니었어. 이런 생각은 성화보다는 영화에 집착하게 한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영화로운 존재가 아니라 영화로 가는 과정, 곧 성화되어 가는 중에 있다. 우리들의 가슴에는 저마다 성화 중이라는 팻말을 달고 산다. 그런 생각은 또한 결혼 적령기가 되었어도 교제와 결혼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교제했는데 내 인생의 반쪽이 이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면 어떻하지? 결혼해서 후회하면? 다시 솔직한 필자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필자가 지금 결혼할 여성은 아픔이 있는 여자다. 그녀에게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도 있다. 나? 나는 초혼이다. 4년간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였다. 그 시간 속에서 이 사람에게 많은 상처와 아픔을 주었다. 그러나 다행히 다시 만났고 결혼하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 간에도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나에게도 그와 같은 염려와 두려움이 있었다. 남보다 배가된 두려움이었다. 조언도 많이 구해보았다. 답은 둘로 갈렸다. 힘든 길이겠지만 보람도 클 것이다.그렇지 않아도 힘든 결혼 생활인데 짐을 지고 시작할 게 뭐 있니?여러분들이라면 이럴 때 무엇을 하나님의 뜻으로 선택하겠는가? 필자도 예전에 결정을 두고 자주 조언을 구하였다. 이 책에서도 조언은 성경적인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방법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주의할 것이 있다. 조언을 여러 사람들에게 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 조언을 찾아다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소리를 들을 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자기만족을 할 것이다.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할 수 있는가? 당신의 뜻은 아닌가? 이 책에도 열린 문과 닫힌 문의 오류를 이야기 한다. 필자도 예전에 무슨 일을 도모할 때 장애물과 만나면 이 길이 아닌가벼치부하고 돌아선 적이 많았다. 그러나 나중에 알았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서 결코 장애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인데도, 우리가 얼마나 염원하는지 또 순종하는지를 시험하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기도 하신다. 만약 여러분들이 결혼을 하는데 주위의 반대가 있다. 그럼 그 결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선택은 여러분들에게 달렸다. 결코 당신의 선택과 결정을 타인에게 돌리지 마라. 성경과 교회는 우리들에게 선택을 회피하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면죄부가 아니다. 나의 선택의 과정이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앞서 말한대로 내가 결혼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혼한 경력이 있는 애 엄마다. 여러분들이 나라고 해도 고민이 될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때로 교회 안에서 듣게 되는 결혼에 대한 가르침들 중 많은 부분이 때로는 성경적이기보다는 유교적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성경신학적인 말씀을 들려 줄 수 있는 목회자분들을 찾아 나서든가 아님 그와 같은 가르침을 줄 서적의 도움을 구하라 말하겠다. 필자의 경우는 제이 아담스의 『성경이 말하는 결혼, 이혼, 재혼』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책은 오늘날 교회의 현실과 달리 성경은 모든 이혼을 금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케빈 드영의 이 책에는 성경이 허락하는 이혼의 두 가지가 아주 짧게 나와 있다. 바로 배우자의 성적 부도덕성(마 19:10)과 불신자 배우자에게 버림 받았을 때이다(고전 7:15). 그녀의 경우가 이 두 가지 케이스에 속했다. 불신 배우자의 가출과 재혼. 이를 통해 난 그녀와 만나고 결혼하는 것이 성경에 저촉되는 결혼이 아니라는 확신을 하였다. 한 편으로는 좀 더 이른 결정을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범사에 때가 있다하였듯이, 우리 두 사람은 지금이 가장 적기라는 생각을 하였다. 오늘날 모든 기독교 청년들에게 전한다. 하나님의 뜻을 너무 어렵게 고차원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이사야서 말씀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고 높은 차원의 생각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제임스 패커가 말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적 돌봄은 결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는다. 우리가 그릇된 선택을 할 때,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는 반드시 당신의 뜻을 알도록 하신다. 따라서 당신이 결정하고 행동할 때에 성경이 척도고 오랜 시간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나온 신앙적 양심에서 비롯된 선택이라면 남자답게 강건하게 일을 추진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시중에 나와 있는 하나부터 열까지미주알고주알 하나님께 고해 바쳐야 한다고 가르치는 책들로부터 돌아서길 바란다. 조이 두우슨의 책을 보면, 그녀는 설교 준비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가지 요지부동한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심지어는 집회가 예정되어 있는데도 성경에서 이제는 평안히 가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올 때에라야 차에 오르는 믿음(?)을 자랑한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것을 믿음이라 보지 않는다. 우리는 때로 믿음을 책임 회피와 혼동할 때가 많다.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을 보면 정신병 환자의 대부분은 이와 같이 문제나 책임을 대면하지 않고 피하려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고 전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는 것은 결코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께서 사인주실 때까지 요지부동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지나치게 신비주의로 인식할 때에 낳는 병폐가 또 한 가지가 있다. 어떤 신자의 불행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다. 물론 신자가 그릇된 행위를 했을 때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그러나 그 여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타인의 신앙을 판가름할 지위가 우리들에게는 없다. 모든 것은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낱낱이 드러날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베드로 사도의 권고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우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