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사회의 운영 원리로서 “공적인 선”: 리처드 백스터의 『기독교 생활 지침5』 서평.
I. 백스터가 말하는 “더 나은 선”(a greater good)이란 무엇일까?
2020년 여름 우리 나라에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왔었다. 그 중심에는 교회가 있었고, 정부는 여러 방역적 조취를 하던 중 교회에 ‘집합제한 행정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집한제한이 정당하다는 이유를 드는 사람 중 몇몇 사람이 리처드 백스터의 글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그 자료는 백스터의 요리문답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는데, 원 글의 출처는 『기독교 생활 지침4: 교회 윤리』에 실려 있는 ‘교회론적인 문제에 대한 양심의 경우들’에 관한 질문과 대답 중 109문에 해당하는 글이었다. 백스터는 ‘만일 통치자들이 교회가 모이는 것을 금지한다면 교회는 주일에 모이는 것을 생략할 수 있는 가?’라는 질문에 ‘만일 통치자가 (가령, 공공의 안전 같은) 더 큰 유익(a greater good)을 위해 페스트가 일어나거나 적의 공격이 있거나 화재가 났을 때, 일시적으로 모이는 것을 금지한다면, 그에게 순종하는 게 의무다.’(452)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나는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더 큰 유익’을 집중해서 보았다. 과연 백스터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배를 드리러 모이는 것보다 더 큰 선이 있다고 하는 것이었을까?
이 답을 찾기 위해 다시 2020년 하반기에 백스터의 전집을 다 뒤졌다. 사실 2019년에 석사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백스터의 주요 저작들을 정말 열심히 읽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논문 주제에 한정된 읽기였고, 그가 말하는 “더 나은 선”(a greater good)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 전반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논문을 위해서 백스터의 전집을 로고스 바이블에서 구매를 해 놓았었다. 그렇게 로고브 바이블을 통해 2020년 하반기 내내 그의 전작 여러 편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보았다. 특별히 “더 나은 선”(a greater good)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전집을 “공적 선”(public good)과 “공동 선”(common good)이라는 단어로 분석해 보았다. 놀랍게도 그의 전집 23권 중에서 “공적 선”(public good)은 총 163회 “공동 선”(common good)이라는 단어는 총 213회가 사용되었다. 특별히 그 두 단어가 집중된 책은 그의 전집 제 6권 A Christian Directory IV: Christian Politics 였다. 이 책에서 두 단어가 총 81회가 사용되었다. 그러면 백스터가 말하는 “더 나은 선”(a greater good)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책을 잘 읽으면 되는데, 원서로 6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 부흥과 개혁사에서 백스터의 『기독교 생활지침』을 계속 번역 중이어서 5권이 번역되기를 정말 기대했었다. 번역된 책을 2주 동안 정말 집중해서 읽었다. 책은 총 34장이고, 매우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나, 몇 가지 주요한 주제들로 묶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II. 정치 원리로서의 “공적 선”
백스터는 이 책의 1-3장을 통해 통치자와 국민의 의무를 다룬다.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일반적닌 정치 원리를 제시한 파트라고 볼 수 있다. 딱 오늘에 맞게 백스터의 정치적 성향을 대입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백스터는 참으로 ‘보수’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그는 일관되게 왕정을 지지한 사람이다. 백스터가 살았던 당시(1615년~1691년) 영국은 큰 정치적 격동을 겪었다. 그 중심에 청교도 혁명이 있었다. 의회파와 왕당파로 나뉘었던 내전에서 사실 백스터는 왕당파를 지지했다. 그가 막 목회를 시작했던 키더민스터 교구의 교구민들도 대부분 왕당파를 지지했다. 그러나 백스터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의회파 군의 군목으로 입대하게 되고, 크롬웰을 돕게 된다. 그러나 크롬웰의 공화정 시기에 백스터는 꾸준히 그를 비판하였다. 그가 내전을 일으켜 나라를 소란스럽게 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끌어내린 주동자였기 때문이다. 내전으로 인해 많은 무고한 사람이 죽고,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을 계속 비판하였다. 이 책은 그 이후에 쓰였지만 백스터는 기본적으로 왕정을 계속 지지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와 왕을 존중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이고 있다. ‘법이 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왕이 법을 만드는 것이다.’(35). 그러나 백스터는 그러한 최고 권력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과 명예를 거스를 수 없으며, 공적인 행복과 안전에 반하여 통치할’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
그는 먼저 통치자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사역자이며, 당신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주지시킨다(19). 그리고 ‘하나님 아래서 통치자의 목적은 공적인 선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조언을 한다(20). 백스터는 국가의 통치자들과 교회의 사역자의 임무를 분리하지만, 공통된 목표는 ‘궁극적으로 영혼들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제시한다(20).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들은 더 많은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통치자가 만드는 법에 대해서, 법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즐거움과 (통치자의 명예와 다스림을 받는 사회의 복지를 포괄하는) 공통적인 선을 위해 주어졌음 제시하고, “법은 공통적인 선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95).
통치를 받는 국민들에게는 그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반드시 그 권력에 순종한 것을 요청한다. 그 근거로 십계명의 제5계명을 제시한다(40). 그리고 죄악 된 통치자의 권위까지도 하나님에게서 나오므로 복종해야 함을 말한다(41). 또한 통치를 받는 국민들도 하나님의 명예와 공적인 유익을 가지기 위해 공적인 마음을 가질 것을 요청한다(44).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이 더욱 국가의 권위에 순종할 것을 요청한다. “종교는 반역을 정당화하는 핑계거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종교는 신실한 복종과 순종을 요구한다. 목회자들이 국가의 권력에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말라.”(55). 당시에도 종교의 문제로 국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백스터는 교회의 권위를 세우신 하나님이 동일하게 칼의 권세를 지닌 국가 위정자들을 세웠음을 믿고 강조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오늘날 정부에 대해서 ‘저항권’부터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 권위에 먼저 온전히 복종하는 사람인가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백스터는 그 증거로 역사 속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제시하면서 가장 진지하고 종교적인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있는 시민사회의 가장 훌륭한 구성원임을 언급한다(89).
III. 직업 윤리의 공적 성격.
백스터는 일반 시민들이 가지는 직업에도 공적인 원리가 있어야 함을 제시하는 데, 이 책에서는 대표적인 공적 직업인 법률가(4장), 의사(5장), 교사(6장), 군인(7장)의 직업 윤리를 제시한다.
1.법률가의 의무
“지침2. 돈을 번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증진하고 의로운 자들을 격려하며 공적인 선을 도모하고 이 모든 일에서 의로우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당신이 일하는 주된 목적이 되게 하라. .... 당신은 정의를 증진하는 것을 이익을 얻고 먹고 사는 것보다 더 큰 목표로 삼아야 한다.”(103).
“지침4. 가난한 자들의 사정을 당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나태와 무시로 외면하지 말라. 자신들에게 돈을 잘 내는 부자들을 변호하는 데는 심혈을 기울이면서 돈을 거의 내지 못하는 가난한 자들을 변호하려고 나서지 않는 사람은 정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다.”(104).
2. 의사의 의무
“지침1. 당신의 이익이나 명예보다 사람들의 목숨과 건강을 구하는 것이 당신이 치료하는 최고 목적이 되게 하라. .... 하나님을 명예롭게 하고 기쁘시게 하고, 공적인 선을 추구하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당신이 바라는 최고 목표라면, 당신이 당신 직업들 통해 섬기는 분은 하나님이다.”(107).
“지침2. 부자뿐 아니라 가난한 살마도 도와줄 준비를 하라. 공적인 선이 당신에게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을 구분하지 말라. 돈을 내지 못한다 해서 사람의 건강이나 생명을 무시하지 말라. 가난한 많은 사람은 자기 지갑이 비어 있어서 의사에게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는다. 그런 경우에 당신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가장 비용이 들지 않는 약을 최선을 다해 처방해야 한다.”(108).
그리고 백스터는 의사들이 육신이 지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여기며, 그들의 영혼의 회심을 위해서도 몇 마디 말을 해 줄 것을 당부한다(111-112).
3. 교사의 의무
“지침1. 당신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며, 이것으로 공적인 선을 증진시킴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공적인 봉사를 하게 만들며,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고, 학생들의 구원과 세상에서 그들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인지 살피라.”(113).
“지침3. 한 사람의 성숙한 사람이 교회나 국가에 얼마나 큰 유익을 줄지 생각하라. 그들 중 일부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수단이 될지 생각하라. 그들이 건강한 인격을 함양한다면 가정과 이웃에게 얼마나 큰 복이 될지 생각하라.”(114-115).
4. 군인의 의무
군인은 직업 적으로 남을 죽여햐 하는 임무를 맡은 자기기 때문에, 공적 성향을 가지기 힘들다. 그러나 백스터는 부득이하게 남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웃에 대한 사랑의 정신을 붙들어야 함을 언급한다.
“지침4. 당신이 정당한 전쟁에 나가야 할 때, 하나님의 가장 쓰라린 심판에 참여하게 된 것을 겸손하게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자세로 받아들이라. .... 비록 나는 하나님과 우리 조국과 우리의 통치자들에 대한 사랑이 때때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지만,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슬픈 일이며 이웃에 대한 사랑과 조화되지 않는 일이다.”
전체적으로 백스터는 직업 윤리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모든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법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가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 하지 않는다. 백스터는 일관되게 직업을 통해 경제적인 부를 취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임을 이야기 한다. 그 직업을 성실하게 감당하므로 그 직업이 주는 유익을 드러내고, 공적인 선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직업 윤리이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할 때에도 가난한 자들이 돕고 섬길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실천하는 것이 백스터가 말하는 직업 윤리의 핵심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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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일반적인 시민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
백스터는 일반적인 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는 몇 가지 주제를 다룬다. 8장 살인에 관하여, 9장 복수와 용서에 대하여, 10장 채권과 채무에 관하여. 여기에서도 공적인 원리와 가난한 자에 대한 그의 관심이 잘 나타난다.
백스터의 입장에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아 죽게 만드는 것은 부작위(不作爲)에 해당하는 범죄행위이다. “살인의 또다른 원인은 억압과 무자비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매우 부족하다. 그들 중에서 기아로 죽은 사람은 거의 없지만, 좋지 않은 음식으로 말미암아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억압하고 도와줄 수 있는데 도와주지 않아 그들이 죽는다면, 이것은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약 5:1-5).”(134). “자비의 부족이나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살인의 또 가른 원인이며 살인에 대한 내적인 억제를 제거한다.”(137).
백스터는 또한 살인죄의 하나인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한다(139-142). 연약하고 아픈 자들에 대한 그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복수와 용서, 채권과 채무에 관한 것을 언급하며 백스터는 사사로운 복수는 결코 할 수 없고, 통치자의 권세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함을 언급한다. 개인이 행하여야 할 것은 ‘정의’가 아니라 ‘자비’이다. 그는 마 5:38-42를 이렇게 해설한다.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뿐 아니라 자비도 실현되어야 한다. 비록 정의를 베푸는 것이 통치자의 의무이지만, 언제나 그렇게 하는 것이 네 의무는 아니다. 반대로 자비를 베푸는 것이 네 의무가 되어야 한다. .... 온 힘을 다해 자비를 베풀고,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겸손하며 인내하고, 네 능력에 따라 주거나 빌려 주며 자비와 인내의 큰 의무를 거슬러 정의를 행하는 척하지 말라. 그러므로 육체가 입은 손해에 대해 격렬하고 법적인 복수를 하지 말라. 자비와 인내의 법은 복수를 반대한다.”
V. 타인을 위한 경제 윤리.
이 책 제 18~21장(289-400)은 백스터의 경제 윤리가 잘 드러난 부분이다. 이것에 관해서는 이미 탁월한 두 연구가 있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R.H. 토니의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이다. 특별히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R.H. 토니가 더욱 백스터의 원래 의도에 충실하다 생각하는 데, 그의 책 <제4장 청교도운동>에서 백스터의 경제 윤리를 매우 잘 분석해 놓았다.
백스터는 그 당시의 사회 변화를 그대로 인정하였다. 백스터가 살았던 17세기는 영국 내에서 다양한 경제적 분화가 이미 시작된 시점이었다. 특별히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서, 사회와 경제가 급격하게 변하였다. 그 운동을 통해서 토지의 소유 개념이 명확해 졌고, 대농장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원래 경작하던 토지를 잃은 사람들은 소작농으로 전락을 하거나 도시로 이주하여 노동자 생활을 하여야 했다. 그런 값싼 노동력은 산업 혁명을 일으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백스터가 살던 그 시기에는 그런 경제적 격변으로 인해, 경제로 인한 계급화가 생긴다. 농촌의 대지주 인 젠트리(gentry) 계급이 생기고, 몰락한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근근이 생활하여야 만 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에 반대하여 17세기 잉글랜드에서 급진적 혁명을 주장하는 수평파(Leveller)나 디거스(Diggers) 등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백스터는 그렇게 급진적인 주장을 한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백스터는 그러한 사회적 격변 속에서 소외당한 농민 계층과 소작농들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었고, 그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였다. 또한 부자들이 올바른 경제적 윤리를 가져서 가난한 자들이 결코 소외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엄격하게 주장하였다. 백스터의 경제 윤리를 주로 일반 경제학자들이 연구의 주제로 삼았는데, 기독교 윤리와 공공신학의 측면에서 충분히 더욱 상세하게 다룰만한 주제라 생각한다.
1. 경제 윤리에 있어서 몇 가지 조언들
백스터는 경제활동이나 계약을 맺을 때, 지나치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이기적인 마음을 경계한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다수의 이익을 선호하여 경제 활동을 하는 중에도 공적인 정신을 유지할 것을 당부한다.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신을 죽이는 원리를 깊고 습관적으로 지니고 있는지 살피라”(305). “당신의 재산보다 공적인 유익을 더 높게 평가하라. 국가나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히면서 부자가 되기 위해 억압적인 독점이나 장사를 하는 것은 합법적이 아니다.”(306). “법은 공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므로 어떤 개인적인 유익보다 선호되어야 한다.”(307).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범죄에서 이익을 얻을 수 없다.”(313). “예기하지 않게 공적인 선이 우리 행동을 가로막을 때, 우리는 그 행동을 할 수 없다.”(315). “당신이 시장에 간다면, 시장 가격을 지켜야 한다. 계약에 따른 가격이라면, 비록 그것이 일반적인 가격보다 좀 높더라도 당신의 물건의 가치를 계약된 가격으로 평가해야 한다.”(327). “시민 사회나 일반적인 대화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진리와 정직을 기대해야 하고 모든 사람을 거짓말쟁이라고 가정하지 말아야 한다.”(328). “손해를 볼지언정 죄를 짓지는 말라. 그리고 양심의 평화를 유지하라.”(333). “비천한 거지로 사는 게 도둑으로 사는 것보다 낫다.”(335).
2.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의무.
백스터는 특별히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과, 그들을 위한 의무를 다할 것을 거듭 강조한다. 백스터에게 진정한 정의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의와 함께 자비가 베풀어지는 것”이었다.(331, 353, 380).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과 고아들이 가진 것으로 낸 이익의 일부를 그들에게 주지 않는 것은 억압이며 학대다. 가난한 자들과 고아들의 것을 가지고 낸 이익이나 적어도 이익의 일부를 주지 않아 그들을 굶어 죽게 하는 것은 얼마나 더 잔인한 짓이겠는가!”(344). 백스터는 가난한 자들을 억합하는 자들을 호되게 질책한다. 그런 자들을 향해 ‘적그리스도’라는 말까지 사용한다. “세상의 수많은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세입자와 종들을 마치 그들이 오직 자신들만을 위해 일하고 수고하도록 만들어졌으며, 자신들의 뜻을 이루고 자신들의 호의를 받고 사는 게 그들의 최고 행복인 것처럼 그들의 자신들의 짐승처럼 사용한다. ... (가난한 자들과 세입자들)을 억합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다. 그는 부요하시고 모든 것의 주인시지만 자신의 가난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고 친히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를 반대한다. .... 억압하는 자들은 마귀의 행동인일 뿐 아니라 마귀의 형상이다. ... 억압은 마귀를 크게 섬기는 죄다.”(371-373) “당신의 가난한 형제들을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고 마치 가난이 당신 자신의 것인 것처럼 그들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라.”(378). “잉글랜드의 일반적인 사정은 땅 주인은 귀족들이고 세입자들은 오직 귀족들이 가진 땅에서 힘든 노동을 통해 얻는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런 경우에 땅의 가치보다 적게 세를 받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자비이며, 이렇게 자비를 베푸는 게 곧 정의라고 말할 수 있다.”(380). “어떤 세입자는 (심각한 기근 때문에) 세를 내는 데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어떤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가난해 세를 내려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보통 잉글랜드에서 보편적인 세입자들이 평안한 삶을 살고, 즐거운 마음으로 노동하며, 자유롭게 가정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자신들의 구원 문제를 생각하게 하기 위해, 또한 자유민이 아니라 노예가 되게하여 그들의 삶을 불편하게 하며 ‘자기 가정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때에 맞게 영원한 것들’을 생각하지 못하게 할 만큼 수고하고 염려하고 부족함에 시달리지 않게 하기 위해 땅의 가치보다 많은 세의 감면을 받아야 한다.”(381).
3.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근검 절약하며 살아야 함의 필요성
21장의 주제는 ‘사치와 낭비를 하지 않는 법’이다. 청교도의 대표적 윤리 덕목인 근검과 절약이다. 이것은 그들이 아껴서 부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다. 백스터는 그렇게 사람들이 사치와 낭비를 하지 않고 모은 재물들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되돌려 주어야 함을 강조한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가족을 구제하는 데 써야 할 비용을 높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데 쓰는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이다. .... 당신이 필요성도 없고 더 큰 선도 없는 데 부자들을 즐겁게 하는 데 많은 비용을 쓰면서 가난한 자들을 ‘필요한 게 없어 고통 가운데 있게’ 방치한다면, 당신은 불충한 종으로서 이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389-390). “더 큰 선을 위한 수단이라면, 비용을 하나님과 지역 사회에 사용하는 것은 의무다.”(390). “건물이 사람의 부나 그의 교만을 드러내고, 육적이며 비합리적인 상상력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나, 사람이 자기 재산에 비해 지나치게 사치를 부리거나, 더 큰 선을 위해 써야 할 비용을 자기 건물에 쏟아 부를 때, 그것은 방탕한 것이며 죄다.”(391). “국가나 교회가 재정 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수많은 가난한 가족이 삶에 필요한 것들이 부족해 허덕이는 동안, 과시하고 열매 없는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필요도 없는 헛된 일에 일 년에 수백 또는 수천 파운드를 낭비하는 것은 가장 혐오스럽고 큰 범죄다.”(393). “아무리 부자라도 검소해야 하며, 아무리 왕이라도 선한 것을 낭비하는 것은 죄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자신의 풍성한 데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사람은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고 모아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더욱 칭찬을 받는다.”(395).
30장에서 백스터는 ‘자선을 베푸는 법’에 대하 지침을 준다. 여기에서도 가난한 노동자들과 소작인들에 대한 관심과 실제적 도움을 베풀라는 것을 강조한다. “땅 주인이 소작인들에게 관심을 두고, 그들의 육적인 위로와 구원을 향상시키며, 그들이 일을 해야 할 시간을 줄여 교리문답을 배우고 가족 안에서 성경과 좋은 책을 읽게 하고, 목사에게 그들을 가르치게 하는 것은 매우 선한 일이다.”(527) 이를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바로 ‘자기 부정’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들을 자신을 부인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거의 돈이 필요 없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이 줄 수 있고 선을 베풀 수 있다.”(543). “부에 대한 사랑으로 탐욕스럽게 절약하는 것은 큰 죄이지만, 자비의 행위를 목적으로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은 크고 필요한 의무다.”(549).
VI. 결론
이 『기독교 생활 지침』 시리즈 전체는 사실 목양적인 관점에서 쓰였다. 백스터는 이 책들 안에서 한 그리스도인이 일평생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모든 경우들(개인적 회심, 가정 생활, 교회 생활, 국가와 사회 경제 생활)을 다 다룬다. 1661년 대추방령 이후로 공식적인 목회를 할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백스터는 글로서 성경과 복음에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워질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이다. 백스터의 생각에 참된 그리스도인은 개인 윤리적 측면에서도 의무를 다할 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적 측면에서도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잘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회 윤리를 다루면서 그리스도인이 공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바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백스터의 이 공적 윤리는 그의 목회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대다수의 청교도들을 매우 엘리트였고, 귀족들을 중심으로 사역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백스터는 출신도 그리 좋지 않고, 대다수의 공부를 독학으로 해야 할 만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의 사역지도 그러하였다. 백스터가 추방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백스터가 사역했던 도시는 키더민스터였다. 잉글랜드 안에서도 가장 가난한 곳 중의 하나였다. 교구민 대부분은 가난한 가내 수공업자였다. 백스터가 처음 그곳에 부임하였을 때, 도시에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의사가 오기 전까지 백스터가 의술과 약학을 독학하여 아픈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역할을 하였다. 백스터는 인기 작가였는데, 그는 자신의 인세를 돈으로 받지 않고, 책으로 받아서 그 책을 많은 가난한 교구민에게 그냥 나누어 주었다. 이 책에는 그의 목회적 경험과 추구했던 사역의 방향이 고스란히 잘 담겨 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백스터에게 이러한 목회의 전인적 성격을 잘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왜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왜 정치가 정의롭고 공적인 역할을 다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 그것은 우리의 성도 모두가 다 사회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약자를 억압한다면 우리 성도가 고통을 당한다. 경제가 불평등하고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억압하는 구조라면, 우리 성도가 그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양떼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먹이고, 목회적 돌봄을 함과 동시에 그들과 우리가 사는 사회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백스터의 주장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이 좋은 시민으로서 사회를 더욱 윤택하게 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그런 사회가 되도록 여러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책이 나온 지 거의 350년이 지났지만, 인간의 본성은 결코 변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경의 원리도 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백스터를 통해서 좋은 지침을 발견하다. 그가 주는 이 교훈들을 이 시대 가운데 잘 녹여내고, 동일한 정신을 추구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다.
I. 백스터가 말하는 “더 나은 선”(a greater good)이란 무엇일까?
2020년 여름 우리 나라에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왔었다. 그 중심에는 교회가 있었고, 정부는 여러 방역적 조취를 하던 중 교회에 ‘집합제한 행정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집한제한이 정당하다는 이유를 드는 사람 중 몇몇 사람이 리처드 백스터의 글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그 자료는 백스터의 요리문답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는데, 원 글의 출처는 『기독교 생활 지침4: 교회 윤리』에 실려 있는 ‘교회론적인 문제에 대한 양심의 경우들’에 관한 질문과 대답 중 109문에 해당하는 글이었다. 백스터는 ‘만일 통치자들이 교회가 모이는 것을 금지한다면 교회는 주일에 모이는 것을 생략할 수 있는 가?’라는 질문에 ‘만일 통치자가 (가령, 공공의 안전 같은) 더 큰 유익(a greater good)을 위해 페스트가 일어나거나 적의 공격이 있거나 화재가 났을 때, 일시적으로 모이는 것을 금지한다면, 그에게 순종하는 게 의무다.’(452)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나는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더 큰 유익’을 집중해서 보았다. 과연 백스터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배를 드리러 모이는 것보다 더 큰 선이 있다고 하는 것이었을까?
이 답을 찾기 위해 다시 2020년 하반기에 백스터의 전집을 다 뒤졌다. 사실 2019년에 석사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백스터의 주요 저작들을 정말 열심히 읽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논문 주제에 한정된 읽기였고, 그가 말하는 “더 나은 선”(a greater good)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 전반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논문을 위해서 백스터의 전집을 로고스 바이블에서 구매를 해 놓았었다. 그렇게 로고브 바이블을 통해 2020년 하반기 내내 그의 전작 여러 편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보았다. 특별히 “더 나은 선”(a greater good)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전집을 “공적 선”(public good)과 “공동 선”(common good)이라는 단어로 분석해 보았다. 놀랍게도 그의 전집 23권 중에서 “공적 선”(public good)은 총 163회 “공동 선”(common good)이라는 단어는 총 213회가 사용되었다. 특별히 그 두 단어가 집중된 책은 그의 전집 제 6권 A Christian Directory IV: Christian Politics 였다. 이 책에서 두 단어가 총 81회가 사용되었다. 그러면 백스터가 말하는 “더 나은 선”(a greater good)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책을 잘 읽으면 되는데, 원서로 6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 부흥과 개혁사에서 백스터의 『기독교 생활지침』을 계속 번역 중이어서 5권이 번역되기를 정말 기대했었다. 번역된 책을 2주 동안 정말 집중해서 읽었다. 책은 총 34장이고, 매우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나, 몇 가지 주요한 주제들로 묶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II. 정치 원리로서의 “공적 선”
백스터는 이 책의 1-3장을 통해 통치자와 국민의 의무를 다룬다.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일반적닌 정치 원리를 제시한 파트라고 볼 수 있다. 딱 오늘에 맞게 백스터의 정치적 성향을 대입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백스터는 참으로 ‘보수’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그는 일관되게 왕정을 지지한 사람이다. 백스터가 살았던 당시(1615년~1691년) 영국은 큰 정치적 격동을 겪었다. 그 중심에 청교도 혁명이 있었다. 의회파와 왕당파로 나뉘었던 내전에서 사실 백스터는 왕당파를 지지했다. 그가 막 목회를 시작했던 키더민스터 교구의 교구민들도 대부분 왕당파를 지지했다. 그러나 백스터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의회파 군의 군목으로 입대하게 되고, 크롬웰을 돕게 된다. 그러나 크롬웰의 공화정 시기에 백스터는 꾸준히 그를 비판하였다. 그가 내전을 일으켜 나라를 소란스럽게 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끌어내린 주동자였기 때문이다. 내전으로 인해 많은 무고한 사람이 죽고,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을 계속 비판하였다. 이 책은 그 이후에 쓰였지만 백스터는 기본적으로 왕정을 계속 지지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와 왕을 존중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이고 있다. ‘법이 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왕이 법을 만드는 것이다.’(35). 그러나 백스터는 그러한 최고 권력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과 명예를 거스를 수 없으며, 공적인 행복과 안전에 반하여 통치할’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
그는 먼저 통치자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사역자이며, 당신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주지시킨다(19). 그리고 ‘하나님 아래서 통치자의 목적은 공적인 선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조언을 한다(20). 백스터는 국가의 통치자들과 교회의 사역자의 임무를 분리하지만, 공통된 목표는 ‘궁극적으로 영혼들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제시한다(20).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들은 더 많은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통치자가 만드는 법에 대해서, 법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즐거움과 (통치자의 명예와 다스림을 받는 사회의 복지를 포괄하는) 공통적인 선을 위해 주어졌음 제시하고, “법은 공통적인 선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95).
통치를 받는 국민들에게는 그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반드시 그 권력에 순종한 것을 요청한다. 그 근거로 십계명의 제5계명을 제시한다(40). 그리고 죄악 된 통치자의 권위까지도 하나님에게서 나오므로 복종해야 함을 말한다(41). 또한 통치를 받는 국민들도 하나님의 명예와 공적인 유익을 가지기 위해 공적인 마음을 가질 것을 요청한다(44).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이 더욱 국가의 권위에 순종할 것을 요청한다. “종교는 반역을 정당화하는 핑계거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종교는 신실한 복종과 순종을 요구한다. 목회자들이 국가의 권력에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말라.”(55). 당시에도 종교의 문제로 국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백스터는 교회의 권위를 세우신 하나님이 동일하게 칼의 권세를 지닌 국가 위정자들을 세웠음을 믿고 강조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오늘날 정부에 대해서 ‘저항권’부터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 권위에 먼저 온전히 복종하는 사람인가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백스터는 그 증거로 역사 속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제시하면서 가장 진지하고 종교적인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있는 시민사회의 가장 훌륭한 구성원임을 언급한다(89).
III. 직업 윤리의 공적 성격.
백스터는 일반 시민들이 가지는 직업에도 공적인 원리가 있어야 함을 제시하는 데, 이 책에서는 대표적인 공적 직업인 법률가(4장), 의사(5장), 교사(6장), 군인(7장)의 직업 윤리를 제시한다.
1.법률가의 의무
“지침2. 돈을 번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증진하고 의로운 자들을 격려하며 공적인 선을 도모하고 이 모든 일에서 의로우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당신이 일하는 주된 목적이 되게 하라. .... 당신은 정의를 증진하는 것을 이익을 얻고 먹고 사는 것보다 더 큰 목표로 삼아야 한다.”(103).
“지침4. 가난한 자들의 사정을 당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나태와 무시로 외면하지 말라. 자신들에게 돈을 잘 내는 부자들을 변호하는 데는 심혈을 기울이면서 돈을 거의 내지 못하는 가난한 자들을 변호하려고 나서지 않는 사람은 정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다.”(104).
2. 의사의 의무
“지침1. 당신의 이익이나 명예보다 사람들의 목숨과 건강을 구하는 것이 당신이 치료하는 최고 목적이 되게 하라. .... 하나님을 명예롭게 하고 기쁘시게 하고, 공적인 선을 추구하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당신이 바라는 최고 목표라면, 당신이 당신 직업들 통해 섬기는 분은 하나님이다.”(107).
“지침2. 부자뿐 아니라 가난한 살마도 도와줄 준비를 하라. 공적인 선이 당신에게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을 구분하지 말라. 돈을 내지 못한다 해서 사람의 건강이나 생명을 무시하지 말라. 가난한 많은 사람은 자기 지갑이 비어 있어서 의사에게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는다. 그런 경우에 당신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가장 비용이 들지 않는 약을 최선을 다해 처방해야 한다.”(108).
그리고 백스터는 의사들이 육신이 지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여기며, 그들의 영혼의 회심을 위해서도 몇 마디 말을 해 줄 것을 당부한다(111-112).
3. 교사의 의무
“지침1. 당신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며, 이것으로 공적인 선을 증진시킴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공적인 봉사를 하게 만들며,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고, 학생들의 구원과 세상에서 그들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인지 살피라.”(113).
“지침3. 한 사람의 성숙한 사람이 교회나 국가에 얼마나 큰 유익을 줄지 생각하라. 그들 중 일부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수단이 될지 생각하라. 그들이 건강한 인격을 함양한다면 가정과 이웃에게 얼마나 큰 복이 될지 생각하라.”(114-115).
4. 군인의 의무
군인은 직업 적으로 남을 죽여햐 하는 임무를 맡은 자기기 때문에, 공적 성향을 가지기 힘들다. 그러나 백스터는 부득이하게 남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웃에 대한 사랑의 정신을 붙들어야 함을 언급한다.
“지침4. 당신이 정당한 전쟁에 나가야 할 때, 하나님의 가장 쓰라린 심판에 참여하게 된 것을 겸손하게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자세로 받아들이라. .... 비록 나는 하나님과 우리 조국과 우리의 통치자들에 대한 사랑이 때때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지만,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슬픈 일이며 이웃에 대한 사랑과 조화되지 않는 일이다.”
전체적으로 백스터는 직업 윤리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모든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법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가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 하지 않는다. 백스터는 일관되게 직업을 통해 경제적인 부를 취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임을 이야기 한다. 그 직업을 성실하게 감당하므로 그 직업이 주는 유익을 드러내고, 공적인 선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직업 윤리이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할 때에도 가난한 자들이 돕고 섬길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실천하는 것이 백스터가 말하는 직업 윤리의 핵심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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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일반적인 시민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
백스터는 일반적인 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는 몇 가지 주제를 다룬다. 8장 살인에 관하여, 9장 복수와 용서에 대하여, 10장 채권과 채무에 관하여. 여기에서도 공적인 원리와 가난한 자에 대한 그의 관심이 잘 나타난다.
백스터의 입장에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아 죽게 만드는 것은 부작위(不作爲)에 해당하는 범죄행위이다. “살인의 또다른 원인은 억압과 무자비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매우 부족하다. 그들 중에서 기아로 죽은 사람은 거의 없지만, 좋지 않은 음식으로 말미암아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억압하고 도와줄 수 있는데 도와주지 않아 그들이 죽는다면, 이것은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약 5:1-5).”(134). “자비의 부족이나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살인의 또 가른 원인이며 살인에 대한 내적인 억제를 제거한다.”(137).
백스터는 또한 살인죄의 하나인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한다(139-142). 연약하고 아픈 자들에 대한 그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복수와 용서, 채권과 채무에 관한 것을 언급하며 백스터는 사사로운 복수는 결코 할 수 없고, 통치자의 권세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함을 언급한다. 개인이 행하여야 할 것은 ‘정의’가 아니라 ‘자비’이다. 그는 마 5:38-42를 이렇게 해설한다.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뿐 아니라 자비도 실현되어야 한다. 비록 정의를 베푸는 것이 통치자의 의무이지만, 언제나 그렇게 하는 것이 네 의무는 아니다. 반대로 자비를 베푸는 것이 네 의무가 되어야 한다. .... 온 힘을 다해 자비를 베풀고,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겸손하며 인내하고, 네 능력에 따라 주거나 빌려 주며 자비와 인내의 큰 의무를 거슬러 정의를 행하는 척하지 말라. 그러므로 육체가 입은 손해에 대해 격렬하고 법적인 복수를 하지 말라. 자비와 인내의 법은 복수를 반대한다.”
V. 타인을 위한 경제 윤리.
이 책 제 18~21장(289-400)은 백스터의 경제 윤리가 잘 드러난 부분이다. 이것에 관해서는 이미 탁월한 두 연구가 있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R.H. 토니의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이다. 특별히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R.H. 토니가 더욱 백스터의 원래 의도에 충실하다 생각하는 데, 그의 책 <제4장 청교도운동>에서 백스터의 경제 윤리를 매우 잘 분석해 놓았다.
백스터는 그 당시의 사회 변화를 그대로 인정하였다. 백스터가 살았던 17세기는 영국 내에서 다양한 경제적 분화가 이미 시작된 시점이었다. 특별히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서, 사회와 경제가 급격하게 변하였다. 그 운동을 통해서 토지의 소유 개념이 명확해 졌고, 대농장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원래 경작하던 토지를 잃은 사람들은 소작농으로 전락을 하거나 도시로 이주하여 노동자 생활을 하여야 했다. 그런 값싼 노동력은 산업 혁명을 일으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백스터가 살던 그 시기에는 그런 경제적 격변으로 인해, 경제로 인한 계급화가 생긴다. 농촌의 대지주 인 젠트리(gentry) 계급이 생기고, 몰락한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근근이 생활하여야 만 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에 반대하여 17세기 잉글랜드에서 급진적 혁명을 주장하는 수평파(Leveller)나 디거스(Diggers) 등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백스터는 그렇게 급진적인 주장을 한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백스터는 그러한 사회적 격변 속에서 소외당한 농민 계층과 소작농들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었고, 그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였다. 또한 부자들이 올바른 경제적 윤리를 가져서 가난한 자들이 결코 소외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엄격하게 주장하였다. 백스터의 경제 윤리를 주로 일반 경제학자들이 연구의 주제로 삼았는데, 기독교 윤리와 공공신학의 측면에서 충분히 더욱 상세하게 다룰만한 주제라 생각한다.
1. 경제 윤리에 있어서 몇 가지 조언들
백스터는 경제활동이나 계약을 맺을 때, 지나치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이기적인 마음을 경계한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다수의 이익을 선호하여 경제 활동을 하는 중에도 공적인 정신을 유지할 것을 당부한다.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신을 죽이는 원리를 깊고 습관적으로 지니고 있는지 살피라”(305). “당신의 재산보다 공적인 유익을 더 높게 평가하라. 국가나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히면서 부자가 되기 위해 억압적인 독점이나 장사를 하는 것은 합법적이 아니다.”(306). “법은 공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므로 어떤 개인적인 유익보다 선호되어야 한다.”(307).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범죄에서 이익을 얻을 수 없다.”(313). “예기하지 않게 공적인 선이 우리 행동을 가로막을 때, 우리는 그 행동을 할 수 없다.”(315). “당신이 시장에 간다면, 시장 가격을 지켜야 한다. 계약에 따른 가격이라면, 비록 그것이 일반적인 가격보다 좀 높더라도 당신의 물건의 가치를 계약된 가격으로 평가해야 한다.”(327). “시민 사회나 일반적인 대화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진리와 정직을 기대해야 하고 모든 사람을 거짓말쟁이라고 가정하지 말아야 한다.”(328). “손해를 볼지언정 죄를 짓지는 말라. 그리고 양심의 평화를 유지하라.”(333). “비천한 거지로 사는 게 도둑으로 사는 것보다 낫다.”(335).
2.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의무.
백스터는 특별히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과, 그들을 위한 의무를 다할 것을 거듭 강조한다. 백스터에게 진정한 정의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의와 함께 자비가 베풀어지는 것”이었다.(331, 353, 380).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과 고아들이 가진 것으로 낸 이익의 일부를 그들에게 주지 않는 것은 억압이며 학대다. 가난한 자들과 고아들의 것을 가지고 낸 이익이나 적어도 이익의 일부를 주지 않아 그들을 굶어 죽게 하는 것은 얼마나 더 잔인한 짓이겠는가!”(344). 백스터는 가난한 자들을 억합하는 자들을 호되게 질책한다. 그런 자들을 향해 ‘적그리스도’라는 말까지 사용한다. “세상의 수많은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세입자와 종들을 마치 그들이 오직 자신들만을 위해 일하고 수고하도록 만들어졌으며, 자신들의 뜻을 이루고 자신들의 호의를 받고 사는 게 그들의 최고 행복인 것처럼 그들의 자신들의 짐승처럼 사용한다. ... (가난한 자들과 세입자들)을 억합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다. 그는 부요하시고 모든 것의 주인시지만 자신의 가난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고 친히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를 반대한다. .... 억압하는 자들은 마귀의 행동인일 뿐 아니라 마귀의 형상이다. ... 억압은 마귀를 크게 섬기는 죄다.”(371-373) “당신의 가난한 형제들을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고 마치 가난이 당신 자신의 것인 것처럼 그들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라.”(378). “잉글랜드의 일반적인 사정은 땅 주인은 귀족들이고 세입자들은 오직 귀족들이 가진 땅에서 힘든 노동을 통해 얻는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런 경우에 땅의 가치보다 적게 세를 받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자비이며, 이렇게 자비를 베푸는 게 곧 정의라고 말할 수 있다.”(380). “어떤 세입자는 (심각한 기근 때문에) 세를 내는 데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어떤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가난해 세를 내려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보통 잉글랜드에서 보편적인 세입자들이 평안한 삶을 살고, 즐거운 마음으로 노동하며, 자유롭게 가정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자신들의 구원 문제를 생각하게 하기 위해, 또한 자유민이 아니라 노예가 되게하여 그들의 삶을 불편하게 하며 ‘자기 가정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때에 맞게 영원한 것들’을 생각하지 못하게 할 만큼 수고하고 염려하고 부족함에 시달리지 않게 하기 위해 땅의 가치보다 많은 세의 감면을 받아야 한다.”(381).
3.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근검 절약하며 살아야 함의 필요성
21장의 주제는 ‘사치와 낭비를 하지 않는 법’이다. 청교도의 대표적 윤리 덕목인 근검과 절약이다. 이것은 그들이 아껴서 부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다. 백스터는 그렇게 사람들이 사치와 낭비를 하지 않고 모은 재물들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되돌려 주어야 함을 강조한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가족을 구제하는 데 써야 할 비용을 높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데 쓰는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이다. .... 당신이 필요성도 없고 더 큰 선도 없는 데 부자들을 즐겁게 하는 데 많은 비용을 쓰면서 가난한 자들을 ‘필요한 게 없어 고통 가운데 있게’ 방치한다면, 당신은 불충한 종으로서 이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389-390). “더 큰 선을 위한 수단이라면, 비용을 하나님과 지역 사회에 사용하는 것은 의무다.”(390). “건물이 사람의 부나 그의 교만을 드러내고, 육적이며 비합리적인 상상력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나, 사람이 자기 재산에 비해 지나치게 사치를 부리거나, 더 큰 선을 위해 써야 할 비용을 자기 건물에 쏟아 부를 때, 그것은 방탕한 것이며 죄다.”(391). “국가나 교회가 재정 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수많은 가난한 가족이 삶에 필요한 것들이 부족해 허덕이는 동안, 과시하고 열매 없는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필요도 없는 헛된 일에 일 년에 수백 또는 수천 파운드를 낭비하는 것은 가장 혐오스럽고 큰 범죄다.”(393). “아무리 부자라도 검소해야 하며, 아무리 왕이라도 선한 것을 낭비하는 것은 죄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자신의 풍성한 데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사람은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고 모아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더욱 칭찬을 받는다.”(395).
30장에서 백스터는 ‘자선을 베푸는 법’에 대하 지침을 준다. 여기에서도 가난한 노동자들과 소작인들에 대한 관심과 실제적 도움을 베풀라는 것을 강조한다. “땅 주인이 소작인들에게 관심을 두고, 그들의 육적인 위로와 구원을 향상시키며, 그들이 일을 해야 할 시간을 줄여 교리문답을 배우고 가족 안에서 성경과 좋은 책을 읽게 하고, 목사에게 그들을 가르치게 하는 것은 매우 선한 일이다.”(527) 이를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바로 ‘자기 부정’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들을 자신을 부인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거의 돈이 필요 없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이 줄 수 있고 선을 베풀 수 있다.”(543). “부에 대한 사랑으로 탐욕스럽게 절약하는 것은 큰 죄이지만, 자비의 행위를 목적으로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은 크고 필요한 의무다.”(549).
VI. 결론
이 『기독교 생활 지침』 시리즈 전체는 사실 목양적인 관점에서 쓰였다. 백스터는 이 책들 안에서 한 그리스도인이 일평생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모든 경우들(개인적 회심, 가정 생활, 교회 생활, 국가와 사회 경제 생활)을 다 다룬다. 1661년 대추방령 이후로 공식적인 목회를 할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백스터는 글로서 성경과 복음에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워질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이다. 백스터의 생각에 참된 그리스도인은 개인 윤리적 측면에서도 의무를 다할 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적 측면에서도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잘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회 윤리를 다루면서 그리스도인이 공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바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백스터의 이 공적 윤리는 그의 목회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대다수의 청교도들을 매우 엘리트였고, 귀족들을 중심으로 사역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백스터는 출신도 그리 좋지 않고, 대다수의 공부를 독학으로 해야 할 만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의 사역지도 그러하였다. 백스터가 추방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백스터가 사역했던 도시는 키더민스터였다. 잉글랜드 안에서도 가장 가난한 곳 중의 하나였다. 교구민 대부분은 가난한 가내 수공업자였다. 백스터가 처음 그곳에 부임하였을 때, 도시에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의사가 오기 전까지 백스터가 의술과 약학을 독학하여 아픈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역할을 하였다. 백스터는 인기 작가였는데, 그는 자신의 인세를 돈으로 받지 않고, 책으로 받아서 그 책을 많은 가난한 교구민에게 그냥 나누어 주었다. 이 책에는 그의 목회적 경험과 추구했던 사역의 방향이 고스란히 잘 담겨 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백스터에게 이러한 목회의 전인적 성격을 잘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왜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왜 정치가 정의롭고 공적인 역할을 다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 그것은 우리의 성도 모두가 다 사회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약자를 억압한다면 우리 성도가 고통을 당한다. 경제가 불평등하고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억압하는 구조라면, 우리 성도가 그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양떼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먹이고, 목회적 돌봄을 함과 동시에 그들과 우리가 사는 사회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백스터의 주장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이 좋은 시민으로서 사회를 더욱 윤택하게 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그런 사회가 되도록 여러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책이 나온 지 거의 350년이 지났지만, 인간의 본성은 결코 변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경의 원리도 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백스터를 통해서 좋은 지침을 발견하다. 그가 주는 이 교훈들을 이 시대 가운데 잘 녹여내고, 동일한 정신을 추구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