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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 존스 평전 3
박문대, 2015/01/24 10:57, HIT : 2969
로이드 존스 박사의 일생에 대한 평가와 전기를 다룬 세 권 중 마지막 책이다.
이야기식으로 저술되었고 당시에 행해진 설교 내용과 시대적 배경 등을 자세히 전달해주고 있기에,
그 어떤 다른 박사에 대한 책에 비해서도,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대한 부담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재미있고 유익하게
그리고 박사의 생각과 믿음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이다.

평전 3권은 1960년대 논쟁의 핵심 원인이었던 연합에 대한 문제로 시작한다.

영국 국교회 대주교라는 사람이, ‘천국은 기독교에서만 말하는 장소가 아니다.....
나는 천국에서 조만간 무신론자를 만나 보게 될 것을 기대한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에큐메니컬 운동이 전반적으로 주도되고 있던 현실 속에서,
존스 박사는 그들의 주장이 “그리스도인”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시키고 있다고 반대했으며,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성경적 정의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묶는 연합에 대한 이해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존스 박사가 정의한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한 자각을 경험하고, 회개를 알며,
거듭남의 결과로서 새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공통으로 믿는 신앙의 결과이다.

관련하여 교회에 대해서도, “참된 교리가 선포되고, 성례가 신실하게 거행되며,
권징이 바르게 행사되는 공동체”라고 정의하였다.
즉 가라지 비유에 대한 인기 있는 해석은 교회 권징의 부재를 정당화하지만,
이런 해석은 이 비유를 신약 성경의 다른 가르침과 모순되게 만들고 교회를 순결하게 해야 할 필요성까지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은 “그리스도인”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 기관에서 분리된 것이므로 사실은 분열이 아니었다.
복음이 없으면 연합도 있을 수 없다.

물론 연합의 초창기부터 잘못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타협 아닌 협력”,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 그
러하기에 당시 복음주의자들에게 요구된 것은 “고립이냐 참여냐” 둘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것이 실천되어 지는 과정에서 필요적으로 교리보다는 교제를 우선시 하다보니 신학의 타락이 초래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평전 3권에는 이런 진행 과정이 알기 쉽게 설명되어 지고 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치명적인 교리가 널리 유행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커다란 위험은 우리 자신과 함께 시작해서 우리 자신으로 끝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주관적입니다.”

“특히 지금 복음주의 교회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오늘날 교회의 핵심 문제점은 우리가 소름 끼칠 정도로 너무 피상적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에 인격적으로 친숙하지 못하고, 그 결과 우리에게 기쁨과 충분한 확신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비록 성령이 모든 그리스도인 속에 내주하고 계신다고 해도 성령의 능력이 획기적으로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하고 부패한 죄악의 상태만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의 필요성을 설명해 줍니다.”

“구원의 문제도 주로 이해의 문제인데, 객관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주관적인 것으로 나아갈 권리가 없기 때문에 교리와 함께 시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방언으로 말할 수 있고 또 말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것이 성령을 “받은” 증거라는 주장은 비성경적이고,
또한 사람은 모든 은사를 갖는 것이 가능하다는 견해는 잘못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정직함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보는 것처럼 보지 못하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저는 선택 교리를 믿습니다. 선택 교리 없이는 성경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교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또는 그와 교제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르미니우스주의는 다른 복음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오히려 구원이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지는지에 대한 구조에 대한 다른 지식입니다.....
우리의 신념을 고수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신념에 대해서는 사랑과 인내로 대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로 교제를 깨뜨려서는 안됩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지식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황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존재하는 그대로 다루어야 한다.

우리는 똑같이 정직한 사람들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 겸손
그리고 인내가 필수적이라고 거듭해서 강조했다.

그리스도인은 진지하고, 기뻐하고, 내적 평안을 소유하고, 믿고 의지할 만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동정과 인내와 이해와 관대함을 갖고 관심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계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그분의 권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항상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는 그분이 어떻게 행하실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으려면 먼저 죄의 두려움과 죄책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결국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일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그런 일들에 과도하게 신경을 씁니다.
영원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진정한 가치에 따라 그런 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위대한 설교’를 원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하는 설교를 원합니다.
즉 하나님을 경배하고, 뭔가 크고 영광스러운 일을 도모하게 하는 설교를 원합니다.”

“우리의 교회 안에서 가망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든 교리를 이해할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리는 요리를 잘해야 하고, 최대한 맛있게 요리해야 합니다.
최고의 말과 최고의 모든 것을 사용하십시오.”

교회나 기관이나 운동이 한때 옳았다고 해서 계속 옳다는 것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죄에 대한 의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통상적인 방식은 수단과 방법을 통한 방식입니다.
곧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치료 능력과 자연 속에 풍부하게 두신 약제를 통해 치료하는 방식입니다.”

만약 부정적인 말을 전해야 한다면 대담함이 유일한 필수 조건은 아니고, 부드러움과 동정심 또한 갖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열정에는 진리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부르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인이 ”된“ 자로 인정할 용의가 없습니다.”

부흥에 대한 소망이 현재의 의무를 대신하는 대안으로 취해져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과 우리는 이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의 문제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현대의 은사 운동의 경향은 사람들을 경험을 추구하는 신앙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참된 부흥은 사람들을 하나님 안에서 겸손하게 만들고, 그리스도의 인격을 강조합니다.”

강단은 죄와 구원과 다가온 영원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

“목사로서 우리의 핵심적 실패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로 이끌지 못한 데 있었다.”

“이 시대의 비극은 은사가 지나치게 부각되고 위대한 설교가 결여되어 있는 데 있습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 때 사람들과 그들의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미치고 있습니다.”

“현상 자체의 존재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현상이 반드시 신적 능력의 현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상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현상이 조장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상이 자랑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상을 추구하는 자는 누구든 마귀의 도구이고, 자신을 심령 현상과 심리적 영역 속에 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의 대부분은 일상적인 문제에 너무 깊이 빠져 우리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내가 이것을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다’라는 관념은 제거하십시오.
하나님은 복을 주실 때와 주시지 않을 때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복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신뢰해서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중대한 메시지는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종의 필요성을 약화시키는 확신에 대한 견해는 강력하게 경고했다.
“만일 여러분이 소위 자신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은혜로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청교도는 율법을 구원의 기초로 삼는 것은 거부하지만 율법을 삶의 규칙으로 받아들였다.

“선행은 신앙의 표지로서는 유용하지만 신앙의 기초로서는 부패했다.” - 윌리엄 페너

“우리는 세상과 지나치게 가깝습니다. 너무 집요하게 삶을 붙들고 있습니다.”

현대 복음 전도의 피상성은 칭의를 지나치게 강조한 데서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율법과 죄의 깊이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설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칼빈주의 복음 전도의 전형적인 특징은, 죄를 단순히 어떤 질병으로 다루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모독으로,
곧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으로 다룬다.

참된 칼빈주의 설교는 인간의 완전한 무력함을 보여 주고 인간을 겸손하게 낮추는 것을 사역의 주요 부분으로 간주한다.

“우리의 최대의 위험은 우리가 활동에 의지하여 살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최고의 기쁨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실제로는 성경을 곧 정확히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믿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진실로 성경을 삶 속에 적용하고 실제로 성경이 우리를 위해 참되다고 믿습니까?
내가 보기에는, 그래야 기독교입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의 가장 큰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완전 초보자입니다.”

“성령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최선의 준비를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활동은 우리 자신의 활동을 면제시키지 않는다.

“진단을 확실히 하기 전에 증상들을 제거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질병의 존재와 본질을 주목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증상들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문제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이다.

존스 박사는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기 백성을 다루신다는 사실과
시간과 영원 속에서 그들의 최고의 특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우리의 근본적인 어려움, 우리의 근본적인 부족함은 하나님의 사랑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라는 것을 더 굳게 확신하고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최대의 목표와 노력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하나님을 더 진실하게 사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자기선전”과 겸손의 결여를 “모든 것 가운데 최대의 비극”으로 간주했다.

“사람에게서 떠나라”는 것이 존스 박사의 격언이었다.

“나는 교회 상태가 오늘날과 같이 된 이유가 성경 신학을 심리학으로 대체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존스 박사는 항상 정상적인 의학 치료는 무시되어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에 의한 치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치료하는 선택을 하실 수 있고,
이와 관련해서 신약 성경의 “신유의 은사”가 오늘날에 되풀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치료를 일으키는 요소는 무척 다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요소는 기독교 신앙만이 아닙니다.
다른 어떤 신앙, 곧 ‘은사’를 받은 자를 믿는 신앙, 심리학적 요소들, 심원한 감정, 충격, 악령의 활동 등도 치료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결과“만 보고 불확실한 치유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합니다. 모든 가르침에 대한 판단은 성경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지 절대로 현상에서 받은 인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적 사건들은 자체로는 아무런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존스 박사도 신약 성경 기록을 보면, “자기들이 원하는 시기와 장소와 방법으로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오웬의 주장에 동조하며,
따라서 현대의 ”치유자들“이 미리 신유 집회나 선교 날짜나 주간을 정해 놓는다면,
그것은 이미 성경에서 떠난 것이라 믿었다.

“나는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 주세요.”
윌리엄 케리와 떠나는 여행 - 전기 여행 가이드 시리즈 1 박문대
존 오웬의 신학 박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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