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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웬의 신학
박문대, 2015/01/24 10:51, HIT : 3197
저자인 김남준 목사님이 존 오웬의 신학에 대해서,
그리고 세 편의 저서(내재하는 죄, 유혹, 죄 죽임)를 소개하고 있으며,
저자의 서문처럼, 다소 읽기에 어려운 오웬의 전집을 대하기전에 오웬의 학문적, 신학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위한 책이다.

영국 청교도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오웬, 저자가 구원의 은사 다음으로 존 오웬의 글을 만난 것이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 얘기하고 있다.

존 오웬은 동시대의 다른 출중한 인물들에 비해서도 매우 이른 나이인 12세에 퀸스 칼리지에 입학을 했고,
크롬웰과의 만남 그리고 이후 그에 의해 영국의 국목으로 임명되고 옥스퍼드 부총장직을 맡기도 했다.

성경 원어에 대해서는 희랍어나 히브리어 본문뿐 아니라 70인 역이나 아람어 본문까지 자유자재로 신학적 해석으로
논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였고 희랍의 고전과 고대 문학, 유대교 자료와 역사에 대한 지식도 방대하였다.

존 오웬은 그 시대에 세 가지 이단들을 대항하여 격렬하게 투쟁했는데,
영국 안에 남아 있는 가톨릭의 교리적 유산들과 초자연적인 계시를 부정하고 복음적인 신앙의 기반을 위협하는 소키누스주의자들
그리고 구원에 있어 인간의 자유와 의지를 하나님의 주권보다 더 강조하는 인본주의적인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싸워야 했다.

오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신학을 잘 배우는 조건이라고 믿었으며,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였고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기준이 된다는
‘오직 성경으로만’의 사상을 받아들여 성경을 최종적인 권위로 내세웠다.

오웬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단지 구주이실 뿐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세계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갖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이시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그리스도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사랑을 동반한 지식이어야 하며
이러한 지식이 아니면 그것은 참된 지식일 수 없다고 믿었다.

오늘날은 지극히 피상적인 시대다. 특별히 이 피상성은 교회 역사에 있어서는 참으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하여 더 알기를 원하지 않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익히려고 하지 않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결코 성경을 따라 살 수 없다.

신학의 빈곤은 단지 학문의 부족이 아니다. 우리의 신학의 빈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운 떨림과 이끌리는 사랑의 경험의 결핍이다.

오웬은 자신의 모든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 자신의 최고의 의무라고 믿었다.

인간의 최고의 행복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묵상에 있다고 믿었으며 죽음과 함께 도입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며 그리스도를 묵상할 수 있다는 것은 구원받은 신자들에게만 주어진
최고의 특권이었으니 신자는 그 갈망과 일치하는 삶을 역사 속에 쏟아 놓으며 살아가야 할 부르심 아래 있다고 믿었다.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에 관하여 (On Indwelling Sin in Believers)

오웬은 인간은 중생과 함께 세 가지 감각을 일시에 회복한다고 보았는데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그리고 영광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감각이 그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구원받은 신자라 할지라도 여전히 잔존하는 죄가 경향성으로서 내재하고 있기에
그가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워지기까지는 끊임없는 죄와의 투쟁이 필요하다고 보고
하나님은 은혜를 통해 끊임없이 내재하는 죄를 성령으로써 죽이고
또 하나님의 형상을 쇄신하는 일에 인간이 자신에게 지정된 의무를 다하도록 부르신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은 신자가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신 것은 참으로 창조 당시의 인간의 목적에로 돌아가게 하시기 위함이다.
구원받은 인간은 여전히 잔존하는 죄의 영향을 받는다.
그는 끊임없는 성화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쇄신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참된 신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오웬은 성화론에서 늘 강조한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라.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으라.”

중생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에 의해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역사이지만
회심은 인간의 협력을 통해 결실하며 성화에서도 이러한 성령의 주도권에 협력하는 인간의 의지가 강조된다.

이처럼 하나님은 창조와 구속 그리고 완성에 이르기까지 인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신다.

신자는 내재하는 죄의 영향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수록 더욱 하나님께 의존적이 되며
그 반대의 상태가 될수록 하나님을 향해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

그러나 신자라 할지라도 그는 죄 죽임을 선택할 뿐이지 자신의 의지로써 죄를 죽이지는 못한다.

죄 죽임이 없는 신자의 신앙생활은 실패하면 배교에 가까운 삶이고, 성공하면 외식하는 삶이 된다.

오웬은 참된 죄 죽음은 오직 성령으로써 가능한 일임을 매우 빈번하게 강조한다. 이
는 당시 로마 가톨릭과 영국 국교회 안에 있는 그릇된 죄 죽임의 예들 때문이다.
그러나 오웬은 성령께서 이 일을 행하심에 있어 인간의 의지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강조한다.
그는 은혜 언약이 본질적으로 인간의 의지를 초월해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 아래 신자를 성화의 의무로 부른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의무는 철저하게 언약 관계 안에서 해석된다.
인간에 대한 의무의 강조는 하나님의 은혜를 도외시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강조는 인간의 의무를 폐기하지 않는다.

오웬은 자신의 성화론을 전개함에 있어 이러한 언약 신학적 입장을 시종일관 견지하는데,
그리하여 의무에 충실한 신자들이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신자들이 언약의 은총적인 성격을 자신의 의무를 해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신학적 긴장을 조성한다.

“(성화에 있어서)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며, 우리없이 우리를 거슬러 역사하시지 않는다.
(He works in us and with us, not without us and against us)”

참된 신자는 결코 배교할 수 없지만 신자인 사람이 배교하였다면
그는 그 배교를 통해 그가 진정으로 구원 얻은 사람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오웬은 죄를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경향성으로 본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성은 사람의 마음 안에서 성향을 갖게 하며 이로써 마음 안에서 혹은 행동으로 작용한다.

경향성으로서의 죄가 흐르는 물이라면 작용하는 적의의 성향으로서의 죄는 물길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구원의 과정뿐 아니라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도 인간으로 하여금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보여 주심으로써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을 인정하는 과정으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오웬은 죄를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지 않으려는 인간의 반항과 또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이라고 규정한다.

오웬은 죄가 가지는 실효적인 힘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신자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고 보았다.
그러나 죄의 실효적인 힘을 강조하는 것만큼 동시에 은혜의 실재하는 힘을 강조함으로써,
죄의 커다란 실효적 힘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혜에 의한 승리의 가능성을 가지고 신자의 존재를 낙관적으로 바라보았다.

이처럼 성화의 신학을 전개하면서 오웬은 철저히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론을 전개한다.

오웬의 인간론에 있어서 중생한 신자는 죄의 작용과 은혜의 작용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진리의 밝은 빛에서 멀어질 때 필연적으로 자기의 육체밖에는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인간은 의식 안에서 최종적 지위에 오직 하나의 존재만을 원한다.
자신이 최고의 존재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최고의 존재이신 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죄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어떠한 성화의 진전도 기대할 수 없는데,
오웬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죄에 대한 관심은 정확하게 비례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신자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갈망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며
거룩한 삶을 갈망하는 것만큼만 죄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또한 죽이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웬의 평생 연구 주제는 ‘복음적 거룩함 (gospel holiness)’ 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어떻게 경건을 회복하고 도덕주의가 아닌 복음적인 거룩함에 이를 것인지를 항상 염두에 두었다.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는 마음 안에서 작용하면서 정서를 육욕으로 물들게 하고 의지를 육욕에 굴복하게 준비시키는데
이런 모든 파괴적인 작용의 첫 걸음은 생각 (mind)을 속이는 것으로 이루어 진다.....
그가 성화론에 있어 생각의 중요성을 수없이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루할 정도로 반복해서 지적되는 ‘바른 생각’의 중요성은 그의 신학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강조점이다.
왜냐하면 신자의 마음의 모든 미끄러짐은 바로 생각의 이탈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각 지킴은 곧 신자가 생각하여야 할 바를 생각하고 그리하지 말아야할 바를
의지적으로 떨쳐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마음 지킴보다 앞서야 할 경건의 실천이라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충실해야 할 신자의 의무이다.



유혹 (On Temptation)

오웬은 시험을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과 관련하여 설명하였는데,
“시험이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기에 적합하지 않거나 모자라는 상태”라고 규정하였다.....
신자의 내면은 완전하신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충일해져 있어야 하며
이에서 모자라는 것이 곧 시험의 상태라고 보았던 것이다.

시험의 일반적인 본질은 시험이 대수롭지 않은 것들 가운데서 온다는 것이다.
이 시험이, 시험이 되는 것은 우리의 내적인 상태에 의존한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에게는 그 시험이 자기를 성찰하는 약이 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시험과 함께 미끄러지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시련’이라는 것은 시험에 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이며 이것이 죄와 결부되어 개인의 삶에 적용될 때 시험이라고 본다.

어떤 시험이든지 그것이 참으로 시험이 되기 위해서는 신자가 그 시험에 대해 욕망과 불순종으로 반응하게 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오웬은 이러한 시험은 모든 신자의 성화의 길에서 반드시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오
히려 이 시험을 통해 신자는 시험이 없었더라면 발견할 수 없었을 자기 자신의 연약함과 부패성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불안전한 상태를 봄으로써,
결국 이 시험 또한 인간이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아야 할 존재임을 일깨운다는 것이다.

오웬이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신자가 단순히 시련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에 들어가는 것’이다.

시험을 당할 때 그것을 계기로 시험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사탄이나 유혹하는 세상 때문이 아니라 신자 안에 있는 욕망 때문이다.
오웬은 유혹이 신자 안에 없는 것을 이끌어 낼 수 없고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드러나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영적인 선을 행할 수 있는 하나님 의존적인 인간 실존의 모습은
오웬의 성화론을 숙독하는 내내 독자가 염두에 두어야 할 신학적인 전제이다.

‘마음이 굳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무뎌지는 것 혹은
하나님의 의지에 순종함에 있어서 완고해지는 것을 가리킨다.

죄로 이끄는 유혹의 첫 움직임을 감지하는 그 순간이 죄를 물리치기에 가장 쉽고 적절한 때이다.

칼빈은 신자로 하여금 자신이 죄에 빠지는 것이 마귀의 유혹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도록 엄중히 경고하였다.

오웬은 신자의 존재를 순종과 유혹으로 말미암는 불순종 사이에 있는 존재로 본다.

오웬은 특별한 시험의 때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아주 특별하게 외적인 번영을 누릴 때,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뒤 침체에 들 때, 영
적인 즐거움을 크게 맛보았을 때, 그리고 자신의 영혼이 굳게 선 줄로 생각될 때이다.

신자는 자기 자신의 마음의 틀과 본성의 기질을 알기 위해 힘써야 한다.
어느 부분에서 부패성이 더 힘있게 역사하는지,
또 어느 부분에서 은혜가 약화되는지 발견하는 일에 진지해야 한다.

죄가 몰고 올 파괴적인 결과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위해 치르신 희생 그리고
그를 통해 얻은 구원의 가치를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자신의 의식을 거기에 고정시켜야 한다.

신자의 성화 생활에 있어서, 생애적인 회개와 돌이킴도 필요하지만 아주 작은 일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느끼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미끄러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죄 죽임 (On Mortification of Sin)

오웬은 영국 안에서 참된 복음적인 경건이 사라지고 있으며 그 핵심인 죄 죽임의 삶이 잊혀져 버렸다고 탄식하였는데,
이를 보더라도 이 주제를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낯선 것이었으며 동시에 얼마나 절실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오웬에게 있어 죄 죽임은 영혼 안에 있는 죄의 경향의 약화이며, 마음 안에 있는 죄의 성향의 소멸이다.
‘죄 죽임’이란 영혼 안에 있는 경향성으로서의 죄를 약화시키고 소멸함으로써 그의 고유한 작용을 수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죄 죽임은 곧 하나님을 거스르며 살고자 하는 인간 마음의 성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오웬은 신자의 가장 중요한 의무가 죄 죽임인 것을 강조한다. 죄 죽임이 없는 모든 선행과 봉사도
하나님을 향한 적대감을 지닌 채 이루어지는 것들이므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며
그러한 행실들이 주는 복음적인 유익도 영혼과 마음 안에서 누리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죄 죽임의 실천에 자신을 드리는 모든 신자는 은혜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의 공로를 믿음으로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매달리게 된다.
이러한 삶의 반복을 통해 신자는 정욕을 이기고 은혜의 원리를 따라 살게 된다는 것이 오웬의 의견이다.

신자는 회심하는 그 순간부터 자기에게 내재하는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진지한 열심히 죄 죽임을 실천하여야 한다.

“죄 죽임의 실천이 없는 삶이야말로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사는 삶이며, 이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의 결정적인 표지이다.” - 청교도 로버트 볼턴

오웬은 모든 청교도는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는 이 세상에서 행복해지기보다 거룩해지기를 열망한다고 판단한다.

성화의 진보가 진리를 아는 지식의 진보와 나뉠 수 없다.

신자는 성화에 있어서 ‘이미 (already)’와 ‘아직 (not yet)’ 사이에 있는 존재이다.

아무리 훌륭한 신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 안에 여전히 죄가 있으며,
영적인 생명력과 활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재하는 죄를 죽이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성경적으로 볼 때에 죄를 죽이시는 주체는 성령이시지만,
이 때 성령님은 반드시 신자의 순종을 통해 일하신다.

오웬은 성령과 기록된 말씀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였다.
성령과 기록된 말씀 사이에 일치가 있다고 보았고
소극적으로는 성령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개개인에게 살아 역사하게 하신다고 보았다.

오웬은 죄로 말미암아 영혼의 깊음 속으로 들어간 신자들에게 죄의 용서를 기도하지 말고
내재하는 죄의 세력을 약화시켜 주시도록 기도하라고 권하였다.

사실 다른 신앙의 위인에 비해 잘 알지 못했던, 존 오웬의 신학에 대한 김남준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많은 기대가 있었다.
피상적으로나마 영적으로 학문적으로 워낙 탁월한 분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반면 이미 접한 다른 신앙의 위인에 비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할까라는 의구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남준 목사님이 서문에서,
구원의 은사 다음으로 존 오웬의 글을 만난 것이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 얘기하시자 조금 당황스러웠고,
책의 전반부에 있는 오웬의 다음의 고백을 대하는 순간 나 자신도 김남준 목사님처럼 오웬에게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신자가 하나님을 너무 사랑함으로 보고 싶어 육체가 병들 수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성경이 보이면 얼마나 보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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